[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한 뿌리에서 난 두 줄기, CP와 ISO 37301
[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한 뿌리에서 난 두 줄기, CP와 ISO 37301
  • 장대현
  • 승인 2026.01.26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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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케데미 대표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케데미 대표

국가기술표준원은 15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인증제도 정비 방안’을 보고했다. 정부는 인증의 합리적 운영을 위해 지난 ‘19년부터 ‘적합성 평가 실효성 검토 제도’를 운영 중이다. 3년 주기로 검토하는데, 1주기(‘19~’21)와 2주기(‘22~’24) 통폐합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증제도 수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정부는 3주기(‘25년~’27년) 검토 대상 246개 인증제도 중에서 첫해인 지난해 79개 제도를 점검해 67개(85%) 제도에 대한 정비 방안을 마련했다. 실효성이 미흡한 23개 제도 폐지, 유사 제도 간 통합 1개, 존속하지만 개선이 필요한 과제 43개 등이다.

개선을 권고한 방안 중에 주목할 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거래 자율준수 평가’다.

앞으로 이 제도는 유사 민간인증인 ISO 37301 규범준수경영시스템 인증과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평가 항목은 인증 결과를 인정하거나 심사를 면제하고, 소요 기간 단축 및 유효기간 확대(2년→3년)를 통해 기업 부담을 낮출 예정이다. 물론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시 개정 등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하겠지만, 이번 발표는 국내 컴플라이언스 생태계가 민관(民官) 표준의 통합 운영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국내 기업의 준법 경영을 지탱하는 CP와 ISO 37301은 사실 한 뿌리에서 태어난 형제와 다름없다. 그 기원을 따라가면 컴플라이언스 표준의 원조(元祖) 격인 호주의 AS 3806 Compliance Programs와 만난다. 2001년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CP를 설계하며 벤치마킹했던 이 표준은, 이후 글로벌 무대에선 국제 표준 ISO 37301로 진화했다. 실제 표준화의 궤적도 이를 증명한다. 2012년 호주 정부는 자국의 AS 3806을 기반으로 국제표준 개발을 제안했고, 이에 호주 컴플라이언스 연구소의 마틴 톨러가 의장을, 호주 표준기구 Standards Australia가 간사를 맡아 표준화 작업을 주도했다. 그 결실로 2014년 ‘ISO 19600’ 가이드라인이 세상에 나왔다. 이후 2021년 4월, ISO는 단순 지침(Guide)에 불과했던 19600을 철회하고 제삼자 인증이 가능한 요구사항 표준(Requirement Standard)인 ‘ISO 37301’을 발행하며 비로소 컴플라이언스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번 정부 발표로 드러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우리 곁에 숨겨진 정부 인증제도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 e나라표준(www.standard.go.kr)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정부 부처별 등록 인증 수는 무려 255건에 달한다. 왜 이렇게 많은 인증이 필요했을까? 여기에는 '우리 것만이 최고'라는 한국 특유의 'K-인증 순혈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호 경향은 자칫 우리 기업들을 세계 시장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갈라파고스 규제'의 덫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정부 인증이 민간 표준보다 무조건 우수하다는 근거 없는 자부심이, 글로벌 표준과 국내 규제 사이의 담벼락을 높여 우리 기업들을 ‘이중 규제’의 늪에 빠뜨려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CP와 ISO 37301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국내용(CP)과 수출용(ISO)이라는 두 개의 성적표를 따기 위해 행정력을 낭비해 왔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ISO 37301은 국제 표준인 동시에, 대한민국 정부(국가기술표준원)가 엄격한 심의를 거쳐 공표한 ‘KS 국가 산업표준’이기도 하다. 정부가 KS 표준으로 승인했다는 것은, 이미 이 시스템이 대한민국 기업 경영에 적용되기에 충분한 타당성을 가졌음을 국가가 보증했다는 뜻이다. 결국 CP와 ISO 37301은 뿌리도, 국가적 공인도 같은 셈이다. 단지 그릇을 채우는 음식의 종류와 그릇을 검사하는 주체만 다를 뿐, '준법 경영'이라는 본질은 절대 다르지 않다.

ISO 37301이 어떤 국가의 어떤 법(法)이든 담을 수 있는 넉넉한 대접이라면, CP는 한국의 공정거래법이라는 강렬한 맛의 소스를 담아내는 정교한 종지다. 대접에 간장을 담고 종지에 밥을 담을 수 없듯, 두 표준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본질은 그 쓰임새의 조화에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과징금 상한을 또다시 대폭 상향하며 ‘공정거래 엄벌 시대’를 예고했다. 이제 컴플라이언스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를 넘어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필수가 되었다. 그러나 특정 법규에만 매몰된 절름발이 준법은 오히려 또 다른 사각지대를 낳기 마련이다. 컴플라이언스에 최고(最高)의 프레임워크는 없다. 오직 각 조직의 상황에 맞는 최선(最善)의 조합이 있을 뿐이다. 이제 기업들은 ISO 37301이라는 견고한 뼈대 위에 CP라는 정밀한 실행력을 얹은 ‘최적의 하이브리드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형식의 성벽을 쌓아 서로의 우월함을 증명하려는 소모적 논쟁은 끝내야 한다. 결국, 뿌리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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