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사랑은 설렘으로 시작해서 책임으로 완성된다

2026-08-31     김진혁
김진혁

사랑은 인간이 가장 많이 말하면서도 가장 오해하는 단어 중 하나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두근거림으로 정의한다. 첫 만남의 설렘, 밤새 이어지는 대화, 상대를 향한 강렬한 감정이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감정의 파도가 잔잔해지면 “사랑이 식었다”며 관계를 끝내기도 한다.

현대인은 사랑을 가장 많이 이야기하면서도 가장 쉽게 포기한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오해를 오래전부터 지적했다. 그의 명저 『사랑의 기술』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강렬한 감정이 아니라 결의이며 판단이며 약속이다.”

이 한 문장에 성숙한 사랑의 본질이 모두 담겨 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며, 기술이며, 훈련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능력이다

우리는 흔히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사랑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프롬은 정반대로 이야기한다. 사랑의 실패는 대부분 사랑할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좋은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수천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듯, 사랑 역시 배우고 익혀야 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만큼은 아무런 훈련 없이도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사랑받는 방법은 고민하면서도 사랑하는 방법은 배우지 않는다. 사랑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사랑을 줄줄 아는 사람은 적다. 이 차이가 성숙한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을 가른다.

외로움을 채우려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현대인은 그 어느 시대보다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가장 외로운 시대를 살아간다. SNS에는 수백 명의 친구가 있지만 마음을 나눌 사람은 없다. 직장에서는 하루 종일 함께 일하지만, 퇴근 후에는 깊은 공허함을 느낀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 사람을 찾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사랑이 결국 집착과 결핍으로 흐른다. 상대를 사랑해서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상대를 필요로 하는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의존이다. 성숙한 사랑은 “당신이 없으면 나는 불행해”가 아니라 “나는 이미 건강한 사람이며, 당신과 함께 더 풍성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성숙한 사랑을 이루는 네 가지 기둥

프롬은 성숙한 사랑의 핵심 요소를 네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보호(Care). 사랑한다면 상대의 성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물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배우자의 건강을 걱정하고, 자녀의 꿈을 응원하며, 동료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보호다.

둘째, 책임(Responsibility). 책임은 의무감이 아니라 상대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음이다. 결혼식장에서 “평생 사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책임을 선택하는 선언이다.

셋째, 존경(Respect). 존경은 상대를 내 뜻대로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다. 배우자를 내 기준에 맞추려 하지 않고, 자녀를 내 꿈의 대리인으로 만들지 않으며, 후배를 나의 복사판으로 키우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넷째, 이해(Knowledge).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사랑은 오래갈 수 없다. 사랑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아는 지혜가 함께해야 완성된다.

소유하는 사랑이 아니라 존재를 존중하는 사랑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또 하나의 통찰을 남겼다. 그는 삶을 소유적 방식과 존재적 방식으로 구분했다. 소유적 사랑은 상대를 내 것이라 여기고 통제하려 한다. 휴대전화를 검사하고 인간관계를 제한하며 선택까지 대신하려 한다. 반면 존재적 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동행이다. 새를 사랑한다면 새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지켜주는 것이다. 상대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 프롬은 건강한 자기애 없이는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기애는 이기심과 다르다. 이기심이 자신만을 위한 삶이라면, 자기애는 자신도 존중하고 타인도 존중하는 삶이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소중히 여긴다. 반대로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결국 타인에게 사랑을 요구하는 데 그친다. 그래서 성숙한 사랑은 자기 자신을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사랑은 매일 연습하는 삶이다

사랑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훈련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감정보다 약속을 선택하는 사람. 받기보다 먼저 주는 사람. 비난보다 이해를 선택하는 사람. 소유보다 존중을 실천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오늘날 직장에서도 가장 오래 기억되는 사람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따뜻하게 대했던 사람이다.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랑이 담긴 신뢰이며, 가정을 지키는 것도 화려한 말이 아니라 책임 있는 행동이다.

사랑은 인생 최고의 기술이다.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성숙한 사랑은 선택으로 이어지고, 책임으로 자라며, 존중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런 사랑이야말로 가정을 살리고, 직장을 건강하게 만들며, 사회를 따뜻하게 변화시키는 가장 위대한 힘이 된다.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한 걸음 내딛어야 한다. 그것이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의 기술이며, 우리 시대가 가장 절실하게 회복해야 할 삶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