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FCPA의 귀환과 한국 기업의 대응
최근 미국 법무부(DOJ)는 해외부패방지법(FCPA)에 대한 새로운 조사 및 집행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지난 2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기업에 대한 FCPA 집행을 180일간 중단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내린 지 4개월 만이다. 정확하게 2025년 6월 9일(미국 현지시간) 기준으로 FCPA관련 기존 조사의 재개와 신규 조사 착수가 가능하게 되었다. FCPA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 내용은 기업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특징은 미국이 국익(國益) 중심으로 조사와 집행 범위를 재편했다는 점이다.
즉 미국과 미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집행 기준을 재설정한 것인데, 미국 기업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더욱 기업친화적(business-friendly)으로 대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미국 기업은 해외에서 뇌물을 뿌리다 걸려도 계속 봐 주고, 외국 기업은 미국 국익에 위협이 된다면 더 엄격하게 집행할 수 있다는 의지로 보인다. FCPA 집행에도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가 적용되는 셈이다.
안 그래도 관세전쟁으로 머리가 아픈 한국 기업이 미국 법인 FCPA까지 신경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 법은 세계 각국의 여러 부패방지법 중에서 역외적용이 가장 활발하다. 둘째 법 위반으로 걸리면 미국 법무부로부터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받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국내기업이 해외사업을 하면서 최근 FCPA가 적용된 사례가 있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11월 미국 법무부와 국내 A중공업은 해외 뇌물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7500만 달러(약 1,023억 원) 벌금에 합의한 적이 있다. A중공업은 벌금을 내는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받고, 기소유예 합의서(DPA)를 체결했다.
합의의 핵심 조건 중 하나는 A중공업이 효과적인 윤리·준법 프로그램을 구축 및 유지하고 3년간 독립적인 컴플라이언스 모니터링을 받아 그 결과를 미국 법무부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A중공업은 2023년 ISO가 발행한 ISO 37001 부패방지경영시스템과 ISO 37301 규범준수(준법)경영시스템에 대한 통합 인증을 취득하고, ISO 31000 리스크관리에 대한 검증까지 받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다.
이러한 노력은 DPA의 합의 내용을 이행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여겨진다. 이젠 본사 컴플라이언스팀의 사내변호사가 해외법인을 직접 찾아가 맞춤형 교육까지 한다고 하니, 그나마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친 대표적 사례다.
FCPA와 관련한 여러 집행 통계를 보면 지금까지 FCPA를 위반한 국가 중에 가장 많은 집행 조치를 기록한 나라는 중국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지난 2022년 ‘중앙기업 합규관리방법’을 반포하고 그해 10월부터 정부가 출자한 중앙기업(국유기업)은 사내에 수석 합규관(Chief Compliance Officer)을 선임하도록 했다.
합규(合規)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의 중국식 표현이다. 특히 광동성에서는 성(省) 내 모든 지방기업에 ISO 37301 Compliance Management System의 도입과 인증 취득을 독려했다. 그동안 미국의 FCPA 집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중국이 국유기업부터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컴플라이언스 관리 체계를 갖추어 가는 모습은 한국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스탠퍼드 로스쿨의 FCPA 통계를 보면 최근 10년(2016~2025) 동안 부적절한 뇌물이 제공되거나 지급된 국가(Location of improper payments) 리스트 중에 한국이 6건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는 한국이 결코 FCPA의 안전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며, FCPA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앞으로 트럼프 2기에도 FCPA는 한국 기업에 여전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FCPA 위반으로 인해 미국 정부의 계약 입찰에 제한을 받거나, 수출입 통제 등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에는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FCPA 집행 재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FCPA 위반을 방지하기 위한 지속적 노력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선제적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의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회사에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면 이번 FCPA 가이드라인의 핵심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고 기존의 시스템을 한층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A중공업과 중국 국유기업의 접근방식은 적극 참고할 만하다.
다행히 미국 법무부가 기업을 기소하거나 벌금을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기업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평가기준(ECCP)’의 주요 내용이 컴플라이언스 국제표준인 ISO 37301의 요구사항과 중복(overlap)되는 부분이 많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이 표준을 통해 미국 법무부의 ECCP 기준 충족이 가능하다.
앞으로 미국이 FCPA 집행에 ‘America First’를 적용한다면, 미국 기업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한국 기업은 ‘Compliance First’로 대응하는 수밖엔 없다. FCPA 집행에 막연히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