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골프와 컴플라이언스
[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골프와 컴플라이언스
  • 장대현 대표
  • 승인 2024.09.0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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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KCA) 대표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KCA) 대표

작년 초, 컨설팅 수주를 위해 찾아간 회사는 지방 골프장이었다. 회사 내 컴플라이언스 체계 구축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서울에서 차로 세 시간을 달려 골프장에 도착했다. 실무자와 인사를 나누고, 대표이사 방에서 차 한잔을 마셨다. 60대로 보이는 대표는 30년 가까이 골프 관련 일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대표는 이번 컴플라이언스 컨설팅에 관해 설명을 듣긴 했지만, 아직 용어가 생소하다며, “컴플라이언스(compliance)가 뭐냐?”라고 물었다. 평생을 골프 사업만 해 온 대표에게 어떤 대답이 좋을까 잠깐 고민했다.

“대표님, 골프가 ‘미스샷(miss shot)’을 줄이기 위한 경기라면, 컴플라이언스는 ‘넌 컴플라이언스(noncompliance)’를 줄이기 위한 경영을 말합니다”라고 답했다.

골프에서 공을 실수로 잘못 치는 미스샷을 줄여, 총 타수(打數)가 적은 골퍼가 경기의 승자가 되듯이, 기업 경영에서도 위법(違法)과 같은 미준수(未遵守)가 일어나지 않는 기업이 비즈니스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적절한 비유 때문일까. 조만간 계약을 체결하기로 약속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골프는 다른 경기와 달리 심판 없이 혼자 하는 경기다. 하지만 엄격한 룰(rule)이 있다. 골프가 레저이면서 스포츠로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룰은 R&A USGA 골프 규칙이다. 영국왕립골프협회 R&A와 미국골프협회 USGA가 협의해 제정하고 4년에 한 번씩 개정한다. 물론 골프장에 가면 코스의 로컬 룰(local rule)을 만들어 적용하기도 한다. 골프에 R&A USGA 골프 규칙과 로컬 룰이 있다면, 기업 컴플라이언스에는 사업에 적용되는 현행 법령 말고도 윤리강령 등 다양한 규범들이 있다. 그래서 기업 컴플라이언스에서는 현행 실정법을 지키는 ‘준법(遵法)’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제표준화기구 ISO가 2021년 제정·발표한 ISO 37301:2021 규범준수경영시스템에서도 표준의 준수 대상을, 법규범을 포함한 사내규범, 사회규범으로 확장하고 있다.

1774년 세계 첫 골프 규칙은 달랑 한 장짜리였다. 한 페이지에 13개 조항이 있었다. 하지만 2023년에는 200페이지 책(rule book)이 됐다. 조항도 24개로 늘었다. 골퍼들은 골프 규칙이 복잡해질수록 규칙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에 지켜야 할 규범들이 너무 많아도 직원들은 규범을 남의 일로 여길 수 있다. 몇 해 전 국내 유명 대기업을 컨설팅하면서, 사내 전산망(intranet)에 게시된 사규(社規) 현황을 살펴본 적이 있다. 그 회사의 규정은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각 규정 제목 옆에 달린 페이지 뷰(page view)는 전체 직원 수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회사는 새로운 사규를 만들어 사내 게시판에 올리지만, 정작 직원들은 바빠서 눈여겨보지 않는다고 했다.

골프 전문가에 따르면 주말에 지인들과 친선 골프를 즐기는 아마추어 골퍼에겐 간단한 규칙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복잡하고 방대한 골프 룰은 프로선수 경기에서나 적용되기 때문이다. 조직에서도 너무 방대한 규범을 알리는 것보다 일선 직원들이 자기 업무와 관련해 반드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규범부터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이것을 ‘essential and mission critical’이라고 부른다. 결국 리스크(risk)에 기반해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규범 의무를 파악하고 그 의무에 초점을 맞추어 행동하면 직원이나 회사를 위태롭게 할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임직원에게는 무엇을 하지 말라(Do Not)는 ‘계율(戒律)’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Do)는 ‘강령(綱領)’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정신을 살펴보면 기업이 추구하는 이윤극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넓은 의미의 컴플라이언스가 깔려 있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더먼을 비롯한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시장경제 원리에는 최소한 법률과 게임의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닥치고 돈만 많이 버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여기서 ‘게임의 규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프리더먼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법률보다 넓은 개념임에는 분명하다. 즉 게임의 규칙을 지킨다는 것은 오직 실정법만 준수하는 ‘준법(law-abiding)’을 넘어서는 것이다. 골프에서 골프 규칙뿐 아니라 경기자의 매너와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골프에서 미스샷을 줄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골퍼 자신이 꾸준한 연습을 통해 기본기를 다지고, 필요하면 전문가 레슨도 받아야 한다. 기업 컴플라이언스에서도 중대한 법 위반과 같은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임직원에 대한 지속적 교육과 컴플라이언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렇듯 골프 경기와 기업 컴플라이언스는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공통점이 많다. 골프에서 룰을 지키는 것이 스포츠맨십의 핵심이듯, 기업 경영에서도 규칙 준수가 매우 중요하다. 규칙 위반은 곧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골프든 컴플라이언스든 연습만이 실수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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