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창립66주년] 현대제철 철강에서 자동차까지 "글로벌 10위에 오르다"

- 현대제철의 뿌리는 조선이연금속 인천공장~대한중공업공사를 창업 연도로 삼아 - 1978년 공개입찰로 현대그룹 인수...주력업종 정책에 의해 INI스틸로 개명 - 정몽구회장의 집념으로 만든 제철소...3민간최초의 고로 '친환경설비 장착'

2019-06-28     김종대 페로타임즈 대표
3고로체제를

WSD(World Steel Dynamics)는 지난 19일 현대제철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0위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분석 기관인 WSD는 뉴욕에서 개최된 '제34차 글로벌 철강전략회의(Steel Success Strategies 2019)'에서 세계 34개 철강사들을 대상으로 규모, 생산성, 수익성, 안정성 등 23개 항목을 평가하고 매년 경쟁력 순위를 발표해 온 것이다.

현대제철은 평가항목 중 작업자의 숙련도 및 생산성, 고객 근접성, 기술혁신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종합점수 7.41로 세계 10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인천공장의 뿌리 조선이연금속 인천공장이 첫 시발점

현대제철의 뿌리는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대제철의 모태는 조선이연금속 인천공장(1938년 설립)이다. 이 공장은 미스비씨 재벌의 가토제철소 인천공장과 함께 일제가 중국진출을 위한 전쟁 물자를 지원하기 위해 남한지역에 설립된 철강공장이었다.

조선이연금속은 1942년 일본재벌 가보네 계열의 종연실업이 인수했으나, 광복이후 귀속재산이 되었고, 1948년에 대한중공업공사로 사명을 바꾸었다. 1953년부터는 정식으로 국영기업이 된것인데, 현대제철은 이 시기를 창업 연도로 삼고 있다. 대한중공업공사는 공기업이었지만 턱없이 부족한 정부예산과 잦은 경영진의 교체, 자본조달의 어려움, 생산기술 부족 등으로 경영난을 겪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생산시설 개선은 진행되었다. 1956년에는 평로제강공장을 가동하여 250kg의 강괴 118톤을 생산했다. 2년 뒤에는 분괴와 중형 압연공장을 가동했다. 1960년에는 박판압연공장을 가동함으로써 철강 공장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첫 신입사원 공채(1기)는 1955년에 채용한 4명이며, 이후로 매년 10명씩의 공채사원을 선발했다.

인천중공업 시대...인천제철과 인천중공업의 합병

대한중공업공사는 1960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회사법을 개정, 인천중공업주식회사로 새롭게 출범했다. 인천중공업의 자본금은 14억 원(전액 정부출자)이었으며, 민간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텄다. 1964년 정부는 인천중공업, 대한통운, 조선공사, 한국광업제련, 대한염업, 국정교과서, 대한중석 등을 민영화 대상기업으로 확정했다. 

인천중공업은 한국철강공업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민영화 작업에 들어갔다. 첫 움직임은 자본금 1억 원의 인천제철을 설립하고, 인천중공업에 신규공장 건설을 위한 상업차관 (독일)을 맺은 것이다.  ‘데마그’사와 ‘루르기’사 양사로부터 시설재 인도계약을 체결하고, 인천중공업의 발행주식 51.9%를 매입, 인천중공업의 경영권을 확보한다.

민영화를 위해 인천제철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회사의 부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커졌다. 게다가 공장건설에 무리한 투자가 진행됐고, 양사체제의 경영합리화가 지연되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은행대출과 외자도입 등의 부채가 인천제철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정부는 ‘부실기업정리 방안’(1969년)을 마련하고 인천제철과 인천중공업을 합병시켰다.

합병된 인천제철은 새로운 경영진을 중심으로 공장가동 정상화 추진, 통합에 따른 일관생산방식의 효율성 제고, 경영수지 개선을 위한 자금 확보, 시설 확장과 시설 합리화 등을 추진해 나갔다. 그리고 인천제철은 때 마침 발효된 철강공업육성법(1972년)에 의해 100억 원의 부채를 출자로 전환하여 1년 후에 흑자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인천제철은 설비투자를 본격화 했다. 연산 10만 톤의 철근생산 압연공장 준공(1972년 5월), 20만 톤 생산 규모의 40톤급 전기제강로 2기 가동(1973년), 제5소형 압연공장과 산소공장의 완공(1975년), 선재 공장의 확장(1978년)을 통한 철근 및 선재 12만 톤 생산시설 확보 등이다.

2차 민영화와 현대 인수

정부는 산업은행의 출자 관리기업(7개) 가운데 인천제철을 비롯해 대한알미늄, 한국불화공업, 동립산업의 경영 실적이 호전되자 민영화 계획을 서둘러 발표(1978년)했다. 인천제철의 민영화 방안이 결정되자 정· 재계의 관심이 컸다. 그중 동국제강도 인천제철을 인수하기 위해 전면에 등장했다.

인천제철은 동국제강 인천공장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 기업이었다. 동국제강 장상태 사장은 절친했던 현대그룹의 정주영회장과 인천제철을 공동인수하기로 합의했었다고 한다. 철강공장의 가동은 동국제강이 맡고, 철강공장의 건설과 설비 장착 등은 현대건설이 맡기로 사전에 약속했다는 것이다(동국제강 50 년사사 참고).

