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7주년 특별기고] 글로벌 보호무역 "철강 생존전략을 다시 묻다"
안보·탄소규제 결합한 신보호무역주의, 철강 통상질서 급변 미국 관세 강화·EU CBAM 본격화…수출 환경 복합 압박 심화 중국발 공급과잉 구조화…저가 공세 대응할 통상 역량 절실 현지화·저탄소 전환·고부가화, 철강기업 3대 대응 전략 부상 정부 지원과 기업 투자 결합해야 ‘그린 철강’ 경쟁력 확보 가능
페로타임즈는 창간 7주년을 맞아 한국 철강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특별기고를 연속 게재하고 있다. 이번 글은 세계적인 보호무역 확산과 탄소중립 규제 강화가 철강 통상질서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 속에서 국내 철강업계가 어떤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지를 짚기 위해 마련했다. 특히 미국의 고율 관세 강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중국발 공급 과잉 심화 등 최근 대외 환경 변화는 철강업계에 단순한 수출 애로를 넘어 사업 구조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철강산업연구원 손영욱 대표는 통상 리스크를 생산거점 재편과 저탄소 공정 전환, 제품 포트폴리오 고도화와 연결된 구조적 과제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기업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통상 외교와 에너지 인프라, 재정 지원을 포함한 국가 차원의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보호무역의 장기화 속에서 한국 철강산업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로벌 경제 안보와 철강 무역의 대전환]
글로벌 철강산업은 202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자유무역주의의 퇴조와 경제 안보 우선주의의 부상이라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에 직면해 있다. 과거의 보호무역이 자국의 취약 산업을 일시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국지적 수단에 그쳤다면, 현재 전개되고 있는 신보호무역주의는 탄소중립이라는 기후 위기 대응과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결합된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한국 철강업계에 있어 단순한 수출 환경의 악화가 아니라, 생산 방식의 근본적 전환과 해외 현지 생산 기반의 재배치를 강요하는 생존의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철강산업은 전방 산업인 자동차, 조선, 건설 등에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핵심 기간산업이자, 국가 방위 및 기반 시설 구축에 필수적인 국가 안보 자산이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들은 철강산업을 단순한 시장 논리에 맡기지 않고, 보조금 지급, 관세 장벽 강화, 환경 규제 연동 등 정책적 수단을 총동원해 자국 산업의 보호와 부흥을 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발생한 막대한 잉여 생산량이 저가 수출의 형태로 전 세계에 쏟아져 나오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의 무역 규제 조치는 2025년과 2026년을 기점으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보호무역의 확산 배경과 주요국별 규제 현황을 분석하고, 한국 철강기업들의 대응 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
· 미국의 무역 장벽 고도화와 2025~2026 관세 체계의 재편
미국의 철강 통상정책은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보편적 관세’와 ‘무역확장법 제232조의 재활성화’라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이는 과거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했던 선별적 규제에서 벗어나, 미국의 안보를 명분으로 모든 수입품에 대해 높은 진입 장벽을 세우는 무차별적 보호무역주의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 무역확장법 제232조의 부활과 쿼터 제도 폐지
2025년 3월 12일을 기점으로 미국 정부는 한국을 포함해 아르헨티나, 브라질, 일본, EU 등과 맺었던 기존의 관세 할당(TRQ) 및 면제 합의를 전면 중단하였다. 과거 한국은 2018년 협상을 통해 대미 철강 수출물량 중 263만 톤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받는 대신 수출량을 제한받는 쿼터제를 운영해 왔으나, 미 행정부의 결정으로 이러한 예외 조치가 사라지게 되면서 한국산 철강제품은 최소 25%에서 최고 50%에 달하는 고율 관세의 영향권에 직접 노출되었다.
최근 미국의 수입 규제 강화는 단순히 관세율 인상에 그치지 않고, 품목별 관세 제외 신청 프로세스를 폐지함으로써 수입업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구제 수단을 차단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특수 품목이라 할지라도 예외 없이 관세를 부과해 해외 철강사들이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 또한 2026년 4월 6일부터 발효된 대통령령에 따르면, 관세 산정 기준이 제품 내 금속 함량이 아닌 ‘전체 수입가(Full Customs Value)’로 변경돼 수입업자의 세금 부담이 더욱 가중되었다.
