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흔들리는 시대, 무너진 좌표
난세를 건너기 위해 논어에게 길을 묻다
세계가 난세(亂世)다. 전쟁과 분열, 기후 재난과 가짜뉴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뒤바뀌는 여론의 파고 속에서 제정신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우리를 붙잡아줄 정신의 중심축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붙들고도 길을 잃고, 정보는 넘치는데 지혜는 메말라간다. 이럴 때일수록 오래된 책, 논어(論語)에서 지혜를 얻었으면 한다.
2500년 전, 20편 1만 1500여 자로 이루어진 짧은 고전이 오늘날까지 동양을 넘어 전 세계인의 필독서로 남아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좌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정치, 경제, 교육, 인간관계 그 모든 영역에서 논어는 여전히 우리의 위치를 되짚어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공자 스스로도 순탄한 삶을 살지 않았다.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비천한 신분이었기에 오히려 다재다능해질 수 있었다." 고 고백했던 그는 여러 나라를 떠돌며 뜻을 펼치려 했으나 번번이 냉대받았다. 역설적으로 그 고단한 방랑이 있었기에, 그는 시대를 초월해 통용될 인간의 보편적 표상을 제시할 수 있었다.
논어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다름 아닌 군자(君子)다. 군자란 완벽한 성인이 아니라, 역경 속에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스스로를 갈고닦는 사람,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군자의 모습을 아홉 가지 유형으로 정리하고, 오늘 우리 곁의 이야기를 덧붙여 본다.
첫째, 학습형 인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공자가 논어 첫머리에 이 말을 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배움이란 한 번의 습득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과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는 뜻이다. 요즘으로 치면 평생학습, 리스킬링(reskilling)의 정신이다. 정년퇴직 후 코딩을 배워 손자에게 게임 앱을 만들어준 노신사의 이야기나, 60대에 유튜브 편집을 독학해 새로운 인생 2막을 여는 이들의 모습이 바로 이 학습형 군자의 현대적 초상이다.
둘째, 동지형 인간.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술과 밥을 함께 먹는 사이가 아니라, 내가 곤궁할 때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진짜 벗이다. SNS 친구 수는 수천 명이지만 정작 새벽에 전화할 사람이 없다면 되물어보자. 인생은 관계의 '양'이 아닌 '깊이'다.
셋째, 독립형 인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타인의 '좋아요'와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알고리즘이 나의 가치를 매기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걸음을 걷을 때 진정한 수행이다.
넷째, 친화형 인간. "두루 사귀되 편을 가르지 마라(周而不比)." 나이 들수록 편견과 아집에 갇히기 쉽다. 진영과 세대, 이념으로 갈라선 오늘의 사회일수록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도 예의를 지키며 어울리는 성숙함이다.
다섯째, 포용형 인간. "화합하되 같아지지 않는다(和而不同)." 군자는 화합하되 무리 짓지 않고, 소인은 무리 지으되 화합하지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화목할 수 있는 능력, 이는 극단으로 치닫는 오늘의 여론 지형에서 가장 절실한 덕목이다.
여섯째, 통섭형 인간.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君子不器)."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고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통합적 시야를 갖추는 것. 전공의 벽을 허물고 인문학과 기술을 잇는 오늘날의 융합 인재상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일곱째, 실천형 인간.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말보다 실행으로 보여주는 리더십.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자원봉사자들, 말없이 궂은일을 도맡는 이웃들이 바로 이 실천형 군자의 얼굴이다.
여덟째, 책임형인간. 맹자의 말을 빌리면 "행하여 얻지 못하면 돌이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行有不得反求諸己)." 실패의 원인을 남 탓, 시대 탓으로 돌리기 쉬운 요즘, 스스로에게서 답을 찾는 태도야말로 성숙한 어른의 조건이다.
아홉째, 명분형 인간.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無信不立)." 이익보다 의로움을 먼저 구하는 선의후리(先義後利)의 정신.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리 화려한 성과도 모래 위의 성이 될 뿐이다. 기업이든 정치든, 결국 오래가는 것은 신뢰를 지킨 쪽이다.
오늘날 ‘상실의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성의 상실, 교육의 부재, 정치에 대한 신뢰의 실종, 자연의 파괴 등은 우리가 마주한 가장 절박한 과제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답은 새로운 곳에 있지 않다. 2500년 전 공자가 던진 아홉 개의 질문을 성찰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곁을 지키는 벗이 있는가? 남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가? 다르다는 이유로 등을 돌리지 않는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가? 실패 앞에서 나를 돌아보는가? 이익보다 믿음을 먼저 두는가? 등의 질문들이 지금도 유효하다.
오히려 정보와 속도가 넘쳐날수록, 이 오래된 질문들이 더 선명한 힘을 갖는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한다.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어도 좋다. 오늘 하루, 이 아홉 개의 질문 중 단 하나라도 나에게 던져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가 될 것이다.
“지식의 본질이란, 지식이 있으면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고, 지식이 없으면 자신의 무식함을 자백하는 것이다.” -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