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는 잔뜩 화나 있고 갈등이 존재한다. 醫-政 갈등, 직장 내 갈등, 젠더 갈등, 세대 갈등, 빈부격차, 이념 갈등 등 출구 없는 갈등으로 인해 마음이 도둑을 맞은 상황이다. 갈등은 화와 분노, 좌절을 낳고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야기하며 상대방에 대한 공격에 이르기도 한다.
직장 상사가 “이건 아니잖아! 다시 해와”라며 다른 사람 앞에서 무안을 줄 때 순간 욱하고 화가 솟구치기 마련이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인한 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2008년 강제 철거당한 토지 보상 문제로 불만을 품은 한 노인의 화가 방화로 이어져 600년 역사의 국보 1호 숭례문이 전소되었었다.
한의학에서 화(火)란 오행의 하나로 격렬한 감정이나 심기의 흥분을 뜻한다. 감정, 즉 칠정(노함, 기쁨, 생각, 근심, 슬픔, 두려움, 놀람)이 과도하면 각 소속 장부에서 화가 일어나 각종 나쁜 증상을 유발한다. 몸의 어느 한 부분에 열이 발생해 병을 일으키는 병리적 현상을 일으킨다.
동의보감에 화(火)란 모든 물질을 없어지게 하며, 심지어 쇠를 녹이고 물을 말려 질병에 이르게도 한다. 옛날 명의들은 ‘화라는 것은 원기와 곡기와 진기의 적’이라고 했다. 인체가 항원에 대항하기 위해 싸우기에 그만큼 체력이 소모된다. 모든 감정은 우리 마음에서 달아 오르기도 하고 또 사그라질 수도 있다. 화가 나면 몸 전체 근육이 긴장한다. 교감신경의 흥분으로 동공이 확대되고 얼굴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지고 건강에도 악영향이 된다.
한국인들에게 유독 화병이 많다고 한다. 화병은 미국 신경정신학회에 올라 있을 정도로 한국인만 소유하고 있는 특별한 정신질환이다. 남과 비교하거나, 쉽게 판단하고,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우월성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스토아 철학의 대가인 로마의 세네카는 “화는 마치 후퇴하라는 장군의 지시도 무시하고 멋대로 날뛰는 골치 아픈 병사처럼 제멋대로이고 통제가 불가능한 고집불통”이라고 정의한다. 이처럼 화는 통제 불능이지만 감정 조절에 따라 순한 양이 될 수도 있다. “성급하게 화내지 마라, 화내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품에나 머무르는 것이다”-전도서 7:9
탁닛한 스님의 저서 ‘화(火)’에서 마음속의 화란 씨앗과 울고 있는 아기로 비유하며 보듬고 달래라고 충고했다. 화를 다스려 내면의 평화를 구하라고 한다. “화(火)를 안고 사는 것은 독소를 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는 나와 타인의 관계를 고통스럽게 하며 인생의 많은 문을 닫히게 한다.
화를 피하는 쉽고도 편한 방법은 일단 3초만 참아 위기를 넘기는 것이다. 3초 동안에 화의 씨앗을 제거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화를 분출한 후에 자신에게 닥쳐올 불행을 깊이 성찰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슬기롭게 화를 삭이는 방법은? 첫째, 명상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 심호흡을 하라. ‘천천히 괜찮아, 괜찮아’하고 혼잣말을 한다. 둘째, 화가 날 때 스스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셋째, 화가 나면 일단 그 자리를 떠난다. 더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그 상황에서 벗어나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는다. 넷째, 용서한다. 나를 화나게 만든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이 왜 그런 행동을 나에게 했는지 상황을 돌이켜 보고 그 사람을 용서하려고 노력할 때 자연히 나의 화도 풀린다. 화를 내는 것은 남의 잘못에 대한 보복을 우리 스스로에게 하는 잘못된 방법이다.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화는 감각과 심리 마음에서 비롯된다. 화를 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패전국인 독일에 지나치게 배상금액을 물린 화의 결과로, 20여 년 만에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했다.
여유로운 마음, 부드러운 말 한마디, 따뜻한 미소를 생활화해보면 어떨까. 동의보감의 심자일신지주(心者一身之主)는 화는 남보다 나를 더 해친다. 지독히 화가 날 때에도 떠나간 사람을 떠올리며 삶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생각하자. 스스로의 마음을 주인으로 삼고,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