· 2026년 4월 기준 미국의 강화된 금속 관세 세부 구조
미국의 새로운 관세 체계는 제품의 형태와 원산지 소재의 비중을 기준으로 세분화돼 있으며, 이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미국산 소재의 비중을 높이려는 전략적 의도를 담고 있다.
(도표1) 미국의 강화된 금속 부문 관세 세부 구조
이러한 미국의 관세 구조 변화는 한국 철강업계에 두 가지 경로로 타격을 주고 있다. 첫째, 직접적인 수출 단가 상승으로 인한 북미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 약화이며, 둘째는 멕시코나 캐나다 등 인접 국가를 통한 우회 수출 경로가 이른바 ‘Melted and Poured’ 규정 강화로 인해 원천 봉쇄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 정부는 수입업자들에게 금속의 용해 및 주조 국가를 반드시 보고하도록 의무화해, 제3국 소재를 사용한 가공품에 대해서도 엄격한 추적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그린 보호무역의 파급효과
미국이 안보를 명분으로 관세 장벽을 쌓는다면, 유럽연합(EU)은 기후 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해 새로운 형태의 무역 장벽을 구축하고 있다. CBAM은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이 EU 역내 제품보다 많을 경우, 그 차이만큼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EU는 기존 배출권거래제(ETS) 하에서 자국 철강기업들에게 부여하던 무상 할당량을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기 시작한다. 이에 발맞추어 수입업자들은 수입 제품에 포함된 내재 탄소 배출량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이는 수입산 제품이 EU 내 제품과 동일한 탄소 비용을 부담하도록 보장함으로써 ‘탄소 누출’을 방지하고 환경 기준이 느슨한 국가로의 생산 시설 이전을 막으려는 조치이다.
한국 철강업계는 고로(Blast Furnace) 기반의 생산 비중이 높아 탄소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EU 수출 시 막대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추정치에 따르면 제도 시행 첫해인 2026년에만 한국 철강업계가 지불해야 할 CBAM 인증서 구매 비용은 약 85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탄소 가격 상승과 무상 할당 폐지 가속화에 따라 이 비용은 수천억 원 단위로 불어날 전망이다.
· 글로벌 지속가능 철강협정(GSSA) 협상의 난항
미국과 EU는 중국발 공급과잉과 탄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 지속가능 철강협정(GSSA)을 논의해 왔으나, 구체적인 이행 방안에서 큰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제조 공정의 탄소 집약도에 따라 관세를 차등화하는 ‘관세 기반 모델’을 선호하는 반면, EU는 관세 철폐를 전제로 탄소 배출량을 검증하는 ‘규제 기반 모델’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 간의 불협화음은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한국과 같은 수출국가들은 미국식 관세와 유럽식 탄소규제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허들을 동시에 넘어야 하는 상황이다.
· 중국발 공급과잉의 구조화와 글로벌 무역 규제 전쟁
글로벌 보호무역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기저에는 중국 철강산업의 구조적 공급과잉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정부의 감산 권고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 부동산 침체, 금융 불안 등으로 인한 내수 소비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 철강사들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2024년 중국의 강재 수출량은 약 1.1억 톤에 달하며 연평균 20%의 폭발적인 증가세를 기록했다. 이는 전 세계 철강 가격을 하락시키고 주요국의 내수 시장을 잠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한국 시장은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중국산 저가 제품의 주요 타깃이 되었으며, 2023년 한 해에만 약 870만 톤의 중국산 철강재가 유입되었다. 후판과 열연강판 등 주력 품목에서 국산 제품과의 가격 차이가 10% 이상 벌어지면서 국내 철강사들은 가동률 하락과 수익성 악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 전 세계적 반덤핑(AD) 및 상계관세(CVD) 조사의 급증
(도표2) 글로벌 무역 구제 조치 현황 및 특징
중국발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선진국뿐만 아니라 신흥국들도 무역 구제 수단을 적극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인도는 JSW스틸 등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중국산 철강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멕시코, 브라질, 태국 등도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에 동참하고 있다. 너무 늦은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한국 역시 현대제철 등 주요 기업들이 중국산 후판 및 열연강판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진행하였고, 무역위원회는 2024년 말 STS 후판에 대해서 21.62%의 잠정 관세를 부과하는 등 저가 중국산 수입재 방어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진행 중에 있다.
