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경쟁의 쓸모
[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경쟁의 쓸모
  • 김진혁
  • 승인 2026.09.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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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대표  (행정학 박사)
김진혁 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대표 (행정학 박사)

“나는 연습에서든 실전에서든 이기기 위해 농구를 한다. 그 어떤 것도 승리를 향한 나의 경쟁적 열정에 방해가 되도록 하지 않겠다.” — 마이클 조던

경쟁은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경쟁 속에서 성장한다. 학교에서는 성적을 경쟁하고, 직장에서는 승진을 경쟁하며, 기업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국가는 세계 경제 속에서 경쟁한다. 경쟁이 없다면 발전도 없다는 말은 너무도 익숙하다. 실제로 적절한 경쟁은 인간의 잠재력을 깨우고 혁신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경쟁은 과연 건강한 경쟁일까. 아니면 모두를 지치게 하는 무한경쟁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경쟁이 만든 진보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생존 경쟁을 통해 종이 진화한다고 설명했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역시 자유로운 경쟁이 시장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경쟁은 기록을 새롭게 만들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감동을 선사한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높이뛰기 선수 딕 포스베리는 기존의 정면뛰기를 버리고 등을 먼저 넘는 ‘포스베리 플롭’을 개발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스포츠 역사를 바꾼 것이다. 기업 세계에서도 경쟁은 기술혁신을 촉진했다. 스마트폰, 인공지능, 전기자동차의 발전은 치열한 경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심리학에서도 적절한 긴장은 능력을 향상시킨다. 일정 수준의 압박은 집중력을 높이고 성취욕을 자극한다. 그래서 경쟁 자체를 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경쟁의 존재가 아니라 경쟁의 정도와 목적이다.

삶 전체가 경쟁이 될 때

오늘날 한국 사회는 경쟁을 삶의 일부가 아닌 삶 자체로 만들어버렸다. 입시, 취업, 결혼, 집 사는 것조차 경쟁이다. 심지어 SNS에서는 행복마저 경쟁의 대상이다. 남보다 더 성공해야 하고, 유명해야 한다는 압박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경쟁이 성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쟁이 된다. 죽음의 공포는 인간을 더 빨리 달리게 할 수는 있지만 절벽 끝에서 평생 달리는 삶을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공포는 순간적인 성과를 만들 수는 있어도 행복한 사회를 만들지는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는 경쟁이다.

건강한 경쟁에는 “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있을 때 사람들은 더 과감하게 창업하고, 연구하고, 도전한다. 반대로 최소한의 삶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경쟁보다 생존에 집착하게 된다. 패배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인생 전체의 낙인이 되어서는 건전한 사회라 할 수 없다. 경쟁은 파괴가 아니라 창조가 되어야 한다.

왕좌를 지키는 자의 불안

많은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기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영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는 『황금가지』에서 ‘네미 숲의 왕’ 이야기를 소개한다. 왕이 되는 방법은 단 하나, 기존 왕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왕이 된 순간부터 그는 행복해지지 않는다. 언젠가 또 다른 도전자가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왕좌를 지키기 위해 밤낮없이 칼을 들고 숲을 지켜야 한다. 결국 왕좌는 최고의 영광이 아니라 최고의 불안이었다. 오늘날의 경쟁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장도 불안하다. CEO도 불안하다. 1등 기업도 불안하다. 세계 최고의 부자도 불안하다. 승자는 정상에 올랐지만 내려올까 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패자는 좌절하고 승자는 불안하다. 이것이 무한경쟁의 아이러니다.

협력이 만든 인류

인간은 경쟁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경쟁보다 협력으로 더 크게 발전했다. 고고학자들은 인류가 다른 동물보다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협동이라고 말한다. 사냥도 함께 했고, 농사도 함께 지었으며, 마을도 함께 만들었다. 의학도, 과학도, 문화도 모두 협력 속에서 발전했다. 노벨상을 받는 연구 역시 대부분 수 많은 연구자들의 공동 연구 결과다. 기업도 혼자 성장하지 않는다. 좋은 직원, 좋은 고객, 좋은 협력업체가 함께 성장할 때 지속 가능한 성공이 가능하다.

성경이 말하는 경쟁 역시 게으름의 반대일 뿐, 남을 짓밟는 싸움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달음질하는 자들처럼 달리라.”고 했지만, 동시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권했다. 승자독식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 정신이다.

진짜 상대는 어제의 나

진정한 경쟁은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의 경쟁이다.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교의 기준은 남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이어야 한다. 마라톤 선수들은 같은 출발선에서 자신의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뛴다. 삶도 마찬가지다. 남보다 앞서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어제보다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 성공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정한 경쟁과 따뜻한 공동체를 함께 만드는 일이다.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며, 승자에게는 책임을, 패자에게는 희망을 주는 사회 말이다. 무한경쟁은 결국 모두를 지치게 한다. 일등도 불안하고 꼴등도 절망한다. 인간은 경쟁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창조된 존재다. 경쟁은 공동체를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사회는 더디더라도 오래 번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을 이기는 경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경쟁이다. 경쟁이 혁신을 만들고, 협력이 공동체를 지킬 때 비로소 사회는 발전한다.

가장 아름다운 승리는 혼자 정상에 서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희망을 품고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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