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트럼프 2기 행정부와 FCPA의 미래
지난 2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하나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 E.O)을 내렸다. 미국기업에 대한 해외부패방지법(FCPA)의 집행을 일시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쉽게 말해 미국기업에 대해 FCPA 관련 수사나 기소를 잠정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FCPA 집행이 지나치게 과도하고 예측 가능성이 작아 미국 경제와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180일간 일시 중단이긴 하지만 미국 의회가 만든 법을 행정부가 집행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상 법을 폐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일부 언론에서는 FCPA가 끝났다며 이제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뇌물을 뿌려도 된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그동안 기업들이 노력해 온 ‘반부패 컴플라이언스 경영’이 퇴색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FCPA는 1977년 제정 이후 47년간 유지됐다. 제정 이후 2020년까지 세계 여러 기업으로부터 200억 달러(약 29조 원)가 넘는 벌금을 거둬들였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상당한 재정적 수입이 되었던 이 법을 갑자기 집행을 중단하겠다니. 이번 조치의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6개월(180일) 뒤 미국 법무부(DOJ)가 내놓을 새로운 집행 가이드라인을 기다려 봐야겠지만, 현재로선 예측이 어렵다.
트럼프의 FCPA에 대한 감정은 원래 좋지 않았다.
그는 처음 대통령이 되기 전인 2012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 법을 ‘끔찍한 법’이라고 했다. 1기 행정부 출범 당시에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이 법을 폐기하라고 지시했다. 결과적으로 이 법은 폐기되지 않았고, 트럼프 1기 행정부(2017.1.20~2021.1.20) 동안 미국 FCPA 역사상 기록적인 벌금을 거둬들였다. 이전 오바마 행정부보다 신규 조사 건수는 줄었지만, 벌금 액수는 더 늘어났다. 한 미국 FCPA 전문가는 트럼프의 임기 마지막인 2020년은 FCPA에 대한 ‘미친 한해’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고액 벌금 10위에 랭크된 기업들을 살펴보면 1위인 골드만삭스를 제외하면 죄다 외국 기업들이다. 이번 2.10 행정조치가 과도한 FCPA 집행에 시달린 미국기업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동안 미국 정부의 FCPA 집행은 외국 기업에 집중되어 있었다.
FCPA는 1970년대 중반에 터진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록히드 뇌물 사건(Lockheed bribery scandals)과 관련이 있다.
이 사건은 록히드가 항공기를 팔기 위해 세계 각국의 정계와 왕실의 최고 실력자들에게 뇌물을 뿌린 세계적인 부패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증권위원회가 조사한 결과 무려 400여 개 미국 기업이 3억 달러(약 4,384억 원) 이상의 뇌물을 외국 정부 관계자에게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의회는 이러한 잘못된 뇌물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FCPA를 제정해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 제공을 금지하고, 그 제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회계규정을 강화했다. FCPA의 제정으로 미국인과 미국 기업은 외국 정부에 뇌물을 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FCPA 제정 이후 미국 기업들의 불만이 많아지자, 미국은 자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뇌물을 주지 못해 다른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것을 우려해 FCPA와 유사한 세계적 차원의 반부패법 제정을 추진했다. 이러한 미국의 오랜 노력의 결과로 체결된 것이 바로 1997년 OECD 뇌물방지협약이다. 이 협약은 세계 최초의 구속력 있는 국제 반부패 협약이라는 의미가 있다. 한국도 OECD 회원국으로 이 협약의 국내 이행을 위해 1998년 ‘국제뇌물방지법’을 제정했다. OECD 회원국인 영국은 2010년 뇌물방지법(Bribery Act)을, 또 다른 회원국인 프랑스는 2016년 샤팽2법(Sapin-2 Law)을 제정했다. 결국 미국 FCPA가 OECD 뇌물방지협약과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의 반부패법 제정에 큰 영향을 끼친 셈이다.
앞으로 6개월 뒤인 8월에 미국 법무부가 어떤 가이드라인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당분간 미국기업이 해외 사업을 하면서 뇌물을 제공해도 봐줄 테니 열심히 사업 수주만 따오라는 미국 정부의 지나친 배려(?)가 나중에 미국 기업에 독(毒)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FCPA를 앞세운 미국의 강탈을 감내해야 했던 영국, 프랑스, 브라질, 중국 같은 국가들이 이미 FCPA에 상응하는 법을 제정하거나 기존의 법을 개정해 강력한 반부패 법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당한 만큼 갚는다’라는 말처럼 이들 국가가 자신의 법을 통해 미국 기업에 반부패의 칼날을 들이댈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번 2.10 행정명령은 일시적 법 집행 중지에 대한 조치일뿐, 법의 완전한 폐기는 아니다.
지난 1기 때 말과 행동이 달랐던 점을 보면 하루마다 달라지는 트럼프의 말이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부패한 기업과 이를 묵인한 국가가 흥(興)한 적은 절대 없었다. 이는 지난 역사가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 이번 트럼프가 던진 FCPA 집행에 대한 할루시네이션(환각)에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법의 공백인지 함정인지는 두고 보면 알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예측이 안 되는 인물과 법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