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1945년 독일 에센의 크룹 중앙 관리본부 건물에서 회의가 열렸다. 영국군사위원인 ‘더글러스 파울스’는 이렇게 선포했다. “저 밖에서 다시는 굴뚝의 연기를 내 뿜지 않을 것입니다. 영국군사정부는 크룹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기로 했습니다.” 크룹의 27만 톤에 달하는 설비들이 배상물품으로 실려 나갔다. 80채의 건물이 철거 되었다. 18만톤의 철과 강철이 고철로 변했다. 1920년 당시 11만 5,000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던 크룹의 잔재는 완전히 사라졌다.
크룹의 가족사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19세기 초반까지 땀과 근심, 천재 발명가 프리드리히 크룹의 사업적 불운에 관한 역사이며, 다른 하나는 아들 알프레드와 손자 프리드리히 알프레드 크룹이다.
창업자 프리드리히 크룹(Friedrich Kupp. 1787~182년)은 독일 프로이센의 탄광 도시 에센지역의 대장장이였다. 그는 라인 강변에 작은 물레방아를 짓고 영국의 제강기술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나 기술적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가산만 탕진했다. 39세밖에 안된프리드리히는 결국 사망했다. 남은 것은 오두막과 14세의 어린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바로 크룹을 거대 기업으로 일군 알프레드 크룹(Alfred Kupp, 1812~1887)이다. 알프레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연구를 거듭한 끝에 철강 제조에 성공했다. 공구와 식탁 나이프, 스푼을 생산했다. 금형으로 꽃무늬가 있는 숟가락을 처음 만들어 냈다. 화폐 주조와 주조기계, 증기기관차의 바퀴도 제조했다.
1835년 독일에 철도가 깔리자 알프레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강철시대에 살게 됐다.”고 선언한 알프레드는 이음새 없는 철도 바퀴를 개발했다. 크룹의 상징인 세 바퀴 회사마크는 철도 차륜을 나타낸다. 알프레드는 60년간 크룹을 이끌었다.
3세인 프리드리히 알프레드는 15년간, 구스타프 크룹 폰 볼렌 운트 할바흐 박사(상속녀 베르타 크룹의 남편)는 37년간 크룹의 사장 자리를 지켰다.
알프리이트 크룹은 16년간 회사를 맡았다. 베어 톨트 바이츠는 1953년부터 2000년까지 47년 동안 재단이사장을 역임했다.
크룹은 사실 대포의 생산을 통해 엄청난 부를 이뤘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克式’대포와 중국의 ‘야산 포대’(胡山炮台)가 크룹의 대포를 구매하여 만들어진 것이란 점이다. 5세대에 걸쳐 200여 년간 철강 사업을 이어간 크룹 가문의 향기는 죽음을 불사한 기술개발이 으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