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철의 철강 이야기] ‘다운사이징 위기’에 직면한 한국 철강산업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급속 후퇴하고 있다. 영국의 리서치 회사 캐피털이코노믹스(CE)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0%에서 0.9%로 하향 조정했다. 다른 국제 전문 예측 기관들도 공통적으로 계엄 이후 탄핵 정국으로 이어진 ‘정치혼란’과 미국의 관세 정책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하락시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경제가 대외 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관세 장벽과 확산하는 보호무역주의로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에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에서다.
이렇게 국내외적으로 복합적인 경제 위기에 직면한 국내 철강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 이미 국내 철강 제품 출하량이 주요 품목의 경우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하고 있고, 금년 내수 규모가 5천만 톤을 밑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비관적인 상황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실적을 견인했던 철강 제품 수출마저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최대 수출 대상국을 차지한 인도가 한국산 철강 제품 수입에 제동을 건 상태이고, 상대적으로 고가 시장인 북미, 유럽 시장 역시 쿼터제 폐지, 관세 신설 등 강수를 두고 있어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국내 철강업계는 임원 급여 삭감, 희망퇴직, 가동률 조정을 통한 감산 추진 등 비상 경영을 통해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제철은 4월부터 인천공장의 생산을 전면 중단하면서 수급을 조절할 계획이며, 전사 차원에서 희망퇴직 신청도 받는 등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 수급 조절 등 대응력을 높이고 있는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철근 시황 악화가 단기간 내에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4월 인천 철근공장을 셧다운하기로 결정했다”며 “공급과잉 해소와 시장가격 정상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때 현재 국내 철강업계가 개별적으로 추진 중인 비상 경영체제만으로는 우리 철강산업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미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인구 감소, 산업 구조의 변화 및 임금상승 등의 영향으로 점차 약화되는 추세에 있어 결국 향후 철강 내수의 급속한 감소도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철강산업도 이미 ‘다운사이징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발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으로 판단된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이 주도하던 세계 철강산업의 주도권은 1900년대 초중반 미국을 거쳐서 1960년대 일본, 1980년대 한국,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후발 국가에 주도권을 내준 나라의 철강업계는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생산설비를 통폐합하고 인력을 재배치하는 등 뼈를 깎는 ‘다운사이징’ 활동을 통한 생존 방안 모색에 주력해 왔다. 각국의 사례로 볼 때 철강산업의 ‘다운사이징’은 개별 철강회사 차원을 넘어서서 비교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M&A 추진과 노조와의 협의 강화 및 정부의 산업정책/지원을 통한 개입 등이 동반되었다.
상당 기간 세계 철강산업을 주도하던 일본 철강업계도 대규모의 생산설비 폐쇄와 고로 5사 체제에서 3사 체제로 전환하는 등 강도 높은 ‘다운사이징’ 과정을 거쳐 왔으며,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철강산업 구조조정을 진행해 오고 있다. 현재 세계 철강업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중국 철강산업도 15차 5개년(2026~2030) 계획 기간 중에 고품질 제품, 인공지능(AI), 전문화, 대형화 지향 및 해외 철광석 광산 개발과 미래 핵심 원료인 철스크랩 조달 체계 구축 등을 추진하여 글로벌시장에서 영향력을 지속 발휘하기 위해서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양적인 성장을 추구해 오던 국내 철강업계도 이제는 질적인 성장으로 목표를 전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과거 및 현재에도 진행 중에 있는 세계 철강업계의 ‘다운사이징’ 성공 및 실패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신속하고 강도 높은 철강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함으로써 지속성장할 수 있는 모멘텀을 다시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