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인사이드] 석유화학 '삼중고'에 구조전환 시동…정부 ‘속도전’ 주문
국내 석유화학 산업, 삼중고 벼랑 끝…정부 직접 나서 핵심은 ‘NCC 감축’…난항 겪는 사업 재편, 어디로? 샤힌 프로젝트 등 쟁점 산적‥정부 2~3년 내 마무리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구조적 전환의 기로에 섰다. 글로벌 경기 침체, 공급 과잉, 강력한 탈탄소 정책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하면서 업계 전반의 압박은 한층 거세지고 있다. 그동안 기업 자율에 맡겨졌던 구조조정 논의는 속도가 더뎠지만, 최근 정부가 직접 개입해 속도전을 주문하면서 본격적인 재편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 글로벌 복합 위기…한국 석유화학 덮쳐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에 사업 구조조정 및 재편 계획 제출을 요구하는 가이드라인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달 발표한 연간 270만~370만 톤 규모 NCC(납사분해시설) 감축안의 후속 조치다.
이번 정부 조치는 기존에 제시된 구조조정의 큰 방향에서 각 기업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비전을 담아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직접 제출하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공급 과잉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울산 석유화학산업단지를 찾아 “기업 간 진행 중인 협의에 속도를 내 사업재편 계획을 빠르게 마련해달라”면서 “정부도 맞춤형 패키지 지원방안을 마련해 기업의 사업재편계획 이행을 위해 적극 뒷받침해 나가겠다”고 당부했다.
◇ 업계 내 교착…정부, 직접 개입
중국발 공급 과잉은 국내 기업 수익성을 급격히 악화시켰고, 탄소중립 정책은 친환경 고부가 제품으로의 전환을 압박해왔다. 그러나 업계 내 이해관계가 얽히며 구조조정은 지연돼왔다. 결국 정부가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직접 개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일각에선 10월 말~11월 초 기간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안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이번 구조조정의 중심에는 ‘나프타 분해 설비, 즉 NCC 감축 계획’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업계에서는 정유사를 중심으로 한 ‘수직적 통합’이 유력한 해법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GS칼텍스와 LG화학(여수), 또한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컬(대산) 사이의 통합 시나리오가 꾸준히 언급되며 관심을 모은다. 이러한 논의는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고, 중국과 중동에서 범용 제품의 공급이 늘어나면서 어려움에 빠진 화학업계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다만 기업 간 협상은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공급 과잉 상황에서 NCC를 떠안을 부담이 크고, 화학사들은 핵심 자산인 NCC를 제값에 매각하려는 이해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등 쟁점 수두룩
총 9조2,580억 원이 투입된 에쓰오일의 울산 샤힌 프로젝트는 내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번 NCC 감축안에 포함될지 여부를 두고 업계 의견이 갈린다.
일각에서는 감축 취지상 샤힌 프로젝트도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에쓰오일은 아직 완공되지 않은 사업장을 감축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향후 2~3년 내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속전속결로 체질 전환을 이루지 못하면 산업 전반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석유화학협회의 의뢰로 컨설팅을 진행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현 불황이 이어질 경우 3년 뒤 국내 석유화학 기업 절반만 생존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이 보고서가 정부의 ‘속도전’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침체, 공급 과잉, 여기에 중국의 자급률 확대까지 겹치면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며 “정부가 내건 2~3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실제로 얼마나 실효성 있는 구조조정이 이뤄질지 관심”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