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거울 세포, 하루를 비추는 보이지 않는 거울
“사람은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아니라, 함께 있을 때의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 한나 아렌트(독일 태생의 미국의 작가, 정치 이론가)
이전 직장생활에서 종종 경험했던 것이 기억난다. 회의실에 들어섰을 때 분위기가 왠지 무겁게 느껴지고, 특정 상사와 대화를 나눈 뒤에는 괜히 기운이 빠진다. 반대로 어떤 동료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마음이 밝아지고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비근한 예가 있다. 실적이 나빠져 걱정 가득한 한 중견기업의 팀장은 회의 시간마다 인상을 쓰고 말수를 줄였다. 그는 직접적으로 화를 내거나 비난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팀 분위기는 점점 경직되었고, 직원들은 소극적으로 변했다. 그 결과 질문이 줄고, 회의는 빠르게 끝났지만, 성과는 오히려 떨어졌다.
문제의 핵심은 말이 아니라 표정과 태도였다. 팀장의 불안과 긴장이 거울 세포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그대로 전이된다. 여기서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란 특정 움직임을 수행할 때와 다른 개체의 특정한 움직임을 관찰할 때 모두 활성화된다. 일의 결과도 분위기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주의가 산만한 분위기에서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올바른 판단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산만하여 당신의 상상력에 집중할 수 없다면 당신의 판단력도 믿을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이를 ‘기분 탓’이라 넘기지만, 사실 그 배경에는 뇌과학적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사회심리학에서 자아 형성과 거울 반응을 설명할 때 우리는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본다.
거울 세포(Mirror neuron)는 1990년대 이탈리아의 신경과학자 리촐라티 연구팀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세포는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뿐 아니라, 타인이 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동일하게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다. 누군가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지고, 다른 사람의 긴장된 표정을 보면 이유 없이 나도 긴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서로를 ‘비추며’ 살아가는 존재인 셈이다.
이 거울 세포의 작용은 직장이라는 집단 공간에서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직장은 단순히 일을 하는 장소가 아니라,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타인의 감정과 태도 속에 노출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거울 세포 개념을 가장 시적으로 요약한 문장은 칼 융의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다.”
좋은 직장은 거울이 맑은 곳으로, 복지나 연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왜곡되지 않은 곳, 즉 분노와 불안이 증폭되지 않고, 존중과 안정이 자연스럽게 순환되는 공간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각자가 “어떤 표정과 태도로 하루를 보내는가”에 대한 자각이다.
거울 세포의 불편한 진실은, 우리는 혼자 일하지 않으며, 혼자 지치지도 않고, 동시에 희망도 준다. 내가 바뀌면, 상대방도 많이 바뀐다.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아담 스미스
오늘날 뇌과학적 기반의 공감 능력 향상이 절실하다. 오늘 하루, 내 표정은 어떤 감정을 전파했는가. 내가 비춘 거울 속에서 동료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직장인의 성숙은 기술 이전에 자신이 타인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것이 거울 세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현실적인 직장생활의 지혜다.
직장인은 ‘보는 사람’이자 ‘보여지는 사람’이다. 많은 직장인은 스스로를 “나는 그냥 내 일만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울 세포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타인의 뇌에 영향을 미친다. 무심코 던진 한숨, 회의 중의 비아냥, 엘리베이터 안의 무표정은 생각보다 넓게 퍼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의 근원은 거울 신경세포이다. 작은 긍정은 생각보다 큰 파장을 만든다. 아침 인사, 짧은 감사 표현,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태도는 상대의 거울 세포를 자극해 신뢰와 안정감을 형성한다. 이것은 도덕 교과서의 이야기가 아닌 뇌의 작동 원리에 기반한다.
“봄은 처녀처럼 부드럽고 여름은 어머니처럼 풍성하고 가을은 미망인처럼 쓸쓸하며 겨울은 계모처럼 차갑다.” - 폴란드 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