당시 동국제강과 현대건설은 재계서열 상위 10위권의 기업이었다. 당시 동국제강은 한국강업과 한국철강, 부산제철 등을 인수하여 철강 사업부문을 크게 확장 시킨 전력을 앞세워 규모의 경쟁력을 갖추려고 했었다. 

5월 4일, 첫 입찰에 현대그룹의 현대중공업과 동국제강 등 3개 회사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공교롭게 동국제강과 현대중공업 두 회사는 인수제안 금액이 똑같았다. 첫 번째 공개입찰은 유찰되었다. 동국제강은 인천제철의 인수를 포기했고, 인천제철은 현대그룹의 품에 안기게 된다.

인천제철은 현대그룹에 편입되면서 대형 H형강공장을 건설했다.

300억 원이 투입된 70톤급 전기로와 집진기, 연주기 등을 갖춘 제강공장과 부대설비는 국내 최대 규모의 투자였다.

1962년 3월 5일 대형 H형강공장 이 완공되면서 H형강, ㄱ형강, ㄷ형강, 중레일, 강널말뚝 등의 제품을 생산했다.

1982년에는 주단강 사업에도 진입했다. 제 2선재 공장을 활용하여 1차로 제강과 주조설비를 완공했다. 1987년에는 스테인리스 냉연 공장 건설에 착수, 1990년 3월에 1차 준공식을 가졌다.

스테인리스 냉연공장의 규모는 연산 5만 톤 규모였다. 스테인리스 냉연공장은 가동 이후 짧은 시간에 조업 정상화를 이뤘고, 그 해 9월에는 제2차 설비를 완공하여 연산 12 만 톤의 규모를 갖췄다.

세계 최고를 향한 성장의 시대

현대제철이 있기까지의 역사는 복잡하다. 조선이연금속-일본재벌 가보네 인수-대한중공업공사-인천중공업공사-인천제철 흡수 합병-현대그룹 인수-INI-현대제철이다. 한 마디로 연합군의 성향이 짙어 보인다. 타 철강기업이 처음부터 공장건설을 시작하면서 등장한 것과는 달리 부채로 어려워진 철강기업을 인수하거나 공개 입찰을 통해 새로운 사업부문을 확장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로제철소를 건설하기 이전까지 인천제철은 H빔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철강기업으로 인식되고 있엇다. 인천제철이 H형강의 볼륨을 늘린 것은 1992년부터였다. H형강 60만 톤-110만톤, 제강 280만 톤-압연 270만 톤을 기록하고 있다. 1993년에는 연산 70만 톤의 90톤 전기로 제강공장 기공식을 가졌으며, 다음해에는 연산 70만 톤 규모의 제2철근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준공된 90톤 전기로 제강공장은 세계적인 규모였다. 철근공장은 일본 ‘동경제철’의 오카야마공장(세계 최대)보다 무려 10만 톤이나 많은 대형공장이었다. 이같은 설비 증설에 의해 1995년의 인천제철은 제강 348만 톤, 제품 326만 톤의 전기로메이커가 되었다.(매출 1조 4266억 원)

M&A,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다

1996년 이후 인천제철은 두 기업을 인수했다. 법정관리였던 한보철강과 1조 4000억 원의 부채를 짊어진 채 워크아웃 대상이었던 강원산업이다. 연산 455만 톤의 인천제철과 340만 톤의 강원산업이 합병되자 인천제철은 800만 톤 규모의 전기로메이커로 거듭났다. 국내 전기로 제강의 35%를 차지했다. 이때 인천제철은 전기로메이커 세계 랭킹 2위로 등극했다.

인천제철은

그리고 연산 25만 톤의 스테인리스 냉연 강판메이커였던 삼미특수강도 인수했다. 인천제철이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것은 정부의 ‘핵심 분야 집중투자를 통한 사업구조개편’ 정책에 따른 조치였다. 이름도 INI스틸로 개명했다.

인천제철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핫 히스토리’는 한보철강 당진공장의 인수이다. 3번의 유찰 끝에 4번째 입찰이 공고된 한보철강 인수과정은 드라마틱했다. 경쟁사는 동국제강그룹이었다. 경쟁사와 막판까지 피 말리는 경합을 벌인 끝에 한보를 품에 안았다. 한보철강이 INI스틸에 정식 인수된 시점은 2004년 10월 1일이다. 일관제철소 건설 시기는 2006년 10월이다.

정몽구회장의 집념으로 만든 제철소...민간최초의 고로 '친환경설비 장착'

제3고로에

제1고로 화입식은 건설을 시작한지 40개월(2010년 1월 5일)만에 이뤄졌다. 그리고 3고로까지 불모지나 다름없던 충남 당진에 연산 1,200만 톤의 일관제철소를 탄생시켰다.

현대제철의 당진제철소는 짧은 공기와 건설비용, 3개월 밖에 안되는 조업정상화라는 신기록도 남겼다.

고로를 완성시킨 현대제철은 고도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2002년에 매출3조원 시대를 열었지만 10년이 지난 2012년의 매출은 15조원이나 된다.

철을 생산하는 현대제철의 오늘은 생산-소비-회수-재생산으로 이어지는 자원형 순환고리를 통해 그룹내의 시너지를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현대제철의 향후는 안정적인 생산활동이다. 그리고 '기업시민 정신'도 당진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 고로진출 이후로 그룹계열사간의 시너지를 올렸다면, 이제는 전후방 산업과의 협력관계와 중소 철강기업간의 상생의 묘를 살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