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여러 조직에서 일어난 부정(fraud)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A사 재무팀장 횡령 사건이다. 횡령 금액이 2,200억 원으로 워낙 큰 탓도 있지만, 횡령을 저지른 팀장 B 씨의 형량도 이례적으로 높아서다. 대법원에서 징역 35년이 확정되었다. 만기 출소하면 82세가 된다고 하니 노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처지다.
대법원 양형기준에서 300억 원 이상 횡령죄의 경우 가중 처벌되면 최대가 7년에서 11년 정도인데, 그 기준의 3배가 넘는 중형이 선고된 것이다. 중형의 이유를 살펴보니 B 씨가 출소 후 범죄로 인한 이익의 향유를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김형석 교수는 책 <백 년을 살아보니>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60세에서 75세라고 말한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며 노년의 즐거움을 누려야 할 시기에 감옥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A사 사건의 경우 경찰 조사에서 팀장 B 씨의 지시로 팀 직원들이 자료를 위조한 정황도 드러났다. 법률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지시를 팀원들은 왜 거부할 수 없었을까? 물론 지위가 낮고 경험이 짧은 팀원이 현실적으로 팀장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렵고, ‘부당함’에 대한 판단도 쉽지 않았을 거라 여겨진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러한 지시는 당연히 거부해야 했다.
팀장 B 씨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팀원들과 같은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난 12월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서도 각각 명령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한 계엄군 지휘관은 명령의 맞고 틀리고를 떠나 군인으로서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따랐다.
반면 한 법무부 감찰관은 계엄 선포 직후 소집된 법무부 관련 회의에서 계엄과 관련한 불법적 명령과 지시는 따를 수 없다고 하며 사표를 쓰고 나왔다. 명령에 대한 두 사람의 반응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군대나 공직사회가 아니더라도 회사나 학교 등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부당한 명령에 복종할지? 아니면 거부할지?에 대한 딜레마적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독일 출신 유대인 한나 아렌트가 쓴 책으로 나치 독일의 친위대 장교 겸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60년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는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살던 아이히만을 체포해 예루살렘으로 압송했다. 그 후 아이히만은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한나 아렌트는 그 재판을 참관하며 아이히만에 대한 평론을 작성해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 책에서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 학살을 저지른 아이히만이 매우 사악한 사람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주 친절하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적고 있다.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자신은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명령을 따랐을 뿐(Just Following Orders)”이라고 항변했다. 여기에서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개념이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다. 결국 아이히만같이 평범한 사람이 자신은 악한 마음을 품지 않더라도 당연하다고 여기며 행한 일 중 무엇인가는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해 누구나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면 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히만은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962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렇게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 “당신은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부당한 명령은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정당한 명령은 복종하고, 부당한 명령은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명령이 내려졌을 때 그 명령의 정당성을 판단하고 법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 상명하복이 철저하게 요구되는 군대나 공직의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따라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조직 내 거부권을 보장하는 제도의 신설과 운영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부당한 명령이나 지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기준과 부당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는 명문의 근거 규정이 있어야 한다. 둘째, 부당한 명령을 신고하고 처리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직원들이 딜레마 상황에서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평소 case study를 통한 교육을 해야 한다.
부당한 명령에는 ‘정당한 불복종’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규정의 정비와 부당한 명령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앞으로 부당한 명령에 단호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노맨’이 나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