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준 칼럼] 철강의 금기가 깨지고 있다
철강산업에는 불문율이 있다.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 고로는 끄지 않는다, 불황에 투자한다, 철강 보국이다. 이 3가지. 그런데 지금 이 3가지가 한꺼번에 흔들리고 있다.
첫째, 고로는 끄지 않는다. 고로는 철강의 심장이다. 한 번 불이 꺼지면 다시 살리는 데 막대한 비용과 수주에서 수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노사 모두 파업만큼은 피했다.
포스코는 1968년 창사 이후 58년 동안 노사 갈등으로 공장이 선 적이 없다. 그 기록이 올해 9월에 깨졌다. 첫 파업이었다. 규모는 작았다. 참여자는 120여 명, 조합원의 1%다. 핵심 공정은 협정근로로 돌아갔고 고로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규모가 아니라 방향이다. 금기는 한 번 깨지면 다시 쌓기 어렵다. 노조는 전면 파업까지 거론했다. 고로를 세우는 일이 상상에서 선택지로 내려온 셈이다.
노조는 실적이 좋을 땐 보상이 미뤄지고 어려울 땐 고통 분담만 요구받는다는 누적된 불만이 있다. 여기에 사내 하청의 직고용, 인력 부족, 노후 설비 문제까지 얽혀 있다.
이제 대책이 필요하다. 실적이 좋을 때 나누고 어려울 때 함께 견디는 원칙을 합의해야 한다. 불이 꺼진 뒤에 세우는 대책은 대책이 아니다.
둘째, 불황기에 투자한다. 철강은 오랫동안 경기순환 산업이었다. 불황 때 설비 투자하여 호황기를 대비한다. 5년에서 10년 주기로 파도가 오니 통하던 전략이었다. 지금은 그 파도가 없다.
중국의 철강 수출은 2020년 5,370만 톤에서 2024년 1억 1,107만 톤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내수가 부진하면 밖으로 내보내는 구조다. 2025년엔 수출이 1억 2천만 톤으로 역대 최대였다.
호황이 와도 소용이 없다. 가격이 오르면 그만큼 중국산이 밀려들어 온다. 국내 수입재 비중은 2021년 26%에서 2024년 31%로 올랐다. 내수 5,000만 톤 선도 무너졌다.
기다리면 좋아진다는 믿음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바꾸어야 한다. 범용재에서 고부가 제품으로, 국내에서 해외 생산으로, 덩치에서 재무 체력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셋째, 철강 보국이다. 박태준 회장은 제철소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모두 죽는다는 각오로 일했다. 철강은 나라의 산업이었고, 정부는 금융과 세제로 밀어줬다. 정부 안에는 철강과도 따로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2000년 포스코가 민영화됐고, 기간산업의 자리는 반도체가 넘겨받았다. 반도체는 수출의 20% 이상을 책임지며 정부의 전방위 지원을 받는다.
철강 담당 조직은 철강세라믹과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하는 일도 달라졌다. 설비 증설과 수출 확대를 돕던 곳이 이제는 과잉 설비를 줄이는 일을 한다.
철강이 육성에서 구조조정 대상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정부가 철강을 키울 방법을 고민했고, 지금은 줄일 방법을 고민한다. 업계가 K-스틸법 같은 특별법을 요청하는 처지에 이른 것도 그래서다.
그렇다면 철강은 끝난 산업인가. 아니다. 철강은 자동차, 조선, 건설의 뿌리다. 뿌리가 약해지면 가지가 흔들린다. 수소환원제철 같은 저탄소 기술도 이 뿌리 위에서 자란다.
다만 지켜야 할 것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많이 만드는 것이 보국이었다. 이제는 제대로 바꾸는 것이 보국이다. 기업은 구조조정을 피하지 말고 앞장서야 한다. 정부는 구조조정을 방치하지 말고 설계해야 한다.
불문율은 환경이 받쳐 줄 때만 지켜진다. 환경이 바뀌었다면 규칙도 새로 써야 한다. 철강은 지금 그 새 규칙의 첫 장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