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아직도 ‘전관(前官) 전성시대’
[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아직도 ‘전관(前官) 전성시대’
  • 장대현
  • 승인 2020.10.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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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기업에 공정위가 뜨면 로펌이 웃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사단계에서부터 자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칼을 휘두를수록 공정위 출신 전관들의 몸값은 높아진다. 현직에 있을 때 기업에 ‘창’을 겨누던 공무원이 퇴직 후에는 ‘방패’가 되어 기업을 방어한다. 

로펌은 법률 사안을 다루는 곳이지만, 비(非)법률적 사안까지 다룬 지는 오래됐다. 로펌에는 법률가인 변호사만 있는 곳은 아니다. 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등 다른 자격을 가진 전문가들과 ‘전관(前官)’이라 불리는 퇴직 공직자들이 즐비하다.

전관들은 로펌이나 회계법인뿐만 아니라 기업 사외이사나 정부의 각종 위원회 전문위원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 있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면서 100세 시대가 된 지 오래다. 퇴직 후에도 공직자로 쌓은 전문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계속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현직에서 공익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이 퇴직 후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서 문제다. 전관들은 로비스트, 브로커, 해결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그래서 전관들의 활약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방송국에서 모 국회의원과 국내 10대 로펌에 취업한 퇴직 공직자 현황을 조사했다. 지난 1월 기준으로 300명이 국내 10대 로펌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88%인 264명은 5대 로펌에 몰려있다. 물론 이 가운데 129명은 김앤장으로 갔다. 정부 부처로 보면 국세청이 36명, 공정위 25명으로 가장 인기가 많다. 두 부처 모두 사정(司正) 기관이고, 조사가 끝나고 나면 행정소송도 많기 때문이다.

통계만 보면 로펌은 고위 공직자들의 미래직장이다. 로펌의 품에 안긴 전관들은 파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대우를 받는 전관들은 로펌에서 어떤 역할을 요구받을까? 로펌들이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고문을 두고 있지만, 사실은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관과 관련해서 가장 큰 문제는 ‘회전문(revolving door) 인사’다. 이 말은 민간에 있던 퇴직 공직자가 다시 공직자로 취업하는 현상을 말한다. 공직자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번갈아 오가면서, 이전에 몸담은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공익(公益)과 사익(私益)이 충돌할 수 있는 부분이다. 회전문 인사는 전형적인 부패의 유형으로 분류된다. 외국에서도 비슷한 단어들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대표적인 회전문 인사는 참여정부 시절 경제부총리를 지낸 A 씨의 경우다. 그는 2000년 재정경제부 장관을 하다가 퇴직했으나, 몇 년 뒤 다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물론 그사이 공백 기간은 로펌에서 고문으로 있었다. 그는 공직과 로펌의 회전문을 거치면서 자신만의 ‘사단’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5,000억 원대 사모펀드 투자사기로 문제가 된 자산운용사의 고문단에도 참가했다. 실제로 자산운용사 대표가 작성한 문건에는 A 씨를 포함한 고문들이 회사 운영과정에서 고비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검찰 조사에서 “A 씨에게 매월 500만 원을 고문료로 지급했다”고 진술했다. A 씨는 어떻게 보면 직업이 ‘고문’인 셈이다.

예전에 국제투명성기구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하위 계층에서 일어나는 작은 부패는 거의 없지만, 고위층이 사익을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 사회에 나타나는 부패의 특징은 미국 콜게이트(Colgate) 대학 마이클 존스턴 교수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존스턴 교수는 국가의 부패 유형을 △독재형 △족벌형 △엘리트 카르텔형 △시장 로비형의 네 가지로 나눴다. 존스턴 교수는 한국을 ‘엘리트 카르텔(Elite Cartel)’ 유형에 속하는 대표적 나라로 꼽았다. 한국과 같은 유형에 속하는 나라는 이탈리아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 카르텔이 가장 심한 곳이 법조계다. 법조계 전관예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도 전관예우를 인정할 정도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7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각국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해 순위를 매겼다. 그 조사 결과 초안에서 한국은 37위 꼴찌를 했다. 대법원은 조사 대상에 검찰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OECD에 이의신청해 OECD 최종 보고서 순위에서 한국은 빠졌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사법 신뢰도가 높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전관예우도 사법 불신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뉴스에서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의 근원(根源)에는 뿌리 깊은 ‘전관예우’의 관행이 있다. ‘전관예우’는 전관(前官)과 현관(現官) 사이에 꾸려지는 일종의 결탁이다. 미래의 전관이 될 현직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롤모델인 전관을 특별히 예우하는 것이다. 그동안 전관예우의 폐해를 지적하며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인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전관은 그들만의 인맥을 통해 여전히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질긴 연줄로 얽힌 전관예우의 관행을 없애지 않고는 한국의 미래는 없다. 처참하게 무너진 공직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전관 전성시대는 이제 막(幕)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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