[한국 철강업계의 대응 전략]
◆ 대응전략Ⅰ :해외 생산 거점 확보를 통한 현지화(Localization)
글로벌 보호무역주의가 ‘자국 내 생산’을 강제함에 따라,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은 단순 수출 중심의 사업 모델에서 탈피해 해외 핵심 시장에 직접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완전 현지화(Complete Localization)’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 북미 시장 - 전략적 투자와 합작 공장 건설
미국의 고율 관세를 회피하고 현지 자동차 산업 공급망에 안착하기 위해 한국 철강사들은 미국 내 직접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미국 최대 철강사 중 하나인 클리블랜드 클리프스(Cleveland-Cliffs)의 지분 10~20% 인수를 추진하며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지분 참여를 통해 현지 생산 제품으로 인정받아 관세 장벽을 우회하고 북미 시장 내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현대제철은 현대자동차그룹과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루이지애나주에 저탄소 자동차 강판 생산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총 8.5조 원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는 직접환원철(DRI) 설비와 전기로를 갖춘 일관 생산 체제를 지향하며, 2029년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이 투자는 포스코그룹이 일부 지분(20%)을 참여하는 합작 형태로 진행돼 대규모 투자에 따른 재무적 리스크를 분담하고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전략적 선택을 하였다.
· 신흥 성장 시장 - 인도와 동남아시아로의 확장
중국 시장의 대안이자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철강 시장인 인도 역시 한국 철강사들의 핵심 전략 지역이다. 포스코는 인도 JSW그룹과 협력해 오디샤(Odisha)주에 연산 600만 톤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는 합작 사업(JV)에 착수했다. 이는 인도의 강력한 자국 산업 보호 정책(Make in India)에 대응하는 동시에, 급증하는 인도 내수 수요를 현지에서 직접 흡수하기 위한 포석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기존의 수입 쿼터와 반덤핑 규제를 넘어서기 위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의 생산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지화 전략은 단순히 관세를 피하는 것을 넘어, 현지 정부와의 협상력을 높이고 에너지 비용 및 물류비용을 절감하는 다각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 대응전략 II : 탄소중립 공정으로의 대전환
보호무역과 기후 규제의 결합은 ‘탄소 배출량’ 자체가 철강제품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를 열었다. 이에 따라 한국 철강업계는 고로 중심의 전통적 생산 방식을 탈피해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중심의 저탄소 생산 체제로의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 포스코 - HyREX 기술 개발과 상용화 로드맵
포스코는 독자적인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하이렉스(HyREX)’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이렉스는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기술이다. 특히 유럽 철강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샤프트로(Shaft Furnace) 방식이 고품질의 펠렛(Pellet)을 원료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하이렉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수급이 용이한 가루 형태의 분광(Fine ore)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경제적 이점을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는 2025년까지 기초 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2030년까지 100만 톤급 실증 설비를 구축하며, 2040년에는 300만 톤급 상용 설비를 완성한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하였다. 이후 점진적으로 기존 고로 설비를 하이렉스로 교체해 2050년 넷제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에는 수십조 원의 천문학적인 투자비가 소요되며, 그린 수소의 안정적 공급과 저렴한 전기료 확보라는 국가적 해결 과제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 현대제철 - 전기로 기반 저탄소 생산 체제 ‘하이큐브(Hy-Cube)’
현대제철은 국내 최대 전기로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저탄소 철강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현대제철의 저탄소 생산 체제인 ‘하이큐브’는 전기로를 활용해 고철을 녹이는 과정에서 직접환원철(DRI)과 용선(쇳물)을 혼합해 고품질의 판재류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존 고로 대비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브리지 기술로 평가받는다.
