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칼럼] 고사성어와 철강⑥ - 주마간산(走馬看山)과 ‘K-스틸법’
선언적 수준 가능성, 시행령에 구체적 지원 내용 명시해야
고사성어 주마간산(走馬看山)이 있다. 앞 두 글자 ‘주마’는 ‘달리는 말’이다. ‘간산’은 ‘산을 보다’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질주하는 말 위에서 스쳐 가는 산을 구경하다’란 의미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대충대충 보고 그냥 지나치는 상황에서 자주 사용된다.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 751∼814)가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 ‘과거에 합격한 후(登科後)’의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이 시는 그가 합격을 확인한 날, 주체하기 어려운 마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궁색하던 지난날 무엇 하나 자랑할 것 없었지만, 오늘 아침엔 우쭐하여 생각이 거칠 것이 없었다네. 봄바람에 마음이 들떠 말을 타고 질주하며(春風得意馬蹄疾), 온종일 수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실컷 둘러보기도 하고 그랬네(一日看盡長安花).”
이 작품 마지막 내용을 4글자로 축약하면 ‘주마간화(走馬看花)’다. 말을 타고 빠르게 질주하는 순간에는 꽃보다는 산 전체 윤곽이나 경치에 더 눈길이 머문다는 뜻이다. 끝 한 글자가 바뀌었고 차츰 ‘주마간산’으로 굳어졌다. 현재 중국에서는 ‘주마관화(走馬觀花)’, 라고 쓴다.
비슷한 말로 ‘수박 겉핥기’가 있다. 문자 그대로 단물이 있는 속이 아닌 껍질로 둘러싸여 있는 수박의 겉만 핥아먹는다는 의미다. 사물의 속 내용을 모르고 겉만 건드리는 일에 비유하여 아무런 소득이 없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현대 사회는 ‘빨리빨리’ 문화로 인해 주마간산의 위험이 더 커졌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핵심 내용만 간략히 확인하려는 경향이 짙다. 보고서나 발표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넘어갈 때 이 표현이 쓰인다. 단순히 주마간산으로 자료를 훑어봐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관리자나 평가자가 대충 넘어가려는 태도를 비판할 때도 유효하다. 주마간산은 신속함이 중요할 때도 쓰인다. 예외적으로 시간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전체 윤곽을 파악할 때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신중하지 못함을 강조하는 의미가 강하다.
‘K-스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이 위기에 처한 국내 철강산업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할 것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만 국회가 철강산업의 위기에 공감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법을 마련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국회가 정쟁에만 몰두하며 산업의 위기를 안중에도 없는 듯한 모습에서 실망감이 컸다. 법 통과는 시간을 길게 끌며 업계의 애를 태웠다. 다행히 올해가 가기 전에 법이 통과해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쉰다.
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 당장 눈앞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 업계의 상황이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존폐(存廢)의 기로(岐路)에 서 있다. 하지만 통과된 법은 우리 업계가 체감할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탄소중립 전환 등 먼 미래를 내다본 정책이 대부분이다. 지금은 수소환원제철보다 중요한 것이 산업용 전기료 급등,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 미국·EU의 관세 압박 등을 치료해야 할 처방이다.
포스코는 연간 전기요금 부담만 약 5000억 원에 이르며, 국내 전력 사용량 상위 10대 기업으로 꼽힌다. 전기로 중심의 생산체제를 갖춘 현대제철의 경우 연간 전력요금이 약 1조 원이다.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를 넘어선다. 수소환원제철 등 저탄소 공정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면 에너지 비용 부담은 더욱 커진다. 여기에 정부가 확정한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2018년 대비 53∼61% 감축이다. 에너지 소비가 절대적으로 많은 철강업계는 설비 교체, 수소 전환, 효율 향상 등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수출환경도 악화일로다. 미국은 한국산 철강에 대해 50% 고율 관세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EU는 내년 1월 1일부터 철강·알루미늄 등 6개 품목에 대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한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상황이지만 기대했던 ‘K-스틸법’ 은 이것을 외면했다. 이 법이 만들어지기 전 업계 의견을 수렴했는지 궁금하다. 만약 업계 의견을 듣고도 법에 반영하지 않았다면 문제이고, 업계 의견을 듣지 않았다면 이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K-스틸법이 제 역할을 하려면 시행령에 전기료 인하·전력비 지원, 수소환원제철·전기로 전환 투자 세제 혜택, 산업별 NDC 조정 검토, 글로벌 관세 대응 전략 등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명시하는 형태로 담겨야만 실효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은 선언적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리 있는 이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하고, 법이 주마간산(走馬看山)이 되지 않도록 정부의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