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은 경제학의 기본 진리처럼 통한다. 영국 경제학자 앨프레드 마셜이 1890년 『경제학 원리』에서 이를 체계화한 이래, 이 개념은 자본주의의 교과서였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 철강업계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생각이 들었다. 철강재 가격이 생산비 이하로 떨어지자, “손해 보고 만들 바엔 생산을 줄이자”는 말이 나온다. 맞는 말 같다. 그런데 막상 공장을 세우는 건 쉽지 않다.
철강업은 자본 집약적이고 고정비 비중이 높다. 가동률이 조금만 떨어져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래서 다 같이 힘든 걸 알면서도 공장은 계속 돈을 태운다. 구조조정을 하자고 해도, 고용과 지역경제, 채권 문제로 얽혀 있다. 설비를 없애기보다 주인이 바뀌는 일이 더 많다.
결국, 업계는 공급을 줄이지 못한 채, 수요가 줄어든 시장에서 출혈 경쟁을 벌인다. “시장 원리대로 간다”고 말하지만, 그 시장의 한가운데에는 인간의 ‘의지’가 있다. 불황기에는 논리가 아니라 버팀이 가격을 만든다. 버틴다는 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다. 하지만 무작정 버텨선 안 된다. 지혜롭게 버텨야 한다.
먼저 감산이다. 모든 공장을 세울 수는 없지만, 일부를 줄이는 것이다. 채산성이 낮은 라인을 멈추고, 재고를 소진해 하락 폭을 줄인다. 또 각 회사가 손익분기점 이하에서는 판매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도 방법이다. 담합은 아니지만, 출혈 경쟁을 막는 최소한의 자정 노력이다.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 가격이 바닥을 칠 때는 수출을 늘려 균형을 맞춘다. 하지만 저가 물량을 아무 데나 내보내선 안 된다. 한순간의 물량 욕심이 전체 가격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다.
무엇보다 영업 조직의 목표를 수익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할인 경쟁 대신 납기, 결제조건, 기술 지원 등 비가격 조건으로 거래를 유지해야 한다. 또 명목 가격은 유지하되, 차등 할인 구조로 시장의 가격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가격을 깎아 물량을 늘이는 영업은 공멸의 길이다.
재고 정책을 보수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가격이 바닥일 때 재고를 늘리면 후행 손실이 커지므로, 재고 회전율을 높이고 이익이 낮은 품목은 조기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장은 숫자와 그래프의 세계 같지만, 사실은 마음의 세계다. 수요와 공급이 아니라 기대와 인내가 가격을 만든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믿음이 시장을 지탱하고, “이쯤이면 됐다”는 판단이 전환점을 만든다. 심리가 꺾이면 가격도 함께 주저앉는다.
불황기의 목표는 ‘이익 확장’이 아니라 ‘손실 최소화’에 있다. 가격이 회복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재무구조와 공급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불황기에 정말 잘하는 회사는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손실을 줄이는 곳이다.
시장에서 가격은 분명 수요와 공급의 함수로 움직인다. 하지만 그 균형을 맞추는 일은 결국 사람의 판단에 달려있다. 특히 철강처럼 막대한 설비와 긴 투자를 전제로 한 산업에서는 단순한 시장 원리보다 조율과 인내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가격이 단순히 수요와 공급으로만 결정된다고 믿는 건, 현실의 복잡한 산업 생리를 놓치는 일이다. 불황을 버티는 기업은 교과서의 슬로건을 따르는 곳이 아니라, 시장의 심리와 구조적 한계를 읽고 그 안에서 길을 만들어 가는 곳이다.
결국, 가격은 숫자가 아니라 마음의 반영이다. 이를 알고 다스릴 줄 아는 업계라야 다 같이 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