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및 내년 중 제도개선 및 법제화로 가시적 성과
EU 탄소국경세 우려…국내 강관사들 갈피 못찾는다
‘세이의 법칙’ 종언…경쟁력 확보 위한 차별성 필수
AD제소는 어려울 것…철강업계 스스로 해답 찾아야
구조관 등 공급과잉 제품 대신 新성장동력 분야 투자
강관협의회는 업계의 경쟁력 강화와 신수요 창출을 중심으로 규격의 표준화 등 제도의 현실화를 위해 지난 2005년 3월 발족했다. 세아제강, 현대스틸파이프, 휴스틸 등 주요강관사 15곳이 회원사로 이름을 올렸으며, 특별회원으로 포항금속소재산업진흥회가 포함돼 있다.
하이스틸 대표이사인 엄정근 강관협의회 회장(이하 엄 회장)은 지난 2014년 7대 회장으로 첫 회장직을 역임한 데 이어 2022년 14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올해까지 회장직이 연임되면서 여전히 협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게 됐다.
엄 회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7대 회장직을 맡았던 당시에는 전국 회원사들의 본사 및 공장을 직접 방문해 기업 간 협업을 강조했다”며 “이번 14대 회장 때는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강관 수요 창출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강관협의회는 지난달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올해 첫 이사회 및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강관산업 경쟁력 강화 및 생태계 강건화로 신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사업목표를 공식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협의회 차원에서 상하수도 노후배관 시장조사와 해외 수요 확대를 위한 중동시장 조사도 계획돼 있다.
엄 회장은 과거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이 적용됐던 시대의 종언을 고했다. 누구나 생산할 수 있는 제품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가 왔다는 분석이다.
업계의 이슈가 되고 있는 반덤핑(AD) 이슈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미국이나 EU같은 국가들은 역내 및 역외 대체재 등 다양한 대안이 있을 수 있으나,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무역비중이 높은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AD를 제소하기에는 어렵다"면서 "자성을 통해 경쟁력 저하 원인을 분석하고, 해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강관업계도 경쟁력 없는 기업의 구조조정과 공장스마트화 등의 투자가 확대돼야 한다”면서 "타 철강재와 마찬가지로 공급과잉과 수입산이 가장 큰 문제로, 수소배관, 고강도강관, 풍력 등 새로운 분야로 저변을 넓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협의회는 수소배관 및 토목용 버팀대 제도 개선 및 기술 개발 지원에 나선다. 또 건물 대형화 기조에 따른 고강도 SNT460급 강구조 설계 기준도 개정을 시도한다. 내년까지 건축 설계 기준에 고강도 건축 구조용 강관을 반영하는 것이 목표다.
다음은 엄정근 강관협의회 회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1. 회장님은 무려 46년 동안 올곧이 강관 ‘외길’을 걸어오셨습니다. 협회장도 두 번째 역임하시면서 많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가장 주목할 성과로 생각하시는 것과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이슈는 무엇인가요?
1979년 철강업에 입문해 올해로 46년째 철강업에 몸을 담고 있다. 그동안 철강업을 하면서 IMF구제금융, 리먼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 코로나19 등 많은 위기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왔다. 지난 2014년(7대 회장)과 2022년(14대 회장) 각각 강관협의회 회장을 역임했고, 올 해 1년을 연장하게 됐다.
7대 회장이었을때는 전국에 있는 회원사들의 본사와 공장을 직접 방문하여 기업간 협업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회원사들의 상호 이해의 간극이 좁혀졌다고 생각한다. 이번 14대 회장때는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강관 수요창출에 역점을 뒀다. 부임 직후 보터 2년간 계속된 노력으로 올해와 내년에 제도개선 및 법제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최대 관심사도 어려운 국내 강관 시장을 위한 수요 창출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2. 탄소배출 규제, 무역장벽 강화와 더불어 지정학적 리스크, 전쟁들로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회원사들의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시나요?
여러 규제장벽과 리스크가 있을 수 있으나, 가장 위협적인 것은 2026년 1월부터 시행되는 EU(유럽연합)의 탄소국경세가 지목된다. 이로 인해 전 세계로 탄소규제가 더 확대 될 가능성도 크다. 원재료의 탄소배출은 물론, 생산과정과 운송과정을 총괄한 총 탄소배출량을 계산하기 때문에 향후 국내산 철강재도 가격 경쟁력을 잃고 유럽향 수출난이도가 급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양대 고로사를 중심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대다수의 기업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 정부, 협회, 관련단체 등과 함께 탄소저감 노력에 나서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또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도 큰 위협이다.