현대제철은 이미 저탄소 철강 제품에 대한 글로벌 인증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유럽의 CBAM과 자동차사들의 저탄소 강재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 글로벌 기술 경쟁 및 정부 지원의 격차 분석
한국의 탄소중립 전환은 유럽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속도와 자금 지원 면에서 상당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도표3) 글로벌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현황 및 정부 지원
위의 비교에서 보듯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정부 주도의 막대한 직접 보조금을 통해 기업의 리스크를 분담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지원 규모는 구조 전환에 필요한 총비용 대비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많다. 수소환원제철로의 전환은 개별 기업의 수익성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 프로젝트이기에,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의 예산 증액과 에너지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 대응 전략 III : 수익성 강화를 위한 제품 포트폴리오의 고부가화
중국산 범용재와의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고 선진국의 무역 장벽을 넘기 위한 또 다른 축은 고부가가치 제품(Specialty Steel) 중심의 포트폴리오 고도화이다. 특히 전기차, 신재생 에너지, 인프라 현대화 등 성장 산업에 필수적인 핵심 소재 선점에 주력하고 있다.
· 전기강판 시장의 선점과 확대
전기차 모터와 전력 변압기의 효율을 결정짓는 전기강판은 현재 철강산업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품목 중 하나이다. 글로벌 전기강판 시장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11.8% 성장해 약 516억 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는 2025년 1월 광양제철소에 연산 10만 톤 규모의 무방향성 전기강판(Hyper NO) 생산 라인을 준공하며 급증하는 전기차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특히 0.18~0.23mm 수준의 초슬림 전기강판 기술력을 바탕으로 테슬라, BYD 등 글로벌 EV 메이커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 자동차 및 고기능성 강재 위주의 시장 재편
현대제철은 고강도와 경량화를 동시에 만족하는 자동차용 초고장력강(AHSS)과 핫스탬핑 제품 비중을 늘리고 있다. 2025년 기준 현대제철의 전체 판매량 중 자동차 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범용재인 봉형강 부문의 업황 부진을 상쇄하고 있다. 또한 해상풍력 발전에 사용되는 하부구조물용 후판, 수소 운송용 특수 강재 등 신재생 에너지 소재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 철강 기업의 통상 리스크 관리 및 내부 조직 개편
보호무역주의가 상시화됨에 따라 통상 리스크 관리가 기업 경영의 핵심 영역으로 부상함에 따라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통상 전담 조직을 대폭 강화하고, 법무, 기술, 재무 부서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 Cross-functional 대응 체계 가동
현대제철은 CBAM 전담 조직을 구성해 내재 탄소 배출량 산정 및 보고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의 수입 규제 시나리오에 따른 현지 판매 전략을 수시로 조정하고 있다. 포스코 역시 무역통상실을 중심으로 해외 법인과의 실시간 정보 공유 체계를 강화하고, 반덤핑 조사 시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등 공격적인 통상 대응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은 권역별(미주, 유럽, 인도 등) 리스크 관리 조직을 세분화해 시장 변동성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 자산 효율화와 한계 사업 구조조정
수익성이 낮은 노후 설비를 폐쇄하고 한계 사업을 정리하는 자산 효율화 작업도 병행되고 있다. 현대제철은 인천 소형 봉강 공장 등 비효율 설비를 정리하고 비핵심 자산 매각을 통해 확보된 자금을 저탄소 설비 투자에 투입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 역시 2024년부터 2028년까지 약 2.8조 원 규모의 현금 확보를 목표로 저수익 자산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며, 이를 통해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고 미래 성장 동력인 이차전지 소재 및 수소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 재무적 압박과 미래 투자 간의 딜레마
대규모 환경 투자와 해외 현지 투자가 동시에 진행됨에 따라 철강사들의 재무 부담은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S&P Global 등 신용평가사들은 포스코의 차입금 증가와 수익성 둔화에 주목하며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등 경고음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홀딩스의 2025년 매출은 약 69조 원, 영업이익은 1.8조 원 수준으로 집계되었으나, 이차전지 소재 부문의 업황 둔화와 철강 부문의 투자 지출 확대로 인해 잉여현금흐름(FOCF)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2026년 이후부터는 아르헨티나 리튬 광산의 상업 생산이 시작되고 해외 철강 JV의 성과가 가시화되면서 수익성이 반등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부채 비율(Debt/EBITDA) 관리는 여전히 중요한 경영 과제로 남아 있다.
