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재를 선택하는 ‘손’이 바뀐다…에이전틱 AI가 여는 철강 신수요
[기고] 강재를 선택하는 ‘손’이 바뀐다…에이전틱 AI가 여는 철강 신수요
  • 윤태양
  • 승인 2026.09.23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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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단계 AI가 공사비·탄소·공기 비교…철강수요 결정방식 근본적 변화
모듈러·내진보강·BESS·데이터센터·SMR·해외 EPC ‘6대 시장’ 주목
“강재 아닌 시스템 팔아야”…설계·안전·디지털 데이터까지 경쟁력으로

철강업계에 신속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페로타임즈는 시장의 주요 현안을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분야 전문가들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새로운 해법과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특히 AI와 디지털 전환으로 산업의 생산·설계·영업 방식까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철강업계 내부의 시각만으로는 새로운 시장 변화를 충분히 읽어내기 어렵습니다. 이에 페로타임즈는 철강과 밀접한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축적한 전문가들의 기고를 통해 산업 변화와 새로운 수요 창출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토목공학 박사로서 오랜 기간 강구조 연구개발과 철강 솔루션, 건설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전문 지식과 현장 경험을 쌓아온 윤태양 이노콘강구조연구소장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윤태양 이노콘강구조연구소 소장
윤태양 이노콘강구조연구소 소장

건설현장에서 강재를 선택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구조 엔지니어의 경험과 설계 관행, 발주자의 판단이 철골과 콘크리트 등 구조재 선택을 좌우했다. 앞으로는 이 과정에 에이전틱 AI(Agentic AI)가 깊숙이 개입하게 된다.

구조 엔지니어가 설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소프트웨어 에이전트가 여러 구조 대안을 만들고 공사비와 내재탄소, 공사기간, 구조성능 등을 비교해 최적안을 제시하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사람이 최종 판단을 내리지만, 사실상 자재 선택은 그 이전의 디지털 설계 과정에서 상당 부분 결정될 수 있다.

이는 철강산업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내 건설시장은 오랜 기간 정체돼 있고 철강업계는 제한된 수요를 놓고 물량과 강종, 가격을 중심으로 경쟁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단순히 강재의 성능을 높이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수요가 결정되는 지점 자체가 설계 소프트웨어 안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 수요 감소보다 중요한 것은 ‘결정 지점의 이동’

그동안 철강은 구조 엔지니어의 경험과 축적된 설계 관행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하지만 다음 세대 엔지니어에게 조언하는 주체가 AI 에이전트가 된다면 이러한 관행이 자동으로 이어진다고 장담할 수 없다.

에이전트는 철강과 콘크리트, 다양한 신소재를 동일한 조건에서 비교하게 된다. 구조성능뿐 아니라 공사비와 탄소배출량, 시공기간, 안전성까지 수치화해 판단한다. 결국 철강업계는 ‘우리 제품이 우수하다’고 홍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설계 과정에서 강재가 합리적인 선택으로 평가될 수 있는 데이터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새로운 강재 수요가 기대되는 분야도 비교적 분명하다.

우선 모듈러 공공주택과 OSC(Off-Site Construction), 노후 건축물의 내진 보수·보강, BESS(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와 재생에너지·수소 관련 구조물, 데이터센터와 AI 도시, 소형모듈러원전(SMR), 해외 EPC 프로젝트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분야는 기존 건설시장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공업화·표준화가 진행되고 강재 사용 비중을 높일 수 있는 시장이다.

특히 모듈러와 OSC는 중요한 선행시장이다. 공장에서 구조물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인 만큼 자재와 접합부, 구조 시스템의 표준화가 빠르다. 한 번 설계 플랫폼의 표준 사양으로 채택되면 같은 방식이 여러 프로젝트에서 반복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 ‘강재 판매’에서 ‘강재 시스템 판매’로

철강업계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앞으로는 철강재 몇 톤을 판매했다는 개념을 넘어 강재가 포함된 구조 시스템 전체를 상품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고강도 강재와 접합기술, 모듈러 철골 키트, 설계 프로그램, 시공기술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듈러 건축에서는 단순한 H형강이나 철근 공급보다 구조 설계와 접합부 상세, 시공법까지 포함한 완결된 시스템을 제시할 수 있다. 구조 부재에 센서를 적용한다면 준공 후에도 변형이나 진동, 구조 건전성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철강재가 단순한 소재에서 데이터를 생산하는 구조부재로 진화하는 것이다.

에이전틱 AI 시대의 마케팅 역시 기존 방식과 달라야 한다.

강구조 설계 에이전트를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과 연계해 강재와 경쟁 소재를 공사비·탄소·공기·구조성능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비교하도록 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KDS 등 국내 설계기준을 적용해 모듈러나 내진 구조의 접합부를 자동 생성할 수도 있다.

여기에 강재의 밀시트와 생산이력, 허용하중 등을 AI가 직접 읽을 수 있는 ‘자재 패스포트’를 구축한다면 설계에서 시공, 유지관리까지 연결되는 새로운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중요한 것은 AI가 무조건 철강을 추천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경쟁 소재보다 경제성과 환경성, 시공성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다른 소재를 추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설계자와 발주자가 시스템을 신뢰한다. 객관적인 비교 속에서도 강재가 선택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진정한 경쟁력이다.
 

■ 안전까지 강재의 새로운 부가가치로

안전 역시 중요한 시장이다.

센서를 내장한 철골 부재와 컴퓨터 비전을 활용한 현장 모니터링, 구조 건전성 예측, 안전 문서 자동 작성 등을 철강 공급과 결합할 수 있다. 중대재해에 대한 사회적·경영적 책임이 커질수록 강재의 가치는 단순한 구조성능을 넘어 ‘안전 시스템’으로 확대될 수 있다.

한국 철강산업이 처한 문제를 단순히 수요 부족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자재가 선택되는가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 세대 엔지니어는 AI의 도움을 받아 설계하게 될 것이다. 설계 소프트웨어 안에서 한 번 형성된 표준과 기본값은 오랫동안 반복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철강업계는 에이전틱 AI를 생산성 향상을 위한 내부 도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강재 수요를 만드는 수단으로 바라봐야 한다. 모듈러와 OSC, 내진 보강, 에너지 인프라, 데이터센터, SMR, 해외 EPC 등 새로운 시장에서 강재와 설계기술, 공법, 데이터와 안전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야 한다.

앞으로 10년의 철강 수요는 단순히 더 좋은 강재를 생산하는 기업보다 자재가 결정되는 순간에 먼저 들어가 있는 기업이 만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윤태양 박사 프로필]

- 현재 이노콘강구조연구소 소장

- 미국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 토목공학 박사

- 미국 Oregon State University 토목공학 석사

-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 다스코㈜ 부회장

- 포스코건설 엔지니어링본부장·전무

- 포스코 철강사업본부 솔루션마케팅실 전무

-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강구조연구소장

- 국토교통부 모듈러교량연구단장·스마트건설기술개발 연구책임자

-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원로회원, 한국강구조학회 이사

- 대한민국 산업포장·IR52 장영실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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