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순살아파트' 등장하는 사회…'CCO' 시대를 열자
[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순살아파트' 등장하는 사회…'CCO' 시대를 열자
  • 장대현
  • 승인 2023.09.0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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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역량 있는 컴플라이언스 전문가를 키워 새로운 컴플라이언스 오피서(CCO)의 시대를 열어가자.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KCA) 대표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KCA) 대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지난 4월 지하 주차장 지붕이 무너졌다. 이 공사는 정부가 40조 원을 출자한 공기업이 발주하고, 국내 도급순위 5위에 랭크된 건설사가 시공을 맡아 진행 중이었다.

작업이 없던 늦은 밤이라 인명 피해는 없었다. 무너진 주차장 위에는 어린이 물놀이터가 설치될 예정이었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국토부 조사결과를 보니 기둥에 들어가야 할 철근이 많이 빠져 있었다. 명품 아파트를 광고하던 해당 건설사도 ‘순살 아파트’라는 불명예를 얻고 국토부와 서울시로부터 10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작년 1월 광주에 이어 대규모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건설사에도 금융사처럼 ‘준법감시인’을 임명해 사고를 미리 방지하자는 법안이 최근 발의됐다. 하지만 이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놓고 말이 많다. 23년 전 준법감시인 제도를 도입한 금융사도 횡령 사고가 끊이지 않는 판에 건설사까지 도입한다고 실효성이 있겠느냐? 는 의견이다.

하지만 금전적 피해만으로 끝나는 금융사고와 달리 건설사고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돼 있다. 사고 예방을 위해선 뭐라도 해야 할 상황이다.

건설사는 철근을 빼먹고, 금융사는 고객이 맡긴 돈을 직원들이 빼돌리고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나마 금융사는 준법감시인 제도가 운용되고 금융당국이 내부통제를 압박하지만, 건설사를 포함한 대부분 회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상법 개정으로 2012년 4월부터 시행된 상장회사 준법지원인 제도도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미(未) 선임 기업이 많다. 작년 조사를 보면 자산총액 1조 원 이상 비금융 회사도 17%가 준법지원인을 두지 않고 있다. 국내 상법상 준법지원인 선임이 법적 의무이긴 하지만, 별도의 제재가 없는 임의규정인 것도 원인 중 하나다.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1988년부터 2020년까지 32년간 공정위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은 약 9조 원이다. 해당 기업 수만 6,441개다. 공정위는 작년 한 해에도 8,224억 원을 부과했다. 그동안 경제검찰이라 불리던 공정위가 악역을 자처했다면 요즘은 진짜 검찰이 공정거래 사건에 더 적극적이다. 과거엔 회사가 과징금을 내는 수준에서 사건이 마무리됐는데 이젠 관련 임직원까지 구속된다. 공정거래 사건의 형사화(刑事化)가 뚜렷해진 것이다. 지난 6월 공정거래법 개정은 그 의미가 크다. 20여 년 만에 공정거래 자율 준수프로그램(CP)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CP 법제화는 환영할 일이지만, 제도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기업을 유인할 인센티브는 정부가 아직 고민 중이다. 이번엔 확실한 당근이 나와야 한다.

컴플라이언스라는 단어는 미국이 처음 사용했다. 1934년 미국 증권거래법이 제정된 이후에 컴플라이언스는 회계 감시나 준법 감시를 의미했다. 지금은 그 개념에서 확대되어 전사적 리스크관리(ERM)와 기업 사회적 책임(CSR)까지 포함한다. 그럼, 컴플라이언스는 미국 같은 서양에만 있는 제도일까?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작년 중국 정부는 ‘중앙기업 합규관리방법’을 반포하고 2022년 10월부터 정부가 출자한 중앙기업(국유기업)은 회사 내에 수석 합규관(Chief Compliance Officer: CCO)제도를 운용하도록 했다. 합규(合規)는 제반 규정에 부합한다는 의미로 영어 컴플라이언스(compliance)에 해당한다. 법 준수만을 의미하는 ‘준법’보다 넓은 개념이다. 올해 3월 중국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에 따르면 수석 합규관을 둔 중앙기업과 주요 자회사는 각각 68개와 631개로 전체 컴플라이언스 관리자는 2만 8천 명을 상회했다. 특히 광동성의 경우 성(省) 내 모든 지방기업에 3년 이내 ISO 37301 Compliance Management System 인증 취득을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했다. 바야흐로 중국도 컴플라이언스 오피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국과 체제가 다른 중국도 컴플라이언스만큼은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늦은 출발이지만 국유기업부터 컴플라이언스 관리체계를 갖추어 가는 중국기업의 모습에서 큰 변화가 느껴진다.

최근 글로벌 패스트푸드 기업인 맥도날드는 회사 홈페이지에서 ESG 관련 단어를 조용히 지웠다. Anti-ESG의 영향이다. 하지만 ESG 경영에 대한 논란이 일수록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컴플라이언스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컴플라이언스는 개념 자체가 ‘자율 준수’다. 규범을 스스로 지키라고 무조건 강제할 성격은 아니지만 지금 같아선 ‘강제적 자율’이 필요해 보인다. 사실 준법지원인 제도의 경우 해당 기업은 여러 가지 이유로 회피해 왔고, 정부는 준법 경영에 관심을 두지 않고 방치해 왔다. 대표이사나 이사들은 준법 경영 의무에 대한 인식 없이 돈벌이에만 몰두했다. 그런 사이 조직의 사건·사고는 늘어만 가고 있다.

작년 한해 국내 1위 로펌의 연매출액이 1조3,000억 원으로 추산돼 10대 대형 로펌의 매출액은 3조 원을 넘겼다고 한다. 변호사 수가 3만 4천 명으로 늘어나고 법률서비스 영역이 넓어진 탓도 있지만 기업들의 연이은 사건·사고가 로펌의 매출 증대에 이바지한 것으로 보인다. 평소 컴플라이언스 활동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얼마든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데도 그 돈을 아끼다 사고가 터지면 막대한 비용을 아낌없이 지급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가까운 중국의 변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의 컴플라이언스 역사도 절대 짧지 않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외형이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이제라도 역량 있는 컴플라이언스 전문가를 키워 새로운 컴플라이언스 오피서(CCO)의 시대를 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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