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7일 유럽연합(EU)이 자국 철강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철강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새로운 ‘저율관세할당(TRQ)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현행 철강 세이프가드 조치가 끝나는 내년 6월 말을 기점으로 새로이 대체할 예정인 이 새로운 규제안은 무관세 수입쿼터를 큰 폭으로 줄이고, 쿼터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관세율을 대폭 인상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어 국내 철강업계에도 상당한 영향이 예상되고 있다.
EU TRQ제도의 주요 내용을 보면, 그동안 무관세로 수입하던 연간 글로벌 철강 수입 쿼터 총량을 기존 3,053만톤에서 약 47% 감축된 1,830만톤 수준으로 축소한다는 내용과 쿼터 초과 물량에 대한 관세율을 현재 25%에서 50%로 2배 인상한다는 것이다.
또한 수입 철강재의 원산지를 더욱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해, 처음으로 철강이 생산된 ‘용해 및 주조(Melt and Pour)’ 국가를 증빙하는 원산지 증명 서류 제출을 의무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중국의 저가 수입재를 사용하여 제3국에서 가공하여 수출하는 우회수출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EU는 이번 조치가 글로벌 철강 공급 과잉 문제와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부터 역내 철강산업을 보호하고, 산업의 탈탄소화 및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금번 EU의 철강재 수입규제는 기존 세이프가드 조치와 마찬가지로 총 26개 철강 제품군에 적용될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는 열연강판, 냉연강판, STS, 전기강판, 도금강판, 선재 등 다양한 품목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대(對) EU 철강 수출량은 393만2,366톤으로 전체 철강 수출량의 13.1%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263만톤은 한국에 배정된 쿼터이며, 나머지는 글로벌 쿼터를 활용해 전량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다. 수출액으로는 약 44억8천만달러(약 6조3천억원)로, 미국의 43억5천만달러와 더불어 한국 철강 최대 수출지역이다. 특히 유럽향 주요 수출품목으로는 판재류가 약 85%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더불어 EU가 주요 수출지역으로 이번 EU 수입규제 강화 조치로 인해 상당한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며, 특히 무관세 쿼터가 대폭 축소됨에 따라 수출물량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미국의 관세로 인한 수출 감소를 대체하는 시장으로 EU 시장의 중요성이 커져 있는 상황에서 이번 EU 수입규제 발표는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EU는 내년에 본격 시행예정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맞물려 국내 철강업계에는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CBAM은 EU로 수입되는 철강 등 고탄소 제품에 대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만큼의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로, 사실상의 ‘탄소 관세’이기 때문이다.
한국 철강사들의 경우, 현재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을 대체할만한 철강시장이 별로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며, 유럽 현지화를 추진한다고 해도 당장의 문제해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가장 빠른 방법이 줄어든 쿼터량을 채우는 과정에서 수출품목에 대한 재배분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즉, “고부가가치 제품 수출 비중을 늘리고 저가 제품 물량은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안”이 당장 고민해 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당연히 정부는 외교적 협상을 통해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나 자유무역협정(FTA) 채널을 통해 EU와 적극적으로 협상하여 한국 철강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K-Steel 특별법’에 국내 철강산업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정책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금번 EU의 TRQ 조치가 중국의 저가 철강 물량 공세를 겨냥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한국 역시 그 유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직 국가별 쿼터 배분량 등 세부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FTA 체결국가와는 개별 협상을 통해서 쿼터량을 고려하겠다고 발표하였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EU의 이번 조치는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신호로 해석되며, 향후 EU와의 협상 결과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향후 진행될 EU와의 국가별 쿼터 협상결과가 국내 철강업계의 피해규모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