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준 칼럼] 월드컵 성적이 경기를 얼마나 회복시킬까?
오전 열 시다. 상사 눈치를 보면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한국 경기. 전반전이 시작됐다.
이 장면이 2026년 지금 펼쳐지고 있다.
북미에서 열리는 이번 월드컵은 한국은 시차가 그리 나쁘지 않다. 한국 경기 대부분이 오전 시간에 열린다. 32강부터는 이른 새벽이 되겠지만.
거리 응원은 어렵지만, 직장인들은 스마트폰을 붙들고 사무실에서 몰래 본다. 점심시간에는 하이라이트를 돌려본다. 소비의 형태가 광장에서 손바닥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에너지는 흐른다.
월드컵 성적과 한국 경제는 어느 정도 관계일까?
GDP를 통째로 바꾸는 마법은 없었다. 하지만 심리는 달랐다. 2002년 4강의 기억은 단순한 스포츠 기록이 아니다. 그해 한국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거리에서 낯선 사람과 껴안았다. 그 에너지가 소비로, 자신감으로, 기업의 마케팅 언어로 번졌다.
2010년 남아공에서 원정 첫 16강을 달성했을 때도 그랬다. 세계 금융위기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때 대표팀의 선전은 소비자 심리를 흔들었다. 글로벌 경기장에서 한국 브랜드 광고판이 빛났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세월호의 해였다. 대표팀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고, 경제적 파급 효과는 역대 가장 미미했다. 성적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의 감정이 경제의 온도계였다.
그런데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더 큰 그림이 보인다. 월드컵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경제 사건이다.
독일은 2006년 자국 대회로 관광 수입 4억 달러, 소매 부문에서 30억 달러, 신규 일자리 50만 개를 만들었다. 총 경제 효과는 120억 달러로 추산됐다.
남아공은 2010년 대회로 50억 달러의 효과를 거뒀다. 가난한 나라였지만 세계의 눈이 쏠렸고, 그것만으로도 존재감이 달라졌다.
우승국 효과도 있다. 브라질은 2002년 우승 이후 GDP 성장률이 3.1% 뛰었다. 이탈리아와 독일도 우승 후 성장이 가속됐다. 축구 한 경기가 나라의 기분을 바꾸고, 그 기분이 숫자로 굳어진다.
2026년을 보자.
이번 대회는 규모 자체가 다르다. 본선 참가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었다. 역대 가장 많은 나라가 뛴다. 미국·캐나다·멕시코 세 나라가 함께 여는 대회다. 전 세계 시청자 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다. 그 무대 위에 한국 기업의 광고판이 서 있다.
우리 대표팀이 잘 뛰면 한국은 더 많이 얻는다. 2002년 이후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말이 세계에서 통하게 됐다. 2010년 남아공 이후 현대차는 유럽에서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성적과 브랜드는 이어져 있다.
2026년 한국 경제는 묘한 지점에 있다. 반도체 수출은 살아나고 있지만, 내수는 좀처럼 온기를 찾지 못한다. 사람들은 지갑을 닫아두고 있다. 성장률 전망은 2%대. 나쁘진 않지만 설레지 않는 숫자다.
만일 대표팀이 16강에 오르면 소비자 심리지수가 반등한다는 것은 과거 데이터가 증명한다. 거창한 이론이 아니다. 이기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면 지갑이 열린다. 단순하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원리다. 위축된 내수에 불씨 하나를 당기는 것, 월드컵이 해온 역할이다.
거리 응원 대신 OTT 플랫폼 트래픽이 폭발하고, 디지털 광고 단가가 오르고, 숏폼 콘텐츠가 쏟아질 것이다. 소비의 경로가 달라졌을 뿐, 에너지의 총량은 줄지 않는다.
한국 대표팀이 잘 뛰어주기를 바란다. 경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감정이 진짜이기 때문에. 나머지는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