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7주년 특별기고] 한국 철강산업의 현주소와 미래 대응 전략
수요 부진 장기화…철강 위기, 경기순환 넘어 구조 전환 국면 중국 추격·통상 압박·탄소 규제 겹쳐 고부가 경쟁력도 흔들 단기 처방 한계…저탄소·고부가·AI 기반 산업전환 로드맵 시급 K-GX·철강산업경쟁력 강화법 연계한 재정·금융 지원 필요 정부 지원과 기업 실행 결합해야 실질적 변화 지속생존 가능
페로타임즈는 창간 7주년을 맞아 한국 철강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 전략을 모색하는 특별기고를 연속 게재한다. 철강업계는 수요 부진, 경쟁력 약화, 탄소중립 규제 강화라는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 국내 수요의 장기 추세 이탈, 중국과의 경쟁구도 변화, 탄소비용 부담 확대, 시민사회의 감축 요구 강화 등 철강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에 따라 구조도 대폭 전환되고 있다. 고부가화, 저탄소화, AI 기반 전환은 핵심 키워드다. 이재윤 산업연구원(KIET) 산업탄소중립연구실장·선임연구위원은 산업정책, 통상정책, 에너지정책, 지역정책이 따로 갈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정부 지원과 기업의 실행 의지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편집자주]
[한국 철강산업의 현주소와 미래 대응 전략]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지난해 한국 철강산업은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경기 둔화 시기에 생산과 수요 간 불일치가 빈번히 나타나는 산업적 특성과 이에 따른 글로벌 과잉공급 및 통상 마찰 등 과거 위기 국면에서 관찰되었던 현상들이 이번에도 반복되었다. 다만 수급 실적과 수익성, 공장 가동 중단 등에서 나타난 위기의 징후는 어느 때보다 심각하며, 현재도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감은 더욱 크다.
특히 최근 국내 철강 수요의 흐름은 단순한 경기 둔화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장기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 철강 수요의 시계열적 추세(장기간 누적된 통계 흐름)를 추정해 보면, 철강 수요는 팬데믹 위기 이후 일정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예측되나 실제 수요는 2022년 이후 이를 지속적으로 하회하고 있다. 2025년에는 통계적 예측 범위의 하단마저 벗어나며, 수요 감소가 통상적인 변동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수요 부진이 단순한 경기 변동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국면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국내 철강 수요 추이> 그래프는 2000년 이후 국내 철강 수요 실적과 예측 경로를 비교한 것으로, 최근 실제 수요가 예측 하단을 뚜렷하게 밑돌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최근 수요 부진이 구조적 성격임을 보여주는 근거이다.
이러한 흐름은 글로벌 시장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공표된 세계철강협회의 전망에 따르면, 세계 철강 수요는 2025년 1.9% 감소 이후 2026년 0.3% 증가, 2027년 2.2% 성장으로 완만한 회복세가 전망되는 반면, 한국은 2026년에도 0.3% 수준의 제한적 회복, 2027년 역시 1.1%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주요국 대비 상대적으로 부진한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국내 수요 부진은 구조적 요인과 맞물려 나타나고 있다. 우선 건설경기 침체의 장기화가 철강 수요 감소를 직접적으로 견인하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과잉과 첨단 산업구조로의 수요산업 변모 역시 철강 수요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고율관세 효과, EU 쿼터(수입 물량 제한) 축소, 중동 지정학 리스크 등 대외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업황 회복을 제약하는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쟁 환경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양적 성장과 기술 추격 속에서 점유율이 축소된 독일, 일본과 달리, 한국의 주력 제품인 판재류는 품질과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일정 수준의 우위를 유지해 왔다. 특히 자동차용 강판, 고급 후판 등 고부가 제품군에서는 고객 인증(납품 승인 절차)과 품질 신뢰성을 바탕으로 비교적 견고한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전세계 및 주요국의 철강 판재류 수출 추이> 그래프는 세계와 한국·일본·독일·중국의 판재류 수출 추이를 비교한 자료다. 한국이 일정한 수출 기반을 유지해 왔지만, 중국 비중 확대와 함께 경쟁 구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실시한 철강업계 설문 결과에 따르면, 과거에는 품질과 기술 측면에서 한국이 중국 대비 우위에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격차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범용 제품에서는 이미 가격 경쟁력 열위가 고착화된 가운데, 냉연·도금강판 등 중간 제품에서도 격차가 줄어들고 있으며, 자동차용 고급강과 고강도 후판 등 고부가 제품에서도 경쟁 우위가 약화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인된다. 더 나아가 일부 고기술 제품 영역에서도 추격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기강판과 같은 대표적인 고부가 제품에서도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기업들이 생산을 확대해 나가면서 한·중·일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경쟁이 더 이상 범용재에 국한되지 않고 고부가·고기술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철강 한중 수출경쟁력 변화 조사 결과> 표는 범용 제품, 중간 제품, 고부가 제품, 고기술 제품별로 한·중 경쟁력 인식 변화를 정리한 것이다. 범용재는 이미 중국 우위 또는 격차 미미, 중간재와 고부가재는 격차 축소, 전기강판·특수강 등 일부 고기술 영역도 추격 심화로 진단하고 있다.