현대제철 역시 2025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7% 증가하며 회복세를 보였으나, 미국 내 8.5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감당하기 위해 배당금을 축소하고 부채 비율을 낮추는 등 재무 구조 건전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재무적 압박 속에서도 투자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지금의 투자 지연이 향후 10~20년 뒤 글로벌 철강 경쟁력의 상실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래 시나리오와 전략적 제언]
글로벌 철강 시장의 미래는 탄소중립 기술의 완성도와 보호무역 장벽의 높이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맥킨지(McKinsey)와 BCG 등 주요 컨설팅 그룹은 2030년까지 철강산업에서 자산 재구성(Asset Reconfiguration)이 역사상 최대 규모로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 탈탄소화 가속 시나리오와 녹색 철강 허브의 부상
탄소 규제가 더욱 강화되는 시나리오 하에서 철강 가치사슬은 지역별로 분절된 ‘녹색 철강 허브’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료가 저렴하고 수소 생산이 용이한 호주, 브라질, 중동 지역이 철강 생산의 상공정(Ironmaking)을 담당하고, 실제 제품 가공은 고객사가 밀집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이뤄지는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심화될 전망이다. 한국 철강사들은 이러한 글로벌 분업 구조 변화에 맞춰 해외 원료 기지에서의 직접환원철(DRI)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국내외 전기로 설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 기술 경쟁력과 통상 외교의 결합
단순히 관세를 피하는 것을 넘어, 한국 철강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기술력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이렉스(HyREX) 기술의 조기 상용화는 유럽과 미국의 환경 규제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는 한미 무역 관계의 안정을 도모하고, EU CBAM 대응을 위한 탄소 배출량 검증 체계의 상호 인정을 이끌어내는 등 전방위적인 통상 외교를 통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결론 :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한국 철강산업]
글로벌 보호무역 확산과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파고는 한국 철강산업에 있어 전례 없는 도전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 장벽과 유럽의 그린 규제, 그리고 중국의 저가 공세 등은 국내 철강사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동시에 기술 혁신과 시장 다변화를 촉진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해외 생산 거점 확대,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전기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을 통해 이러한 도전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단순한 소재 공급자를 넘어, 친환경 모빌리티와 에너지 전환의 핵심 파트너로서의 글로벌 입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정책적 지원과 기업의 과감한 기술 투자가 결합된다면, 한국 철강업계는 보호무역의 장벽을 넘어 미래 저탄소 경제의 선도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철강은 여전히 ‘산업의 쌀’이며, 변화된 시대에 걸맞은 ‘그린 쌀’을 생산하는 역량이 곧 국가 경쟁력의 척도가 될 것이다.
◆ 손영욱 철강산업연구원 대표는
철강산업 전략, 통상, 시장 분석 분야에서 활동해 온 철강 전문 컨설턴트다. 철강산업연구원 공식 소개에 따르면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상명대 대학원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포스코경영연구소,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현대하이스코 등을 거친 철강산업 전문가로 2012년부터 철강산업연구원 대표를 맡고 있다. 강관·철강재 마케팅, 해외 시장 진출, 산업 환경 분석 관련 세미나와 교육에서 꾸준한 강연은 물론 관련 연구용역을 수행해 왔다. 최근에도 보호무역, 통상규제, 시장 재편, 철강산업 구조 전환 등을 주제로 활발한 의견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