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상 이사(理事)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그 대답은 ①회사, ②주주, ③회사와 주주 둘 다, ④모든 이해관계자로 다양할 것이다. 그동안 상법 제382조의3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조항을 두며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를 배제한 채 ‘회사 only’로 운영되고 있었다.
충실(忠實) 의무란 이사가 그 지위를 이용해 자기나 제삼자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아야 할 의무다. 몸을 갈아서 회사에 무조건 충성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이사와 회사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는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상법상 이사는 회사와 위임(委任) 계약을 통해 의무를 부담한다. 여기서 주주는 계약당사자가 아니다. 주주는 ‘주식의 주인’으로 유한(有限) 책임을 진다. 즉 경영상 책임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주식회사의 설립 원칙에서 보면 주주 충실의무가 들어갈 여지가 없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이번 개정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가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앞으로는 회사에 이익이 되더라도 주주 이익에 반(反)하든지, 아니면 오너라 불리는 지배주주와 일반 소수(소액)주주 간의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엔 이 조항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법률 개정(안)을 놓고 각계각층에서 반대론과 찬성론이 팽팽하게 맞서 왔다. 결론적으로 개정 찬성론자의 승리로 끝났지만,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 하는 의문은 계속 남아 있다. 법리상 이사가 회사와 위임이라는 법률관계를 전제로 하는 회사법 체계와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되었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1998년 상법 개정을 통해 처음으로 도입된 지 27년 만이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도입된 이유는 다양하지만, 일부 대기업의 물적분할 후 쪼개기 상장 같은 ‘중복상장’이 입법 논의의 실마리가 된 것은 사실이다. 중복상장은 한국 증시의 대표적인 디스카운트 요인 중 하나였다. L화학의 물적분할 후 상장이나 D그룹의 구조 개편 방안 발표 등 최근의 몇몇 사건들이 소수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제를 쏘아 올린 것이다.
이번 상법 개정에는 미국법의 영향이 분명히 있다. 특히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 판결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회사법은 주법(州法)이다. 각 주마다 그 내용을 달리하고 있어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주법이 델라웨어주 회사법이어서 국내에서 많이 참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륙법계에 속하지만, 이번 상법 개정에는 영미법계에 속하는 미국법을 모델로 해, 현행 우리나라의 법체계와 충돌하므로 체계 정합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우리나라의 많은 법들이나 판결에 미국법이나 미국법원의 판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아 ‘법계(法界)’를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상법은 개정되었고,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은 지난 7월 22일 공포되자마자 시행되었다.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논란은 시간 낭비다. 기업으로선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거냐가 관건이다. 더 세진 개정 상법은 한국 기업 지배구조(governance)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볼 수 있다. 즉 지배구조의 대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이번 개정을 통해 기업 이사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로펌이나 학계에서는 앞으로 주주들이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이사들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너무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전과 크게 바뀐 게 없다며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당분간 기업들은 앞으로 나올 판례나 유권해석 등의 추이를 살펴보며, 법적 불확실성(uncertainty)에 대비해야 한다. 그동안의 이사회 운영 방식을 점검하고 의사결정의 프로세스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법무부나 관련 기관에서는 기업들의 막연한 불안을 해소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빨리 내놓아야 한다.
이제 이사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에 대한 답은 최소한 법적으로는 정해졌다. 회사와 주주를 위해 충실히 일해야 한다. 하지만 2020년부터 시작된 ESG 경영을 위해서는 회사와 주주뿐 아니라 임직원, 협력업체, 고객, 지역사회, 정부 등 기업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균형감’과 ‘공평함’이다. 어느 한쪽 당사자에만 치우치지 않게 밸런스를 유지해야 한다. 이사들이 밸런스를 잃는 순간 기업 밸류업은 물 건너갈 것이다.
충실(忠實)은 성실(誠實)보다는 강한 개념이다. 충실의 ‘충(忠)’은 가운데 중(中)짜와 마음심(心) 자가 합쳐진 글자다. 앞으로 기업의 이사들은 회사와 주주를 위해 마음 가운데 우러나오는 지극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