이같은 불확실성이 산재한 시대에서 강관업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핵심이라고 본다.
3. 강관업계는 원가절감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과거에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Say’s Law)’이 적용됐다. 반면, 지금은 생산체계 고도화로 모두가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은 경쟁력이 없는 사회가 됐다. 즉, 저품질과 저가 제품 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아이템과 최고 품질의 제품 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강관업계도 경쟁력 없는 기업의 구조조정을 필두로, 신규 아이템 및 공장 스마트화를 위한 투자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4. 공급과잉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지적됩니다.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수입산 증가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소재인 열연을 생산하는 포스코나 현대제철 등에서 반덤핑(AD) 규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관도 다른 철강재들과 마찬가지로 공급과잉이 가장 큰 문제다. 수요보다 많은 공급은 결국 기업들의 저마진 정책으로 이어져 시장 가격의 파괴를 부른다. 이는 적자기업의 증가로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로 이어지게 된다. 또 저가수입재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인한 시장 감소도 문제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산 및 일본산 수입 증가로 국내 시장이 크게 흔들린 바 있다.
다만, 수입을 막기 위해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을 대상으로 AD를 시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이나 EU같은 국가들은 역내 및 역외 대체재 등 다양한 대안이 있을 수 있으나,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무역비중이 높은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AD를 제소하기에는 어렵다고 본다. 법적인 방식으로 수입을 막기 보다는 수입산이 국내 소재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생각한다. 가격 경쟁력 격차는 곧 우리보다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 철강업계는 스스로 자성을 통해 경쟁력 저하 원인을 분석하고, 해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5. 주요 강관사들은 내수 부진을 수출에서 만회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수출 환경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고 계신가요?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울러 내수 침체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재 강관 내수가 어려운 반면,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일부 중동 국가들로 수출하는 제품은 비교적 수익성이 높다. 이에 수출로 내수 부진을 만회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물론 강관 수요가 많은 곳을 발굴하고 수출 전략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문제는 국내 강관사간 지나친 수출경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수출 물량을 늘리고자 적정 가격 이하로 수주를 받으면서 해외 수입업체만 좋은 일을 만드는 경우도 자주 발견된다. 선의의 경쟁을 하되, 지나친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
이같은 수출 중심 전략도 하나의 방법이나, 철강업은 결국 내수가 뿌리인 만큼 내수 시장의 수요 확대가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최대 전방산업인 건설의 회복이 필수적이다. 정부 차원에서의 SOC 확대 및 건설경기 부양이 필요하다고 본다.
6. 강관 최대시장인 대미 쿼터제가 최근 3년을 기준으로 배분되는 방식으로 변경됐습니다. 변경 후 업계 반응은 어떤지, 추가적인 변경 계획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기존 쿼터를 보유한 기업들은 불만이 많다. 그러나 기존 쿼터 값을 존속시켜 신규업체들의 진입장벽을 만드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번 기준 변경으로 크지는 않더라도 1차적으로 신규업체들의 진입폭을 넓혀준 점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쿼터제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어떻게 변경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앞으로도 한국철강협회와 협조를 통해 대응할 계획입니다.
7. 강관기업들의 해외 진출과 이에 대한 관심이 몇 년간 높아진 것 같습니다. 해외 진출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가요? 한편으로 국내 투자가 필요하다고 보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하이스틸도 미국 휴스턴에 현지법인이 있다. 세아제강, 휴스틸, 넥스틸 등도 미국에 법인을 세우고 많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투자는 현지 시장상황과 현지 법규에 대한 충분한 검토는 물론, 현지공장의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 인력상황, 부품조달, 생산역량 등 국내와는 다른 위험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국내 투자는 구조관 등 이미 공급과잉인 제품 대신 수소배관, 고강도강관, 풍력 등 신성장분야로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8. 올해 강관협의회의 중점 계획은 무엇입니까?
올해 협의회 사업 목표는 "강관산업 경쟁력 강화 및 생태계 강건화로 신수요 창출"이다. 이를 위해 상하수도 노후배관 시장조사와 해외 수요 확대를 위한 중동시장 조사 등이 계획돼 있다. 또 수소배관과 토목용 버팀대의 제도 개선 및 기술 개발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아울러 국토부, 강구조학회 등 유관기관과 협조해 건물 대형화와 고층화에 따른 고강도 SNT460급 강구조 설계 기준 개정에도 나섰다. 설계기준 및 표준시방서 개정 등 실질적으로 강관 수요 창출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실제 강관 수요를 확대하는 데 역점에 두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