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PICK] 철스크랩 수출의 역설, 양대 전기로 앞마당서 수만 톤 해외로

2025-05-23     김종혁

철스크랩 수출은 제강사 ‘앞마당’에서 수만 톤 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소수 업체가 수출을 주도했지만, 이제는 고착화, 정기화되고 있다. 

금기시되던 선택은 이젠 생존의 논리로 되돌아왔다.

 

국내 철스크랩 시장이 위기 속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아가고 있다. 지난달 진해항에서 3만 톤 가까운 물량이 수출된 데 이어 이달에는 2만 5000톤 이상의 물량이 당진항에서 해외로 나갔다. 최근 또 다시 2~3만 톤 규모의 매집과 수출 선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대형모선(벌크)로 수출이 정기화되고 있다는 점, 특히 양대 전기로 제강사인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의 텃밭에서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산업 내 구조 변화를 보여준다.
 

국내 시장, 자급률 상승의 역설

국내 제강사들은 그간 국내 철스크랩 가격을 관리하기 위해 수입 철스크랩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왔다. 전체 시장의 약 80%를 자급하면서도, 나머지 20%는 일본·러시아 등에서 들여왔다. 국내 가격 급등 시점을 선제적으로 억제하는 완충재로 삼았던 것이다.

실제로 제강사들은 국내 대비 고가(高價)인 수입 철스크랩을 적극적으로 들여왔다. 수입 단가는 톤당 3만~5만 원 정도 높았지만,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국내 가격 급등과 물량 잠김 현상을 차단하고자 했다.

그러나 2023년 이후, 팬데믹 이후의 후속 충격과 건설경기 침체로 봉형강 수요가 급감했고, 제강사들은 전반적인 감산 기조에 들어갔다. 작년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제강사에 따라 50% 내외의 고강도 감산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철스크랩 자급률은 90%를 초과하며, 공급 과잉에 기반한 불황형 자급 구조가 굳어지는 양상이다.

 

눈치를 보던 시장, 수출로 몸을 튼다

철스크랩 업체들은 오랫동안 수출을 추진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었다. 국내 시장의 유통 구조상, 납품 대상인 제강사들과의 관계에서 수출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매출 기반을 위협받을 수 있는 민감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들이 수출을 주도하고 있지만, “눈치 수출”에 머물렀고, 지금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그런데 약 2년 전부터 건설경기 침체와 제강사 가동률 하락, 생산·판매 감소가 이어지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국내 철스크랩 수요가 반토막 난 가운데, 일부 중간 무역상이 해외 바이어와의 채널을 확보하며 소규모 수출을 꾸준히 이어왔다.

2025년 들어서는 전환점이 뚜렷해졌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라는 양대 전기로 제강사의 앞마당인 당진항에서, 벌크 모선 수출이 2~3개월에 한 번 꼴로 정기 추진되고 있다. 과거 수출 시도가 조심스러운 ‘예외’였다면, 지금은 상시적이고 구조화된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와 세아베스틸 등 고로와 특수강 메이커들의 경우 비교적 높은 매입 가격을 유지하면서 국내와 함께 해외 조달을 보다 강화하고 있다. 전기로 제강업계와 큰 차이로 드러나고 특징이다. 

 

수출이 필요한 이유, 또 하나의 '완충 전략'

철스크랩 업계 일각에서는 수출을 '판매처 다변화' 수준을 넘어, 국내 시장의 급변을 막아주는 일종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과거 제강사들이 수입으로 가격 상승을 억제했던 것처럼, 이제는 철스크랩 업체들이 수출을 통해 국내 수급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논리다.

수출 비중이 아직은 2~3% 수준이다. 이를 10% 내외까지 끌어올릴 경우, 국내 시장의 급등락을 완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해외 시장은 고정 거래선이 형성되면 중장기 매출 안정성까지 확보할 수 있는 ‘니치 마켓’으로 진화할 수 있다. 실제 인도, 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을 중심으로 수요가 재편되는 움직임도 관측된다.

 

여전히 남은 한계… 하지만 기회는 보인다

수출에는 넘어야 할 장벽이 있다. 물류비, 품질 조건, 국제 시황, 제강사와의 관계 등 현실적 제약이 여전하다. 무엇보다 개별 업체가 수출을 단독으로 추진하는 데에는 비용과 리스크 부담이 상당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불황 국면에서는 내수 의존도만으로는 생존이 어렵다는 점을 업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업체들은 차별화된 제품군, 해외 스펙 대응, 물류 공동 대응 방식 등을 통해 선별적 수출 루트를 구축해가고 있다.

'역설적 해법'은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철스크랩 시장은 이제 수출이라는 '역설'을 생존 전략으로 다시 꺼내 들고 있다. 이는 기존 공급 질서를 뒤흔들려는 도전(?)으로 볼 이유는 약하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제강사와 철스크랩업계 모두에게 숨통을 틔우는 상생 카드가 될 수도 있다.

불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수요를 만들고, 수입의 논리를 수출로 전환하며 균형을 도모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철스크랩 산업의 또 다른 진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초대형 철스크랩 산업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철스크랩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화에 적극 나서는 한편 전기로 사업까지 추진하고, 또 철강사와의 대등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그만한 배경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