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투기 정황이 경찰 수사로 드러났다.
성남 지역 재개발 사업을 하면서 인근 공인중개사들과 결탁하거나, 친척 및 지인들과 함께 아예 부동산 개발회사를 차려 조직적 투기를 벌였다고 한다. 말이 부동산 개발이지, 정확히 표현하면 ‘기획 부동산’이다.
기획 부동산이란 각종 개발 호재를 미끼로 토지를 쪼개거나 지분을 나눠 분양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의 개발 계획을 미리 파악해 투자를 하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이용해 투자를 권유하는 방식이다.
회사까지 차려 본격적으로 땅 투기에 나선 인물은 LH 현(現) 직원 A 씨로 확인됐다.
그는 2017년 신도시 개발 부서에서 근무할 때 알게 된 내부 정보를 이용해 친척 및 지인 등 36명과 땅을 사들여 현재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2016년 LH 직원과 친인척, 지인들과 함께 전북 전주에 부동산 개발회사를 차렸는데, LH 직원들은 차명(借名)으로 법인 설립을 주도했다고 한다.
아무리 ‘N잡러’ 시대라지만, 재직 중에 회사까지 차리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창업을 할 거면 회사를 나가서 해야 한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에서 고액 연봉과 각종 혜택을 누리며 공개되지 않은 내부 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를 벌였다니 이 정도면 부패의 ‘복마전(伏魔殿)’과 다름없다. (※ N잡러란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의 ‘Job’ 그리고 사람을 뜻하는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로 본업 외에 여러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LH는 한국토지주택공사법에 의해 설립되고, 자본금 40조 원 전액을 정부가 출자한 공기업이다. 사익(社益)을 추구해야 할 직원들이 사익(私益)을 추구했으니 명백한 ‘이해충돌’이다. 민법의 기본 원칙이라 할 수 있는 신의성실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또한 근로계약 상 경업피지 의무에 대한 위반이다. 경업피지(競業避止)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결코 회사와 경쟁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신(神)의 직장’에 다니는 직원들이 어쩌다 탐욕에 눈이 먼 ‘투기의 신’이 되었을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입사한 똑똑한 직원들이 어떻게 부패한 직원들로 변했는지 궁금해 진다. 회사가 유독 탐욕스럽고 부정한 사람들을 뽑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패의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그동안 밝혀진 대담한 행동을 보면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왠지 내부통제가 취약했거나, 조직 내 비윤리적 관행이 만연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부정행위가 발각되었더라도 관대하게 처벌하는 조직 문화가 있었을 수도 있다.
2014년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을 기억할 것이다. 특히 10화 ‘박 과장 비리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박 과장(배우 김희원)은 첫 장면에서 인상적인 대사를 남겼다. “재미 없네, 돈은 니들이 다 처먹고, 난 월급만 받으면 땡이냐?” 회사를 다녀봤으면 솔직히 공감되는 대목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박 과장이 타락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처음 업체에 가서 업체 사장이 돈 봉투를 주려고 하자, 박 과장은 동 봉투를 거절하며 “안 되는 거는 안 되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업체 사장이 건네는 돈봉투를 받아 들인다. 그다음에 업체에 가서는 자신의 통장계좌번호가 적힌 메모를 탁자 위에 올려 놓으며 “여기로 20 프로(%) 보내주세요, 애들 시켜서”라고 말하며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업체 사장이 뒷돈을 요구하는 박 과장에게 “스케일 있게 해야지, 현지에 허름한 업체 하나 인수해 버려”라고 솔깃한 제안을 한다. 박 과장은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 실행에 옮기고, 결국 회사 내부감사에서 사상 최악의 비리 사실이 드러나 회사를 떠나게 된다.
나름 회사에서 실적을 올리고도 정당한 대우를 못 받은 것이 불만이었던 박 과장은 나가서 독립하기 보다는 회사 혜택은 누리면서 부패한 직원으로 사는 것을 선택했다 파국을 맞이한 것이다.
최근 LH 직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LH의 회사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윤리경영과 관련된 규정들이 많다. 그 규정들 중에는 이해충돌을 금지하는 조항도 있을 것이다. 사실 직원들의 이해충돌 여부는 조직에 아무리 많은 감사 인력이 있다고 해도 본인이 신고하지 않은 이상 확인하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직원들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
부패 사건으로 인한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동안 이해충돌과 관련된 이슈가 많았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법은 없었다. LH 사태는 지난 9년 동안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 법은 국민권익위원회가 2013년 국회에 법안을 처음 제출한 이후 9년여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드디어 내년 5월 19일 시행될 예정이다. 당초 청탁금지법에 포함되었던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국회의 반대로 통째로 빠져, 청탁금지법은 그동안 반쪽자리 법으로 지금까지 온 것이다.
지난 6월 7일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LH 혁신방안에는 많은 세부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그중에는 기능 조정과 함께 인력도 20% 이상(약 2,000명) 감축을 추진한다는 계획도 있다.
만약 이번 경찰 수사에서 부동산 법인 설립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법인 설립에 참여한 직원 들은 자신이 감축 대상이 되더라도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확실한 노후 준비는 해 두었으니 말이다. 재직창업(在職創業), 정말 공기업 직원이 이러면 안 되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