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일본 실패는 자신의 결정 따른 결과
한국 조선 미래 어떤 길 가느냐가 관건
통상 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에는 원가 경쟁력보다는 제품의 성능, 납기 및 품질 관리능력, 설계, 생산 기술력을 평가한다. 고객인 선주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선박을 주문하는 고객, 선주가 선박을 발주하는 것은 미래를 약속하는 커다란 기회이자 엄청난 위험을 동반하는 도전이다.
국제 항로에 취항하는 보편적 규모의 선박 한 척을 새로 건조하려면 선주는 적게는 수천만 달러(한화 수백억 원)에서부터 수십억 달러(수조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대규모 투자 계획이 성공하는 경우에는 엄청난 부를 창출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회사가 무너질 수도 있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 글 싣는 순서 -
① 조선업의 부활 후판시장 활력...하반기 수요 '맑음'
② '사양산업' 논란, 대체 수단 '無' 시장 수요 충분
③ 한‧중 ‘인건비 격차’ 10년간 2배 유지
④ ‘표준 선박 대량생산’ 일본, 오히려 쇠락
⑤ 한국 미래는 한국의 선택에 달려있다
선주는 발주에 앞서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를 빈틈없이 자세히 검토한 후 결정을 내리게 된다. 업계에서는 발주 전 선주의 결심과정은 마치 두드려 보면 건넌 돌다리도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신중히 처리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따라서 선주는 취항할 항로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진 선박의 종류, 척수를 결정하고 건조를 위한 자금 계획을 수립한다.
경쟁력을 가진 선박은 해당 항로에서 운항하는 우수 실적선보다 운항 경제성이 우수한 것으로, 이는 항상 선주가 최고의 성능을 가진 선박을 추구하는 이유가 된다. 그와 함께 기존 우수 실적선의 성능을 능가하는 새로운 선박을 설계해 건조할 수 있는 적당한 조선소에서 선박을 공급받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선주는 끊임없이 해운 시황의 변동과 신조 및 중고선 선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을 거쳐 시황에 적용할 수 있는 성능을 발휘할 선박을 적정한 가격으로 신조할 계획을 세운다. 또한, 선주의 요구 조건이 정해지면 조선소와 제반 요구 조건을 협상해서 원만하게 타결해야 하므로 기술 요소의 공신력 있는 판단을 얻기 위해 적정한 중개인이나 선급협회 등에 위임하여 요구 조건에 대한 조정과정도 거친다.
선주의 선박 발주는 도박에 가까운 모험
다시 말해, 선주는 목적이 화물 운송이기 때문에 사업비용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료비의 절감, 즉 연비 성능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환경규제까지 포함하여 사업 운영 리스크가 더욱 커졌기 때문에 사양서에 나와 있는 성능은 당연히 만족해야 하고 그 성능을 되도록 길게 유지하는 신뢰성 있는 제품이 필요하다.
또한, 선박은 기성품을 사는 게 아닌 주문제작을 하는 것이므로, 내화물 특성과 주요 루트 및 항구 조건에 최적화되도록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조선소, 그렇게 맞춰줄 수 있는 엔지니어링 능력을 갖춘 조선소를 선호한다. 선박은 주문한 이후 최소 2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는데, 약속된 기간 안에 못 받으면 화주(운송할 화물의 주인) 혹은 용선주(내 배를 빌려 쓸 손님)와의 계약이 깨지거나 큰 손해를 볼 수가 있다. 게다가 운송하는 화물 종류가 가스나 기름, 화학제품 같은 것이라면 배의 결함이나 기능상의 오류로 화물이 유출될 경우, 선주 회사는 큰 위험에 빠지게 되고 천문학적인 보상이 뒤따르는 환경적 재앙의 주범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선주들은 되도록 기존 거래를 통해 수년간 검증된 기술과 제작 경험, 능력을 갖춘 조선소를 선호하는 보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보수적인 성향의 선주들은 오랜 거래를 통해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하는 것을 선호하며, 발주 시 조선소의 기본 역량, 즉 성능, 품질, 납기관리 능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아직은 한국의 조선소들이 이런 부분에서 경쟁국 대비 낳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배 가격이 싸고 안 싸고는 이런 기본적인 조건을 만족한 후에 비교 검토하는 두 번째 조건이다.
조선 산업 흐름은 ‘기회 이동의 결과’
현재는 극심한 ‘발주량 부족’과 ‘낮은 선가’의 상황으로 조선소들이 극한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따라서, ‘원가 절감’이 다른 경쟁 요소를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 인식과 원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더 중요한 근원적인 경쟁력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원칙 정도는 있어야 한다.
통상 조선 산업에서의 경쟁력의 변화는 ‘기회 이동의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경쟁력의 차이 때문에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기회의 이동(변화) 때문에 경쟁력의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즉, 영국에서 일본으로 조선 산업의 패권이 넘어간 것은 “일본이 경쟁력이 좋아짐으로 인해 기회가 일본에 넘어간 것”이라기보다는 “영국이 제조업을 포기하고 기술 및 금융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 일본이 경쟁력을 갖추게 된 기회가 된 것이다. 한국이 경쟁력이 좋아서 일본을 제치고 조선 강국이 된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데로 일본의 오판과 패착으로 인한 ‘기회의 이동’이 한국이 경쟁력을 갖게 된 원인이다.
따라서, 한국 조선 산업의 미래도 ‘기회 이동의 결과’ 측면에서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 한국의 어떠한 국가적인 정책의 변화나 한국 조선업계의 오판이나 패착이 중국 등 후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료: 대한조선학회,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이종무 대우조선해양 책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