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경험없는 시대의 도래, 인간 사고의 멸종
당신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통계적으로 약 2%의 사람만이 계단을 이용한다. 편리함이 곧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우리의 몸과 사고를 바꾸기 때문이다. 미국인의 70%가 과체중이며 한국 남성의 비만 유병률도 해마다 증가 중이다. 이처럼 편리함은 육체적 나태뿐 아니라 정신적 퇴화도 가져온다.
오늘날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소비하는 데 익숙하다. 직접 부딪히고 실패하며 얻는 경험보다 요약된 정보, 정제된 콘텐츠, 자동화된 결과물을 선호한다. 책은 더 이상 ‘읽는 것’이 아니라 ‘요약을 요청하는 대상’이 되었고, 문장은 ‘생각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AI에게 부탁하는 일’로 바뀌었다. 그림 역시 스스로 손이 아닌 몇 개의 지시어(prompt)로 만든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본질적인 것을 앗아가고 있다. 인간의 사고, 감정, 상호작용, 기다림, 감각 등, ‘살아 있음’을 구성하는 직접 경험의 요소들이 디지털 대리 경험으로 대체하는 모순에 직면했다.
유발 하라리는 “AI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행위자로 기능하고 있다.”라고 경고한다. 우리가 사유하고 판단하고 창작하는 주체로서 권한을 점차 기계에 이양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 AI에 의해 복제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연 사고하는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문화비평가 크리스틴 로젠은 《경험의 멸종》에서 이러한 문제를 보다 명확히 짚었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경험으로부터 현실을 배우지 않는다. 대신 기술이 제공하는 가상의 체험이 우리의 현실을 대체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에게 “1년간 소셜 미디어를 포기할 것인가, 투표권을 포기할 것인가”라고 묻자, 64%가 투표권을 포기하겠다고 답했다. 기술의 경험을 삶보다 우선으로 놓았다. 더 충격적인 통계도 있다. 전 세계 16~22세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후각을 잃는 대신 스마트폰을 유지하겠다고 응답했다. 직접 보고 듣고 냄새 맡으며 세상을 느끼는 감각들조차 기술 편의성 앞에서는 우선순위가 밀린다.
젊은이들은 걷는 동안에 스마트폰을 보고, 영화관 대신 유튜브 요약본을 시청하며, 마주 보는 대화보다 메신저에 의존한다. 문제는 기술이 단순히 편리함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다림은 불편한 시간이 아닌 사유의 기회이며, 타인과의 대화는 감정 교류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창작과 표현은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활동이다. 이런 것들이 점차 기술에 의해 대체되면서 우리는 공공성과 창의성, 감정과 판단력, 공감 능력을 잃게 된다.
크리스틴 로젠은 말한다. “경험의 멸종은 피할 수 없는 미래가 아니라, 인간이 선택한 결과다.” 인간 사고의 멸종에 저항해야 한다. 기술은 인간을 도와주는 수단이어야지,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닌, 여전히 직접 경험하고 사고하고 교류할 수 있는 인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과감히 질문하자!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진짜인가?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온전한 것인가? 사고와 성찰을 다시금 되찾아야 한다. 느림과 기다림의 의미, 손으로 쓰고 그리는 창작의 기쁨, 얼굴을 마주 보며 나누는 대화의 깊이, 실제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것이 인간다움을 지키는 길이며,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