이에 더해 탄소중립 규제 환경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2026~2030)에서 기업의 비용 부담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에서 산업부문의 목표는 2018년 대비 24.3~31% 감축으로 설정되어 기존 2030년 목표(11.4%)보다 크게 상향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저탄소화 수단의 확보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전기화, 철스크랩·HBI(Hot Briquetted Iron·열간성형환원철) 등 저탄소 원료 활용은 조업 안정성 문제와 함께 생산비용 상승이 수반되는데, 이를 시장가격으로 회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 관련 투자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앞으로 마련될 K-GX 전략(한국형 녹색전환 전략)에서 다배출 산업에 특화된 재정·금융 대책이 제시되기를 기대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공론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적 인식 역시 의미심장하게 볼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마련된 시민참여형 논의에서는 현실 여건을 고려한 후기 감축보다 초기부터 감축을 강화하는 오목형 경로가 선택되었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넘기기보다는 지금 더 감당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다만 이에 따른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 부담은 상당 부분 기업의 책임으로 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철강의 저탄소 구조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요구이자 성장 기회로 만들어가야 할 대상인 것이다.
<중장기 감축경로에 대한 시민대표단 선호도 조사 결과> 그래프는 시민대표단이 ‘후기에 더 많이 감축하는 방식’보다 ‘초기에 더 많이 감축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인식이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향후 산업부문 감축 부담이 앞당겨질 가능성을 시사하는 자료로 읽힌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현재의 철강산업 위기는 단순한 경기 하락이라기보다 수요, 경쟁력, 정책 환경이 동시에 변화하는 구조 전환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단기적인 경기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산업 구조 전환을 전제로 한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은 철강산업의 급격한 위축을 방지하고 산업전환을 안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철강의 경제안보적 중요성, 온실가스 저감에 따른 긍정적 외부효과, 그리고 영국 사례에서 보듯 철강산업의 활성화가 지역균형발전과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제도, 무역구제제도 등을 적극 활용해 위기 기업의 경영 안정을 도모하고, 불공정 수입 철강재의 과도한 유입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병목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전기요금 부담 완화 방안도 함께 모색되어야 한다.
다만 과도한 정부 보호에 의존하는 현상 유지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쟁 및 규제 환경 변화와 함께 국내 철강시장은 기존과 다른 비즈니스 모델, 제품 구조, 생산 전략을 요구하는 단계에 진입하였다. 정부 지원이 제시되어야 기업의 투자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는 소극적 접근으로 인해 발전 전략 추진이 지연되는 상황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결국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이 제시하듯, 고수익 구조로의 사업재편 및 저탄소 전환 계획을 중심으로 기술개발, 투자지원, 원료 공급망, 시장 창출, 제도 개선 등 관련 정책 수단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산업전환 로드맵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함께 이행 기반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다행히 이러한 전환을 뒷받침할 법적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 철강산업경쟁력 강화법을 출발점으로, 단기적으로는 과잉설비 조정과 통상 대응, 중기적으로는 특수강·AI 기반 고부가화, 장기적으로는 고급 스크랩·수소환원제철 중심의 산업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전력·AI, 수소 등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새로운 수요 기회를 활용하는 한편, 중복 투자를 지양하고 산업 내 전문화와 분업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실 이러한 방향성은 이미 기존 정책과 전문가 제언, 그리고 기업 내부에서도 상당 부분 공유되고 있다. 남은 과제는 이행이다. 실행 주체인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와 문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과 같이 기업이 자율적으로 의견을 모으고 이를 기반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관민 협의체 방식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리 역시 기업 참여를 전제로 한 논의의 장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재윤 산업연구원(KIET) 산업탄소중립연구실장·선임연구위원은
철강, 통상, 탄소중립, 산업정책 분야를 연구해 온 산업경제 전문가다. 철강산업의 구조전환과 통상리스크, 탄소중립 대응 전략 관련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 왔다. 시라큐스대학교(Syracuse University)에서 경제학 박사학위(2015)를 받았고, 최근에는 ‘철강품목별 경쟁력강화방안’(2025) 등 철강산업 경쟁력 관련 연구를 수행했으며 국내 주력산업의 구조적 위기와 철강산업 대응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또 배출권할당결정심의위원(2026~2028), 전력수급기본계획분과위원으로도 참여하며 산업·에너지·기후정책 접점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