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6월 기준 128개 국가, 235개 도시, 702개 기업(Forbes Global 2,000 기업 중)이 넷제로 또는 탄소중립 목표를 수립한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이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83%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중립 목표 시점으로는 2041∼2050년의 비중이 가장 높으며, 탄소중립을 법제화하거나 정책문서에 명시한 정부의 비중은 ‘20년 12월 기준, 전체의 10% 수준에서 ’22년 6월 65%까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한 국가의 약 40%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기타 온실가스를 탄소중립 추진대상에 포함하였으며, 30% 이상의 국가는 이산화탄소의 넷제로만 목표로 명시하였다. 702개 글로벌 기업 중 탄소중립 목표를 기업 경영전략 문서나 연차보고서에 반영한 사례는 절반 이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와 같이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주요 정책 방향으로 탄소중립(넷제로)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를 보면 탄소중립 정책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비용과 편익에 관한 검토가 미흡하고, 탄소의 사회적 비용(SCC)처럼 분석과정에서 사용되는 주요 수치뿐만 아니라, 기후-에너지-경제를 포괄하는 다양한 모형 방법론에 대한 검토도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한국 정부가 2050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제도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그동안 탄소중립 논의는 ‘피할 수 없는 길’, ‘가야만 하는 길’과 같이 당위성과 도덕성, 윤리성만을 강조할 뿐, 정작 목표 달성을 위한 이행방안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2030 NDC 상향안’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모두 단순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만 제시하고 있으며, 「탄소중립기본법」 또한 기후대응 기금과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예산제도를 도입하도록 하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정책수행의 근거가 되는 비용 추산은 빠져있는 상태이다.
대부분 탄소중립 추진을 위해서 투자되는 예산들을 살펴보면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 등과 같은 기술개발 R&D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과제 중 하나는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될 “산업전환의 고통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이다.
이 길을 앞서 걸어간 국가들은 화석연료 발전부문, 탄소 다배출 제조업, 내연기관차 관련 업종 등의 산업전환 압력이 특히 거셀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소요 비용과 고통 역시 매우 크다는 경험을 한 바가 있다. 즉, 탄소중립 과정에서 이들 관련 산업들이 쇠퇴하게 되면 수 많은 근로자들의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지역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과정에서 특정 산업과 종사자, 지역사회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거나 낙오 또는 소외되지 않도록 해결법을 모색하는 것이 ‘산업전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전환은 이미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논의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이슈로 다루어져 오고 있으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노동 전환을 적극 지원한다는 산업전환의 원칙은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정 전문에 명시되어 있으며, 2021년에도 재차 확인된 바가 있다.
EU와 미국 역시 에너지 전환과정에서 무엇보다 ‘산업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에서는 산업의 쇠퇴, 사업축소, 일자리 감소 등이 불가피한 관련 산업과 업종 종사자들을 위해 공정전환 기금을 조성하고 업종전환, 교육 및 직업훈련 등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EU는 그린딜 예산의 약 15%를, 미국은 기후관련 투자의 40%를 공정정환 관련 예산으로 책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산업전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정작 예산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22년도 탄소중립 예산 중 산업전환 관련 예산은 4%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한국의 산업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 상대적으로 더 큰 산업전환의 고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높을 뿐만 아니라 제조업 중에서도 탄소배출 업종의 비중의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제조업 비중은 27%로, 제조업 비중이 10% 전후에 불과한 미국, 영국 등과 비교하면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제조업 중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의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탄소중립 추진에 따른 산업의 전환과정에서 겪어야 할 피해와 고통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음을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산업전환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해당 부문을 중심으로 신속한 업종전환, 일자리 재배치, 근로자 재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준비할 기회를 놓칠 경우, 그 고통과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산업구조라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은 탄소 감축에 따른 사회·경제적 편익을 화폐가치로 환산할 경우, 탄소중립 정책의 필요성을 뒷받침하고 국민적 수용성을 높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탄소중립 관련 R&D 위주의 예산 편성과 근거가 약한 추측성 비용에만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다. 이에 따라 파당적인 진영 논리를 강화하고 있어 정작 탄소중립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리 사회가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