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칼럼] 고사성어와 철강② - 추기급인(推己及人)
안자춘추(晏子春秋) 간(諫)에 추기급인(推己及人)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를 미루어 남에게 미친다는 뜻으로, 자기의 처지에 비추어 다른 사람 형편을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에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큰 눈이 내렸다. 제나라의 경공(景公)은 따뜻한 방 안에서 여우 털로 만든 옷을 입고 설경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있었다. 경공은 눈이 계속 내리면 온 세상이 더욱 깨끗하고 아름다워질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때 재상인 안자(晏子: 안영)가 경공의 곁으로 다가와 창문 밖 가득 쌓인 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경공은 안자 역시 설경에 도취된 것으로 생각하고 조금 들뜬 목소리로 "올해 날씨는 이상하군. 사흘 동안이나 눈이 내려 땅을 뒤덮었건만 마치 봄 날씨처럼 따뜻한 것이 조금도 춥지 않아"라고 말했다.
이에 안자는 경공의 여우 털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정말로 날씨가 춥지 않은지 되물었다. 그러나 경공은 왜 그렇게 묻는지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생각도 않고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그러자 안자는 안색을 바꾸어 정색하며 이렇게 말했다. "옛날의 현명한 군주들은 자기가 배불리 먹으면 누군가가 굶주리지 않을까를 생각하고, 자기가 따뜻한 옷을 입으면 누군가가 얼어 죽지 않을까를 걱정했으며, 자기의 몸이 편안하면 또 누군가가 피로하지 않을까를 늘 염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공께서는 자신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으시는군요." 이 말에 경공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도 이 가르침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자신만 생각하고 남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나만 배부르면 되지 남이야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동업자 정신의 실종은 실망스럽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약속도 헌신짝처럼 버린다. 자신들이 어려울 때는 간이라도 빼 줄 정도로 읍소하다가도 성이 차면 안면몰수(顔面沒收)가 매몰차기 그지없다.
후판이 부족해서 조선업계가 쩔쩔매던 때가 있었다. 갑자기 선박 수주가 쏟아지자 조선용 후판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그들은 철강업계에 후판 증산을 간곡히 요청했다. 이 요청에 설비를 증설하면서까지 딱한 처지를 봐준 것이 철강업계다. 상부상조는 상도의고 동업자 정신에도 부합하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업계는 조선업계를 항상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입장에서 봐왔다. 그렇기에 그 결정에 한치 망설임도 없었다.
세월이 흘러 2025년 현실은 삭막하다. 한쪽은 잘 나가고 있지만, 한쪽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조선업계는 쏟아지는 수주로 콧노래가 즐겁지만, 철강업계는 관세 폭탄에 벼랑 끝으로 몰렸다. 미국이 50% 관세 폭탄을 때리더니 EU도 50% 장벽을 치고 협상하자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은 이러한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런 때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면 큰 힘이 될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지금처럼 절실한 때는 없었다. 그것을 조선업계가 해 주기를 바랬다. 우리 업계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이 바람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조선업계는 어려워진 철강업계의 처지는 안중에도 없다. 가격 협상 기간에도 중국산 수입을 확대하며 협상 도구로 삼았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중국산 후판에 대해 반덤핑을 관세를 부과했음에도 수입이 급증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8월 후판 수입은 20만7천톤으로 전년 동월 대비 54%나 늘었다. 이 가운데 중국산 비중은 58.6%에 달했다. 보세구역을 활용한 조선용 중심 물량이 대거 통관되면서 사실상 제재 효과가 무력화된 것이다. 그것을 국내 조선업계가 앞장섰다는 것은 섭섭하고 실망이 크다.
한국철강협회 통계에 따르면 9월 중국산 후판 수입은 12만1,755톤으로 전월보다 141%나 늘었다. 이는 2024년 5월 이후 최대이다. 조선사들이 하반기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중국산을 선제적으로 수입한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덤핑 제재에도 보세창고라는 회색지대를 통해 중국산이 대거 유입된 것이다. 이같이 제도가 허용하는 틈새를 활용해 수입이 이루어진다면 내수시장은 온전할 수 없다. 이러한 변칙에 속수무책인 국내 시장을 두고 이럴 거면 반덤핑 제재가 왜 필요한가 반문하는 전문가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
우리 업계가 섭섭한 것은 조선업계이다. 그들이 어려울 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다. 우리 업계도 종종 어려웠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처지가 바뀌고 나니 딴판이다. 자신들이 따뜻하니까 어려울 때 도와주었던 은혜도 잊는다. 품질 좋은 국내산을 놔두고 중국산 수입을 늘린 것은 마치 여우 털로 만든 옷을 입고 타인도 자신처럼 따뜻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의 의미와 같다.
어려움에 직면한 산업을 외면한다면 그 피해는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다. 만약 국내 철강업계가 후판 설비를 모두 폐쇄한다면 조선사는 중국산에 휘둘릴 것이 뻔하다. 그때는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