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구조조정 효과 반감, 업계 차원 대응
대형화 위한 적대적 매수도 활용 가능성 높아
연간 조강생산량 9000만t급 초대형 철강사의 복수 체제로의 전환은 철강업계의 추가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주요 철강업계들은 올해 화두로 ‘감산’을 내세웠다. 일본제철이 고로 4기의 가동을 중단해 생산능력을 약 10% 감축할 것을 시사한 가운데, 포스코도 올해 생산량을 전년 대비 축소했으며, 나아가 한국 철강업계의 구조조정 필요성을 강조하며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아르셀로미탈은 수요 회복에 따라 소폭 상승할 것으로 예견했으나 감축 분을 회복할 수준은 안 되어 보인다.
감산과 증산 사이 ‘죽이는 M&A’
상위 업체들이 주도적으로 생산을 줄이려고 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조강 생산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세계철강협회(WSA)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64개국의 작년 조강생산량은 18억4855만 톤으로, 전년 대비 3.5%(6254만 톤) 증가했다. 중국은 같은 기간 9억9634만 톤으로 8.3%(7632만 톤) 늘어나 종전 기록을 경신하며, 전체 생산량의 54% 비중을 차지, 전년보다 2.4%p 늘어났다. 인도는 1억1125만 톤으로 1.8%(197만 톤) 증가해 2년 연속 2위를 기록했다. 베트남은 2007만 톤으로 43.2%(606만 톤) 급증했다. 중동지역도 2018년 3558만 톤에서 4288만 톤으로 20.5% 증가하는 등 4개국․지역이 증가세를 주도했다.
국가적인 측면에서 철강 산업은 유럽에서 시작해 미국을 거쳐 일본과 한국을 이어 중국에 이어 이제 인도와 베트남 등이 주도권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일본과 한국의 경우 시장 점유율 과반을 넘어서거나 근접하는 대형 기업이 있지만 중국과 인도, 베트남 등은 그러한 기업이 없다. 공급이 넘치는 국가에서 수요를 필요로 하는 국가에 수출을 하면 되지만, 철강업은 국가 경제의 기반산업이며 보호주의 성격이 강해 특정 수량 이상의 수입을 막고 있다. 무겁고 운반이 어려운 제품의 특징도 한몫을 한다.
이러다보니 인도와 베트남, 중동 지역 국가들은 제조업 성장에 따라 필요한 철강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설비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자금과 기술을 유치하기 위해 글로벌 철강사들의 진출을 요청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인수․합병(M&A)이 벌어지기도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확장을 위해 M&A가 활발히 전개되었지만, 2020년부터 진행될 M&A는 생산량 조정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M&A는 덩지를 키우는 데에도 활용하지만, 시장에 제품 공급을 줄이고, 경쟁사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도 유용한 방법이다. 과거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한국의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려고 한 목적은 인수 후 하이닉스가 보유하고 있던 기술과 인재만 빼가고 설비투자는 중단하거나 줄여 시장에서 퇴출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게 후일 밝혀졌다. 글로벌 기업들인 경쟁우위의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서 승부를 거는데 들이는 돈보다 경쟁사를 사들여 시장에서 내쫓는 데 들이는 비용이 더 적게 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철강 산업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의 효과는 미비하다. 중국 정부가 수년간 철강 산업 구조조정을 진행해 바오우그룹과 같은 초대형 기업을 만들어냈지만, 전체 생산량을 줄이는 데에는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늘었다. 아르셀로미탈이나 포스코. 일본제철 같은 기업들이 감산하면 수익성은 높일 수 있겠지만, 시장에서의 위상은 낮아질게 뻔하다. 해당 기업들은 이런 상황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자국 생산설비를 줄이는 대신 철강제품 수요가 늘고 있는 국가들로의 진출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이 철강업계들에게 내려진 과제다.
상위 업체 점유율 20년간 변화 없어
M&A를 통한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철강기업의 대형화는 지속적으로 추진됐지만, 그렇다고 상위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큰 변화가 없었다. <페로타임즈>는 WSA가 매년 발표하는 조강 생산량 기준 기업 순위 통계를 토대로 2001년부터 2018년까지 10대, 30대, 50대 기업의 비중을 분석해봤다.
먼저, 10대 기업 비중은 2001년 2001년 25.02%에서 2008년 28.28%로 정점을 찍은 뒤 2018년에는 25.72%였다. 30대 기업의 비중은 2001년 44.77%에서 2002년 57.03%까지 올랐으나 이후 40%대를 유지했고, 2018년에는 45.52%였다.
50대 기업 비중은 2001년 55.94%에서 2008년 60.64%로 최대치였다가 2018년 56.82%였다. 2008년은 리먼 브러더스 금융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의 영향 때문이었다는 변수 때문에 상위기업들의 비중이 일시적으로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20년 가까이 비중의 변화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2008년 이후 수요산업의 생산이 정체됐고, 중국의 경제 성장률도 둔화세로 돌아서면서 철강사들의 신규 진출도 늘지 않아 기존 업체들이 통합하는 방식으로 업체 수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러한 상황은 철강기업의 대형화는 더욱 확장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미 철광석과 유연탄 등 원료 업체, 자동차와 조선 등 주요 철강 수요산업, 해운업계 등 물류업체들은 소수의 기업들이 절대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는 과점화․대형화를 이뤄냈고, 철강업체들에 대한 발언권을 높여나가고 있다.
락시미 미탈 아르셀로미탈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이 아르셀로를 인수한 이유의 하나로 철강업체도 원료 메이저들에 대한 원료 구입비와 수요산업에 대한 철강재 판매가격 이들에 맞설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이뤄나가야 했기 때문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이들에 대한 대응을 위해, 공급 과잉상태의 지속으로 공멸의 위기에 몰린 철강 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라도 M&A를 통한 구조조정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M&A를 원하는 기업들도 있지만, 원하지 않는 기업도 많다는 것이다 적대적 M&A라는, 다소 과격한 방법이 동원될 가능성도 높다. 적대적 M&A를 반드시 성사하기 위해, 또는 당하지 않기 위해 주주가치 제고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