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태만상] 철강 한류가 없다.
[철태만상] 철강 한류가 없다.
  • 김종대
  • 승인 2020.05.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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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브리티시브리지, 미국의 골든브리지, 파리의 에펠탑, 호주의 하버브리지. 이 철구조물들은 모두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 철 구조물들이다. 한국에는 수많은 철 구조물들이 건재하지만 관광자원화가 되고 인지도 높은 상징적 구조물은 별로 없다.

하버브리지는 올해로 88살이다. 이 다리를 보기 위해 매년 1,000만명(760만 내국인 270만 외국인)의 발걸음이 달려온다. 골든브리지도 그렇고, 에펠탑은 항상 관광객으로 붐빈다.

하버브리지가 유명세를 가진 연유는 각계각층의 관심으로 시작되었다. 다리가 준공되자 시드니市 당국자들은 하버브리지를 관통하는 도로 이름을 <브래드필드 하이웨이>로 명명하면서 다리 설계자 <존 브레드필드>를 앞세웠다. 한강다리는 37개가 걸쳐 있지만 다리 건설 책임자의 이름을 도로명으로 하는데 인색하다. 해당 지역의 출중한 위인의 이름도 없다. 스토리텔링의 소재를 아예 무시한 듯하다.

하버브리지가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는 건설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이다. 다리를 만들어야 겠다는 제안은 1815년에 시작됐다. 건축가 <프란시스 그린웨이>가 <라첸 맥과이어>총독에게 다리 건설을 제안했으나 ‘노’였다. 25년이 지나서(1840) 건축가 <로버트 브랜드리>가 부교(Floating Bridge)를 제안했지만 또 이뤄지지 않았다. 다시 30여년(1879년)이 지나서 트러스트교를 건설하자고 제안 되었고, 또 약 20년을 보낸 1900년에 다리건설 공모전까지 열었으나 하버브리지의 건설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렇게 다리 건설 하나가 뜻대로 건설 되지 못하는 사이 세상은 철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미국은 US스틸을 탄생(1902년)시키고, 철강재를 대량 생산했다. 한 해 전(1901년)에는 신일본 제철의 전신인 야하타제철소가 첫 고로에 불을 붙였다. 연철로 만들던 교량들이 세계 곳곳에서 강철을 앞세운 철강재로 손쉽게 가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버브리지의 건설을 본격화 한 것은 1912년이었다. 이 시기에도 정치권의 입김에 의해 없던 일로 됐다. 다리건설 책임자 <존 브래드필드>가 교각이 없는 캔틸레버 교량을 만들자고 했더니 상원의원들은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전쟁에 쓰는 것이 낫다”고 반대한 것이다. 당시 세계는 제1차 대전 중이었다.

결국 하버브리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1년에 시작되었다. 건설한지 1년 만에 하버브리지는 완공되었다. 하버브리지는 <존 브래드필드>의 아이디어로 철강재로 구성된 아치 모양을 <랄프 프리먼>이 보완하고, ‘도만 롱’(Dorman Long)건축회사에 의해 건설되었다.

하버브리지가 대중에게 개통된 것은 1932년 3월 19일이다. 하버브리지를 건설하자고 제안 된지 105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하버브리지는 8차선으로 된 도로와 두 개의 철로, 보행자 도로, 자전거 도로가 나 있다. 전체 길이는 1,149m이다. 해면에서 도로까지의 높이는 59m. 싱글 아치 교량 중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다리이다.

하버 브리지에는 구조물 꼭대기까지 일반인들도 등반할 수 있는 코스가 관광객에게 제공되고 있다. 한국 공영방송에도 소개 될 만큼 인기가 많다.

만약 한강 다리 중 어느 하나를 등반코스로 만들었다면 어떤 여론이 형성 됐을까. 다리 하나를 만들어도 여행상품으로 만들고 사람들과 친근한 다리를 만든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와는 다르다.

다리건설에 사용된 강철은 3만9,000톤이다. 철강재는 대부분 영국 미들러스에서 공수되었고, 일부는 호주 국내에서 조달되었다. 다리의 중량은 5만 2,800톤이다. 손으로 박은 리벳은 600만개에 이른다.

이 다리의 공사비는 625만 호주 파운드가 소요됐다. 대금은 관광수입과 통행료를 거둬 개통 56년이 지난 1988년에 완전히 상환되었다. 개통 80주년에는 금관악기 연주자 11명이 해발 134m 높이의 하버브리지 구조물 꼭대기에서 소수의 관중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시드니의 명물 하버브리지, 파리의 명물 에펠탑,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골든브리지. 서울의 명물은? 즉답이 어렵다. 이제 철강 한류를 대표할 철강 구조물을 만들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화적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야 대중에게 사랑받는 철강한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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