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은의 의학이야기] 밥 말리가 외과 수술을 받았더라면…
[김해은의 의학이야기] 밥 말리가 외과 수술을 받았더라면…
  • 김해은
  • 승인 2021.02.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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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 (도봉구의사회 부회장)
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 (도봉구의사회 부회장)

사람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은 여러 가지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분자들은 또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분자들은 각 물질의 특성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인데 우주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분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분자들을 이루는 원자들은 현재까지 100여 가지 남짓 알려져 있다. 대체로 분자들은 원자들이 촘촘히 결합하여 구성되는데 원자들은 핵과 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의 종류는 구성하는 전자들의 개수에 의하여 결정된다. 수소원자는 하나의 전자를 갖고, 헬륨원자는 두 개의 전자를 가지며, 탄소원자는 6개, 산소원자는 8개, 그리고 철 원자는 26개의 전자들을 갖는다. 원자의 크기는 옹스트롬으로 표현되는데 1‘옹스트롬’은 100억 분의 1m이다. 한편, 원자핵들은 대략 1000조 분의 1m 정도의 크기인데 이를 1‘페르미’라고 부른다.

모든 원자들에 있어서 원자질량의 거의 대부분이 원자핵의 질량에 의한 것이고, 전자들의 질량의 합은 원자핵의 수천분의 1에 불과하다. 전자는 크기가 없는 하나의 점이다. 이것은 1km 지름의 속이 빈 공 가운데에 십 원짜리 동전 크기의 구슬(원자핵)이 하나 놓여 있고, 그 텅 빈 구 내부를 점에 불과한 작은 알갱이(전자) 몇 개가 떠돌아다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원자 내부는 거의 텅 비어 있는 것이다. 핵과 전자 사이의 거리는 태양과 행성간의 거리보다 멀다. 단지 여러 분자가 겹겹이 중복되어 있어서 꽉 차있게 보일 뿐이다. 실제로 우리 몸은 텅텅 비어있다. 그래서 인생은 공허하다. 미시의 세계인 원자의 수준에서 보면 우리는 매우 단순하고 생명의 모든 현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물질의 특성을 나타내는 분자의 세계로 시야를 넓히면 수많은 현상과 법칙을 발견하고 비로소 우리는 의미의 세계로 접어든다.

거시적 세계에서도 우리 몸은 비어있는 공간이 많다. 소회기계는 식도를 지나 항문으로 나올 때까지 튜브로 되어 있어서 사실상 장내는 몸 밖이다. 소화기 말고도 호흡기, 비뇨기, 생식기도 외부와 연결되었고 이들은 상피세포로 뎦여 있다. 이런 장기는 외부와 연결된 통로이므로 세균과 바이러스가 우리 몸으로 침투하는 주된 루트이다. 피부는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로 외부와 직접 접촉하므로 감염과 외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여러 단계의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세계의 상호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의미를 아는 의식의 세계에서는 인지할 수 없는 현상들이 대부분이다.

수술은 몸속의 종양이나 농양을 제거하고 신체기관을 재건하기 위하여 피부나 상피를 절개하고 몸속으로 진입하는 침습적 치료이다. 수술의 목적을 달성한 후에 다시 층층으로 봉합하여 외부와 통했던 통로를 닫고 창상이 아물 때까지 기다린다. 분자의 세계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결과물을 거시적인 세계에서 해결하는 것이 수술이다. 환자가 외과 의사를 신뢰하지 않거나 사이비 치료를 맹신하여 수술을 거부하면, 대부분 환자에게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의 질서가 무너지면 거시의 세계가 존재할 수 없다.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레게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소개한 밥 말리는 엄지발가락에 생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프랑스 순회공연 중 기자들과 축구시합을 하다가 엄지발가락에 심한 통증을 느꼈고 발톱아래 새까만 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발톱을 절제하는 조직검사를 하였고 결과는 악성 흑색종이었다. 피부의 색소세포인 멜라닌세포에서 발원한 흑색종은 매우 공격적이고 전이를 잘하는 종양이다. 의사들은 엄지발가락을 절단할 것을 권유했고 그는 수술을 거부하였다. 단식과 흡연, 허브성분으로 만든 연고로 치료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2년이 흐르는 동안 몸의 다른 곳에서도 문제가 생겼지만 그는 병의 심각성을 무시하였다. 발가락에 국한되었던 암은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증세가 악화되어 자신이 죽게 된다는 현실을 자각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구원의 노래(Redemption song)를 작곡했다. 처음 진단을 받고 3년이 지난 1981년 5월 11일 숨을 거두었다.

밥 말리의 악성 흑색종은 슬와부와 서혜부의 임파선으로 전이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암세포는 뇌에까지 전이되었다. 원발부를 절제하고 전이가 의심되는 슬와부, 서혜부의 임파선을 절제하는 근치수술(Excision with radical LN dissection)을 받았으면 생존할 확률이 90%가 넘는다는 추측이다. 밥 말리가 눈에 보이지 않고 미시적인 분자 세계의 현상을 감각하였다면 사이비종교의 교리와 치료방법을 믿지 않았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새로운 노래를 좀 더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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