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콜라 전쟁 vs. 'SK-LG' 배터리 전쟁
[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콜라 전쟁 vs. 'SK-LG' 배터리 전쟁
  • 장대현
  • 승인 2020.06.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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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 대표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 대표

 

모든 업계에는 라이벌이 존재한다.

음료 시장의 대표적 라이벌이 코카콜라(Coco Cola) 사와 펩시(Pepsi) 사다. 두 라이벌은 백 년 콜라 전쟁(Cola Wars)으로 유명하다. 1800년대 말 개발된 콜라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인기 있는 청량음료다. 콜라의 독특한 맛이 성공비결이었다.

두 회사 콜라 제조기법은 최고의 영업비밀이다. 이 제조기법만큼 철저히 보호된 영업비밀은 그동안 없었다. 2006년 5월, 펩시 사는 콜라콜라 사에 연락해 자사 구매본부에서 받은 한 통의 편지를 전달했다.

그 편지는 코카콜라 신상품에 대한 영업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다. 펩시 사는 편지를 받고 즉각 코카콜라 사에 통보했다. 코카콜라 사 또한 재빨리 연방수사국(FBI)과 접촉했다.

FBI는 조사에 착수해 코카콜라 사 임원 보좌관의 중개인이 펩시 사와 접촉한 사실을 알아냈다.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3명의 용의자들이 기업비밀 절도(竊盜)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코카콜라 사 CEO였던 네빌 이스델(Neville Isdell)은 편지와 회사 웹사이트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모든 임직원에게 자세히 알렸다. 체포된 전직 코카콜라 직원은 기소되어, 징역 8년 형을 선고받았다.

두 회사는 콜라 시장에서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는 라이벌이었지만 올바른 일을 했다. 두 회사 모두 컴플라이언스가 실제로 작동한 것이다.

같은 해 10월, 펩시 사에는 획기적인 일이 벌어졌다. 펩시 사 최초의 여성 CEO가 탄생했다. 그녀는 인드라 누이(Indra Nooyi)였다. 누이(Nooyi)는 CEO로 임명되자마자 그전까지 펩시 사가 살아남았던 방식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누이(Nooyi) 제안은 ‘목적경영(Goal-Driven Management)’에 집중되었다. 펩시의 목적경영은 그동안 설탕물을 팔아 온 회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음료와 식품을 파는 회사로 탈바꿈하자는 것이었다. 존경받는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으로 회사 정체성을 바꾸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당시 주주들이나 직원들은 새로운 CEO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결과적으로 누이(Nooyi)의 목적경영은 성공했다. 많은 사람이 펩시 사를 오랜 콜라 전쟁의 ‘패배자(loser)’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런 이해는 그동안 펩시 사가 기업시민운동으로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시민운동을 선도한 펩시 사의 장기 재무성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나스닥에 상장한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도 놀라운 기록이다.

결국 펩시 사는 콜라 전쟁에서는 코카콜라 사에 졌지만, 목적경영을 통해 기업시민운동의 ‘승리자(winner)’가 되었다.

콜라와 마찬가지로 국내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도 라이벌이 존재한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세계 전기차 시장규모가 확대되면서 배터리 수요도 늘었났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오는 2025년 배터리 시장 규모는 약 202조 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분석했다. 같은 기간 약 182조 원 규모인 메모리 시장을 앞설 것으로 보았다.

차세대 먹거리로 부상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놓고 두 회사는 그동안 미국에서 소송전을 벌여 왔다. 지난 2월 14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LG화학이 지난해 4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Trade Secrets) 침해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혐의가 명백하다며 조기 패소를 결정했다.

SK이노베이션은 조기 패소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여 ITC가 전면 재검토(review)를 받아들였지만, 조기 패소 결과가 뒤집어질 것 같지는 않다. 두 회사의 갈등은 인력 유출이 원인이었다.

LG화학은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2년 만에 자사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 인력을 빼갔다고 주장했다.

LG화학은 소송에 앞서 지난 2017년 10월과 2019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SK이노베이션에 내용증명 공문을 발송했지만, 그 이후에도 SK 측의 인력 빼돌리기가 계속돼 왔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21일 미국 ITC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해 ‘조기 패소’ 승인 판결문을 공개했다.

이 판결문에는 “SK이노베이션은 소송을 인지한 2019년 4월 19일부터 증거보존 의무(Litigation Hold)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증거를 인멸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판결문에는 SK이노베이션에 재직 중인 LG화학 출신 직원의 PC 휴지통에서 발견된 엑셀 문서가 증거자료로 제시됐다. 이 엑셀 시트에는 LG화학 관련 삭제된 파일 980여 개가 나열됐다.

판결문은 “인멸된 증거는 LG화학이 주장한 영업비밀 침해 내용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업계는 이번 소송이 양사 간 협상을 통해 합의로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TC가 오는 10월경 이번 조기 패소 판결과 동일한 최종 판결을 내린다면, 배터리 관련 부품 등 일부에 수입금지 조치가 내려져 SK이노베이션은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전쟁은 100년 이상 이어진 콜라 전쟁만큼은 못 하지만 거의 1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모든 산업에서 경쟁은 피하기 어렵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요즘 시대에는 경쟁 기업에 대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려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유혹이 있을 때 회사마다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다. 회사에 고결성(integrity)과 준법(compliance)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면, 이러한 유혹은 쉽게 물리칠 수 있다.

펩시 사 글로벌 윤리강령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공급자, 고객, 경쟁사를 대하는 모든 업무에 있어 ‘치열하게’ 그리고 ‘고결하게’ 경쟁한다.” 책임감 있는 회사라면 불법적인 유혹이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옳은 일(right thing)을 찾을 것이다.

회사는 생존을 위해 경쟁사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지만, 그 경쟁은 공정하고, 합법적이어야 한다. 잘 된 회사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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