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이번 프로젝트는 틀림없이 실패할 거야.”, “예전에도 그랬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야.” 직장생활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판단들이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 머릿속이 만들어낸 착각에 불과한 것일까?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부른다. 휴리스틱이란 복잡한 문제를 빠르게 판단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정신적 지름길, 즉 어림짐작으로 내리는 판단을 뜻한다. 이 지름길 덕분에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가지 결정을 순식간에 내릴 수 있다. 문제는 이 편리한 지름길이 때때로 심각한 판단 오류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조직 생활의 갈등과 오해, 잘못된 의사결정의 상당수가 바로 이 휴리스틱의 함정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뇌는 하루에도 방대한 양의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만약 모든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으로 분석한다면, 우리는 온종일 단 하나의 결정도 내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뇌는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빠르게 결론을 내린다. 예를 들면 길을 걷다가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면 반사적으로 몸을 피한다. 문제는 이 빠른 판단 방식이 생존의 현장이 아닌 조직의 회의실, 인사평가 자리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사고 체계를 ‘빠른 생각(System 1)’과 ‘느린 생각(System 2)’으로 구분했다. 빠른 생각은 효율적이지만 오류가 많고, 느린 생각은 정확하지만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조직 생활의 문제는 정작 신중하게 다뤄야 할 사안에서조차 ‘빠른 생각’이 지나치게 많이 개입한다는 데 있다.
모 회사의 신입사원이 입사 첫날 깔끔한 정장 차림에 조리 있는 말솜씨를 보였다면 상사는 곧바로 생각한다. “저 친구는 일도 잘하겠군.” 그러나 몇 달 후 첫인상이 좋았던 직원은 실수가 잦고 열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대표성 휴리스틱’이다. 어떤 대상을 판단할 때 실제 본질과는 무관한 몇 가지 표면적 특징만으로 전체를 규정해 버리는 오류다. “명문대 출신이면 능력이 뛰어나다.”, “말 잘하면 리더십도 좋을 것이다.”라는 통념들이 대표적이다. 조직은 사람을 평가할 때 첫인상이 아닌 행동과 축적된 성과를 제대로 관찰해야만 지속성장할 수 있다.
몇 년 전 한 기업에서 직원 한 명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 사건으로 인해 이후 비슷한 업무가 거론될 때마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 일은 위험해.” 그러나 실제 데이터를 살펴보면 성공 사례가 훨씬 많았다. 다만 실패의 기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를 ‘가용성 휴리스틱’이라 부른다. 공식적인 통계나 자료보다, 자신이 직접 목격했거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을 실제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현상이다. 뉴스에서 비행기 사고 소식을 접하면 비행기가 유독 위험하게 느낀다. 실제 이동 거리 대비 사고율은 자동차가 훨씬 높은데도 말이다. 조직에서도 단 한 번의 실패가 수십 번의 성공을 덮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리더는 감정적으로 각인된 기억이 아니라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려는 ‘확증편향’이 있다. 어떤 부장이 특정 직원을 못마땅하게 여기면, 그 직원이 열 번을 잘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이런 말을 남겼다.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은 따로 있다. 바로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1912년 침몰한 타이타닉호는 휴리스틱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당시 사람들은 “이 배는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 결과 구명보트 수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았고, 항해 중 들어온 위험 신호들을 과소평가했다. 결국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참사로 이어졌다. 조직에서 휴리스틱을 현명하게 다스려야 한다. 휴리스틱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야 할 대상도 아니고 오히려 잘 활용하여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그 오류의 가능성을 줄이는 태도란 무엇인가?
첫째, 중요한 결정일수록 한 번 더 의심하라. 즉각적인 결론이 떠오를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놓치고 있는 사실은 없는가?”, “이 판단에 반하는 증거는 무엇인가?” 이 두 질문만으로도 상당수의 오류를 예방할 수 있다. 둘째, 데이터와 감정을 분리하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개인적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객관적인 수치와 기록을 살펴보자. 이는 성과평가와 인사 결정에서 특히 중요하다. 셋째, 반대 의견을 환영하라. 훌륭한 조직은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회의 시간에 일부러 ‘반대 의견 담당자(devil's advocate)’를 지정해 다른 관점을 강제로 제시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넷째,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라. 집단사고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세대와 직군의 의견을 두루 듣는 과정이 판단의 질을 높인다. 다섯째, 중요한 결정은 하룻밤 재워라. 감정이 배제하고 무게 있는 의사결정일수록 시간을 두고 검토하자.
조직 생활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며 생각의 지름길을 다스리는 자가 리더가 된다. 문제를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보고 자신이 해석한 현실을 사실이라 믿지 않아야 한다. 에픽테토스는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휴리스틱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얻어낸 위대한 생존 도구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면 편견이 되고, 의식적으로 다스려 사용하면 지혜가 된다.
성숙한 직장인은 자신의 판단을 한 번 더 점검할 줄 아는 사람이다. 조직의 수준은 구성원 개개인이 가진 지식의 총량보다, 그 조직이 내리는 판단의 질에 의해 결정된다. 좋은 판단은 더 많은 정보를 쌓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에서 시작된다. 오늘 회의에서 누군가를 평가하기 전에, 혹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잠시 멈춰 스스로 물어보자. “지금 내가 내린 이 판단은 사실인가, 아니면 휴리스틱의 함정인가?” 그 짧은 질문 하나가, 어쩌면 한 조직의 미래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