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이 오르면 우리는 주유소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더 깊은 곳에서 경제를 흔드는 것이 따로 있다. 나프타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산업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물질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문제가 드러났다. 기름값은 신호에 불과했다. 여수의 공장들이 원료를 못 구해 가동을 줄이고 있다. 정부가 나프타를 ‘경제안보 품목’으로 묶고, 매점매석을 금지한 이유다. 석유화학 공장들이 원료를 걱정하는 상황, 이 자체가 비상이다.
재정경제부와 산업통상부는 4월 15일부터 석유화학제품의 수급 차질을 예방하고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석유화학제품 원료 등의 매점매석 금지 규정’을 시행한다고 14일 고시했다.
이번 조치는 기존 나프타에 더해 이를 활용한 석유화학 원료 및 최종 제품까지 관리 범위를 확대한 것이 핵심이다.
우리가 흔히 석유라고 부르는 원유는 정제 과정을 거쳐 끓는점에 따라 다양한 연료와 원료로 나뉜다. 나프타는 원유를 증류할 때 LPG와 등유 유분 사이에 유출되는 것으로, 30~170도 사이에서 나오며, 전체 석유제품 생산량의 15~30%의 비율로 추출되는 핵심 성분이다.
나프타는 그 자체로 연료로 쓰이기보다, 고온에서 분해되어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화학 원료로 변신한다. 마치 밀가루가 빵, 면, 과자 등 수많은 음식의 기본이 되듯, 나프타는 현대 문명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물건의 ‘기초 반죽’ 역할을 한다.
아침에 눈 뜨고 손에 쥐는 스마트폰 케이스, 편의점에서 사는 생수병, 배달 음식 담긴 용기. 운동복, 러닝화, 자동차 타이어. 심지어 약국에서 사는 아스피린과 연고, 화장품까지 이어진다. 나프타가 끊기면 ‘당연히 있던 것’이 하나씩 부족하다. 그리고 비싸진다.
이미 조짐이 보인다. 공장 가동률은 떨어졌고, 나프타 가격이 올랐다. 이건 곧 가격표에 찍힌다. 원재료가 오르면 물가가 오른다. 옷값, 신발값, 화장품값이 따라 오른다. 식품 포장재가 오르면 식탁 물가도 오른다. 눈에 보이는 건 몇 천 원이지만, 실제 부담은 생활 전반으로 번진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농업이다. 비닐하우스, 비료, 농약. 다 나프타에서 출발한다. 공급이 흔들리면 생산이 줄고, 결국 식탁이 영향을 받는다. “기름이 없으면 굶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
산업도 민감하다. 에틸렌이 부족하면 플라스틱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조선, 자동차, 전자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는다. 한 고리가 끊기면 사슬이 흔들린다. 우리는 연결된 경제 안에 있다.
건설은 레미콘 핵심 첨가제인 혼화제 원료가 끊겨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고 한다. 방수재와 페인트 가격 폭등으로 공사 중단을 검토하는 곳도 많다.
문제는 의존이다. 우리는 나프타의 절반 가까이 수입한다. 그중 대부분이 중동이다. 한곳에 기대면, 한 번에 흔들린다. 지금이 그렇다. 나프타 가격이 연초 대비 배나 올랐지만 구하기도 힘들다.
나프타는 뉴스의 중심에 서지 않는다.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유가를 말하고, 환율을 말한다. 그러나 나프타는 그 뒤에 있다. 조용하다. 대신 가격표로 나타난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손에 잡히는 불편으로 다가온다.
지금의 문제는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다. 기반이 흔들리면 신호는 늦게 온다. 처음에는 아무 일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일상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기반은 평소에는 잊힌다. 그러나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드러난다. 그리고 가장 크게 흔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