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포스코 고망간강 ‘원팀’ 상용화 성공…장 회장 “우리가 먼저 써보자”
광양제철소 LNG 탱크 적용 상용화 전환점 마련 연구 생산 마케팅 협업 글로벌 시장 신뢰 확보 LNG 넘어 암모니아·수소 인프라 적용 확대 기대
철강 산업은 공급과잉과 보호무역, 탄소중립이라는 패러다임 전환 국면을 거치고 있다. 불확실성으로 요약되는 시대에 포스코가 내놓은 해답은 대체 불가능한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순기 수석연구원(미래철강연구소 차세대철강연구그룹)은 현재의 상황을 "단순한 양적 경쟁으로는 더 이상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진단한다.
영하 165도 극저온에서도 견디는 고망간강(High Manganese Steel)은 세계 최초의 혁신 소재로 평가를 받는다. 20년 가까이 이 소재를 연구해온 이순기 수석연구원을 만나 고망간강의 개발에서부터 상용화까지의 과정, 향후 미래 소재 개발의 방향성을 들어봤다.
이순기 박사는 철강을 에너지, 조선, 건설, 방산 등 산업 전체에 영향을 주는 본질적인 소재로 규정한다. 2007년 미국 재료공학 박사 학위 취득 후 포스코를 선택한 이유도 연구 성과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구현되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고망간강 개발은 선진 철강사를 추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됐다. 2000년대 중반 급증하는 LNG 수요에 맞춰, 기존 9% 니켈강 시장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높은 가격과 자원 의존도가 높다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와 현장의 '원팀' 성과 시장성까지 확보
포스코 연구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망간 기반의 합금강을 개발하여 통해 성능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가장 큰 난관은 양산 공정이었다. 망간 함량을 20% 이상 높이면서 극저온 인성과 연성을 확보해야 했다. 동시에 제강 공정에서 온도 안정성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쇳물에 차가운 망간 광석을 대량 투입하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연속 주조가 불가능했다.
이를 해결한 핵심 기술이 바로 보온로다. 쇳물 온도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이 설비는 고망간강의 경제성 있는 연속 생산을 가능하게 한 핵심 동력이 됐다. 개발 초기엔 내부의 반대 논리와 의구심도 있었다. 하지만 보온로 개발에 성공을 거두면서 대량의 망간 투입에 따른 온도 저하 문제를 해결했다. 연구 성과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적용되는 기술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고망간강 개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순기 박사는 고망간강 개발의 의미를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 구조를 바꾸는 소재를 구현한 것”으로 평가한다. 특히 연구소와 현장 엔지니어가 공장 안에 사무실을 차리고 머리를 맞댄 '원팀(One Team)'이 일궈낸 성과라는데 의미를 뒀다.
시장 지향적 연구도 성과에 중요한 요인이 됐다. 연구 조직의 역할은 기술 개발을 넘어 시장 적용 지원까지 확대됐다. 고객사의 용접, 성형, 설계 조건에 맞춘 최적의 데이터를 제공하며 연구, 생산, 마케팅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체제를 구축했다.
그는 "철강 연구는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인 연구 결과의 축적이 중요하다"며, "고망간강 역시 15년 이상의 긴 호흡 끝에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기준이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장인화 회장 “우리 사업장에 우선 써 보자”
아무리 혁신적인 소재라도 수요 산업에서 기존 소재를 바꾸기엔 부담이 크다. 투자 규모가 큰 LNG 저장탱크나 운반선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고 시장 전망이 밝더라도 실제 상용화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최종 관문인 수요가들의 선택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의 결단과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2017년 포스코 부사장이었던 장 회장은 "우리 사업장에 가장 먼저 고망간강을 써보자"고 했고, 광양 LNG 터미널 5번 탱크에 고망간강을 직접 적용했다. 시공 초기에는 고망간강 적용에 따른 작업 속도 저하가 있었지만, 익숙해진 이후에는 기존 소재 대비 공기를 대폭 단축하는 등 시공성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했다.
현재 현재 6~8번 탱크까지 적용을 확대하며되며 성능을 입증하고 있다. 이는 시장 확산의 기준점이 됐다.
실제 국내 대표 EPC(설계·조달·시공)사는 카타르 LEG(액화에틸렌가스) 터미널 수주 과정에서 고망간강을 채택했다. 실무자들은 직접 현장을 보고 시공성을 확인한 후 후속 프로젝트에서도 적용을 이어가고 있다.
LNG추진선용 신수요도 장 회장이 직접 이끌어 냈다. 2020년 포스코 사장 재임 당시 한화오션 경영진을 만나 고망간강을 적용하도록 설득했다. 이후 세계 최초로 고망간강을 적용한 LNG연료탱크가 초대형 원유 운반선에 탑재됐다.
국제 표준 선점, LNG를 넘어 수소, 암모니아로
고망간강은 포스코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소재인 만큼 국제 규격 제정 과정에서도 높은 장벽이 존재했다. ASTM, ISO, IMO 등 국제 표준 등록 과정에서는 경쟁사의 견제와 추가 검증 요구가 이어졌다. 이에 이 박사 팀은 다양하게 제시된 의견에 대해 재차 기술 데이터를 제공하며 논리적으로 대응했다.
축적된 연구 결과와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술적 타당성을 설명한 끝에, 고망간강은 국제 기준으로 채택됐고 국제해사기구(IMO) 총회에서 모범 사례로 발표되기도 했다.
고망간강의 무대는 이제 LNG를 넘어선다. IMO로부터 암모니아 운송 및 저장용 소재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액화수소 인프라 적용을 위한 검증도 진행 중이다. 극저온 환경에서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갖춘 고망간강이 에너지 전환 시대의 핵심 솔루션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박사는 철강 연구가 좋은 강재를 만드는 단계에서 특정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형 소재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공지능(AI) 시대의 철강 연구의 방향
포스코는 올해 2월 27일 8대 핵심 전략제품을 발표하고, 미래 고부가가치 철강 시장을 주도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를 위해 기술개발, 혁신공정, 상용화를 묶는 원팀 체제를 가동하기로 했다. 고망간강 개발의 ‘워크플로(workflow)'와 같은 맥락에 있다.
이 박사는 “연구 초기에는 기술 개발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고객 요구를 빠르게 반영하는 시장 확대 단계로 전환됐다”고 말한다. 연구소와 생산, 마케팅 조직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원팀은 실증 데이터 확보, 고객 기술 지원, 적용 공정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AI 기술이 연구 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데이터 조사와 코드 작성, 산업 동향 분석 등에서 AI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연구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는 평가다.
AI가 연구의 본질을 대체할 수는 없다. 연구자의 경험과 판단이 데이터를 실제 기술로 구현하는 핵심 요소다. 향후 철강 산업 경쟁력은 생산량보다 대체 불가능한 소재 기술 확보에 달려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이순기 박사는 “기술은 산업과 연결될 때 의미가 있다”며 “연구는 개인의 성취이면서 동시에 팀의 성과”라고 강조했다. 고망간강 개발 과정 역시 연구자와 엔지니어, 생산 조직이 함께 문제를 해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