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鐵人의 향기] 30분 만에 강철 제조
[鐵人의 향기] 30분 만에 강철 제조
  • 김종대
  • 승인 2020.03.19 0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헨리 베서머
헨리 베서머<사진=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

헨리 베서머<사진>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주물공장에 놀기를 좋아했다. 주물로 활자를 만드는 과정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여러 가지의 제작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이런 아들의 재능을 알아 챈 아버지는 베서머가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공장에서 즐겁게 일을 배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베서머가 본격적으로 철강 제조 공법을 연구하게 된 것은 크림전쟁이 일어난 시기였다. 그는 아버지의 조국(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이민)인 프랑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새로운 포탄을 개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포탄이 발사되는 과정에서 강력한 파워를 이겨내지 못하고 포신이 터져 버리는 대포를 목격하게 된다. 만신창이가 된 포신을 바라보면서 베서머는 강하고 변형이 쉬운 '강철'의 대량 생산을 위한 제강법 연구에 돌입한다. 

베서머의 연구는 8개월간 동안 실패만을 반복하다가 우연히 바람에 의해 선철의 탄소가 타는 장면을 목격한다. 탄소가 산소와 만나 산화하는 과정에서 탄소가 제거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드디어 베서머는 1855년 베서머공법(Bessemer process)을 내놓고 특허를 받았다. 녹은 선철에서 강철을 대량 생산하는 세계 최초의 저렴한 방법을 선보인 것이다. 핵심 원리는 용선에 공기를 불어 넣어 산화 환원 반응을 일으켜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산화에 의해 철의 온도가 상승, 녹은 상태로 유지시키는 방법이었다. 

1856년 '베서머의 전로'가 사람들 앞에 공개되자 영국의 여러 제철소에서 이 공법을 채택했다. 10분에 5톤의 강철을 만드니 굉장한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이 공법을 채용한 제철소에서 품질이 나쁜 강철이 생산 되었다. 원인은 각각의 제철소마다 사용하는 철광석의 품질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베서머는 철광석의 불순물을 없애는 공정을 한 번 더 거치게 하자는 대안을 내놓았지만 제철소들은 베서머를 신뢰하지 않았다. 베서머는 손해 배상을 감당했다. 이로인해 막대한 금전적 손실과 함께 베서머의 명성에도 흠집이 났다. 

1860년, 베서머는 빚을 내어 자원이 풍부한 셰필드 지역으로 이전하고 새 공장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업그레이드 된 베서머 공법을 완성했다. 1년이 지난 1862년, 베서머는 영국 런던 만국 박람회에 '베서머 전로'를 출품했다.

제철산업의 경쟁력이 영국보다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미국의 카네기와 유럽 국가들은 베서머공법을 적극 도입했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의 강철 생산량은 대폭 증대하기에 이른다. 특히 미국의 카네기는 베서머공법을 적극 도입하여 미국의 철강생산량을 세계 1위로 이끌어낸 철강왕으로 등극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환경을 지켜본 영국 제철관계자들은 '베서머 전로'가 공개된지 18 년이 지난 1874년도에 베서머 금상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1879년 헨리 베서머는 영국 왕실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 베서머상은 철강 노벨상으로 불린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고 박태준 회장이 베서머상을 수상했다.

헨리 베서머는 1898년 85세의 나이에 사망했으나 그의 베서머 제강법은 산업 전반에 혁신을 일으킨 원동력이 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