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鐵人의 향기] 징장철도 건설 주역 ‘잔텐유’
[鐵人의 향기] 징장철도 건설 주역 ‘잔텐유’
  • 김종대
  • 승인 2019.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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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예일대서 철로공정 전공... 서양인 밑에서 온갖 잡일 강대국 험담 끄떡도 안해
외국社들이 번번히 실패한 ‘롼어’철교건설 잠수부 동원 중국 전통방식으로 완공시켜
징장철로 4년 만에 완공 해외기업의 산출비용보다 1/5에 불과...36만냥 절감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철도 건설을 중요시했다. ‘위안스카이’가 철로대신을 맡았고, 위안은 서태후에게 베이징에서 장자커우까지 ‘징장철도’ 건설의 재가를 얻었다. 건설의 총책임자로 발탁된 인물은 ‘잔텐유’이다. 그는 강대국들이 철도건설을 따내느라 온갖 행위를 벌였지만 끄떡도 안했다. “영국 일간지들은 “자신의 능력을 모르는 과대망상증 환자가 탄생했다”고 ‘잔텐유’를 폄하했다.

진텐유

‘잔텐유’는 몰락한 광둥 차 상인의 후예였다. 1872년 11살 때 제1차 유학생 선발 시험에 합격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6년간 기초 교육을 받은 후 예일대 토목공학과에서 철로공정을 전공했다. 1881년 정부가 유학생 120명을 강제 귀국시킬 때 ‘잔텐유’는 학사 학위를 받은 두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귀국 초기에 유학에서 소환된 학생들은 냉대를 받았다. 과거 출신이 아니면 가는 곳 마다 사람대접을 해 주지 않았다.

‘잔텐유’는 친구의 주선으로 겨우 철로공사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서양인의 조수 노릇을 하며 온갖 잡일을 다 했다.

‘잔텐유’는 징선철도(베이징~선 양) 건설과정에서 외국회사들이 번번이 실패한 ‘롼어’ 철교건설도 잠수부들을 동원하여 중국의 전통 방식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징장 철도 기공식(1905년 8월)날 ‘잔텐유’는 “각자 배운 것은 다 내놓아라. 국가의 부강을 위해 사용하자. 외국인들에게 모욕을 당하지 않아야 지구상에 자립할 수 있다”고 중국인의 국가관을 흔들었다.

민족철도 건설은 국가적인 사업이었다. 보잘 것 없는 작업도구로 길을 닦고, 무거운 철강재를 얹는 일은 쉽지 않았다. 건설과정에서 막대한 구입자금을 노린 일부 인사들의 뇌물 공세를 피하는 일도 매우 어려웠다. 베이징에서 장자커우까지는 지형이 복잡했다. 예산산맥도 뒤엉켜 있었다. 철도노선에는 왕과 환관들의 묘와 서태후 생부의 묘도 있었다.

‘잔텐유’는 그것들을 모른채하고 공사에 몰두했다. ‘징장철로’(京張鐵路·베이징~장자커우)가 1909년에 완공되기까지 4년이 걸렸다. 예정기간을 2년 단축했다. 건설비용은 서양인이 산출했던 것 보다 5분의 1에 불과했다. 국고 36만냥을 절감했다.

2015년도 중국의 철도영업 총연장은 12만㎞를 돌파했다. 고속철도 총연장은 1만㎞로 세계 최장이다. 이 철도를 이용하는 인구는 약 20억명이라고 한다. 하루 최대 1000만명이 이용한다.

‘잔텐유’처럼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鐵人이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창출이 돋보인다. 중국 광둥성 관저우시 리완구에는 잔텐유 고택 기념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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