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단장(斷腸)의 조지아공장이 남긴 교훈
그들이 돌아왔다. 지난 9.4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에서 미국 이민 당국에 의해 체포·구금되었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8일 만에 풀려나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저전압 작전(Operation Low Voltage)’이라 불리는 지난 9.4 사태는 미국 이민 당국이 총동원된 역사상 단일 현장에서 이루어진 가장 큰 규모의 불법 이민자 단속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려 63억 달러(8조 8,000억 원)를 투자해 건설 중인 공장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근로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요원들에게 끌려가야 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번 사태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어서 한마디로 말하긴 힘들지만, 법적인 이유는 ‘비자(VISA)’ 때문이다.
구금된 한국인 317명의 비자 현황을 살펴보니 ESTA(전자여행허가)가 170명, B-1(사업)이나 B-2(관광) 비자가 146명, EAD(취업허가)가 1명이었다.
미국 이민 당국은 한국 근로자들이 이러한 ESTA나 B-1 비자의 ‘목적’에 맞지 않는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민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B-1 비자 소지자는 어느 정도는 일정한 근로가 가능하기에 한국과 미국의 해석 차이가 있다.
물론 현지 공장에서 안심하고 일하려면 전문적 취입 비자 H-1B나 주재원 비자 L-1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런 비자 발급은 하늘의 별따기다. 기간도 수개월씩이나 걸리고 H-1B는 쿼터까지 있어 미국 비자 제도에는 맹점이 많았다.
국내 기업도 건설공사 일정을 맞추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ESTA나 B-1 비자로 출장을 가는 관행이 있었다. 결국 미국 비자제도의 구조적 문제와 한국 기업의 관행이 결합해 사달이 난 것이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는 지난 9.4 자신의 홈페이지에 단속 현장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과 영상은 국내 언론을 통해 방송되었는데, 단속 장면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장갑차와 헬기까지 동원되고 수백 명의 중무장한 요원들이 현장에 진입하는 장면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근로자들은 케이블 타이와 쇠사슬에 손발이 묶여 끌려갔다.
영화에서나 볼만한 장면이 어떻게 현실에서 가능한 걸까. 미국에서는 통상적으로 중범죄자거나 도주 위험이 극히 큰 경우 집행관의 재량(judgement)으로 쇠사슬의 사용이 법적으로 가능하다. 흔히 ‘belly chain’이나 ‘leg iron’이라 부르며, 허리에 체인을 두르고 손을 묶어 허리에 연결하거나, 발목에 족쇄를 채워 움직임을 제한한다.
일반적으로 단순한 이민법이나 노동법 위반 사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 이민 당국은 대규모 체포라는 이유로 가장 강력한 구속 장비를 적용한 것이다. 한국에서 체포는 ‘수갑’으로 충분하다. 어떤 경우엔 피의자의 수갑 찬 모습이 보이지 않게 수건으로 감싸기까지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 군사독재 시기를 겪은 한국인에게 쇠사슬은 역사적 맥락에서 굴욕의 이미지가 강하다. 체포 장면을 보며 6.25전쟁 당시 강제납북된 남편을 그리워하는 노래 ‘단장의 미아리 고개’의 “철삿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라는 가사가 떠올랐다. 쇠사슬에 묶인 채 어디론가 끌려가는 근로자들의 모습을 본 가족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노래 제목처럼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단장(斷腸)’의 고통과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이번 조지아 사태처럼 그동안 느슨하게 단속을 해오다가 갑자기 집행단속을 강화하는 현상을 법률적으로 ‘Selective enforcement(선택적 집행)’라 부른다. 한국기업으로선 미국 내 사업을 하면서 이러한 선택적 집행을 당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작은 징후들이 있었다. 지난 2020년 9월 SK이노베이션 조지아주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13명이 ESTA를 소지하고 일한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다. 그리고 올해에도 한국인 근로자들의 미국 입국이 거부되거나 ESTA가 취소되는 사례가 있었다. 중대한 사건에는 항상 사소한 사건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제 와 보니 이런 징후들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있다.
316명의 근로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최근 한국을 찾은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우리 외교부 차관을 만나 이번 구금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말을 백퍼센트 믿을 순 없다. 최근 외교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 말처럼 과거 동맹국에 좋은 협력을 해 오던 미국은 분명히 아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면, 이제 한국기업도 해외 규제준수(global compliance)에 눈을 떠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법 준수를 넘어 글로벌 컴플라이언스 관점에서 접근해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이제 미국에 가면 미국법을 따라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거액의 투자를 하고도 한국 근로자들이 불법 체류자(illegal alien) 취급을 받았어야 되겠는가?
해외 투자에는 해외 컴플라이언스에 대한 기본적인 투자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조지아 사태는 어떻게 보면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대미투자를 약속한 많은 한국 기업이 비슷한 ‘비자 리스크’를 안고 있어 앞으로 얼마든지 제2, 제3의 조지아 사태는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철저한 근본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앞으로 두 번 다시는 한국인 근로자가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돌아온 그들은 추석연휴까지 긴 유급휴가를 얻었다. 휴가가 끝나면 그들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그들의 복잡한 심경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