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보여 주기식’ 아닌,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

2024-12-12     정하영
김진혁

우리 주변에는 사랑에 관한 콘텐츠들이 범람할 정도로 넘쳐난다. TV와 OTT에서는 온통 사랑 이야기가 도배한다. 많은 노래와 글 속에도 ‘사랑’이라는 말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2030 청년세대의 3분의 2는 사랑하고 있지 않다. 이는 결혼에 대한 선호도와 출산에 관한 의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랑의 필요성에 의문부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한 사람과 다른 모든 사람들간 차이의 심각한 과장으로서 사랑의 이중성을 목격하게 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것이다.

사랑의 본질이 아닌 겉으로 드러난 조건, 결혼의 신비함에만 끌려 미친 듯이 사랑하면 금방 식는다. 한국의 이혼율이 3명 중 1쌍이라고 한다. 이혼 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랑에 대한 오해가 주된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누군가 “사랑은 화려한 오해요, 결혼은 참혹한 이해”라 한다. 결혼은 눈에 콩깍지가 씔 때 한다. 결혼을 이상형의 배우자와 만남이고 사랑의 경험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특히 결혼해서 덕 보겠다는 마음가짐은 최악이다. 상대가 절대로 그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가 없다.

스캇 펙 박사의「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이 아니다. 한 쌍의 연인이 사랑에서 빠져나올 때 그들은 그때야 비로소 참사랑을 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결국 결혼생활은 어떤 배우자를 만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배우자를 만났건,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결혼의 성공 여부는 ‘맞는 사람’을 발견하는 데 있지 않고, 자기가 결혼한 사람에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최근 연애도 위험해졌다. 사랑하다 헤어지는 일에 목숨을 건, 사건사고 소식이 뉴스에 나온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조건 없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라는 자비의 실천이 중요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그와 동일시 하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사랑으로 행해진 일은 언제나 선악을 초월한다.” _니체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에서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다윈은 진화론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개나 공작과 다르지 않은 동물이며,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한 수단이자 진화의 산물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쉽게 행복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행복의 정체를 몰라서다. 행복은 높은 연봉이나 근사한 대학 간판, 넓은 집 같은 외적인 요소들로 쉽게 달성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면 돈과 새집은 곧 공허해지며 새로운 자극을 원한다.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복을 반복해서 추구하게 하기 위해, 우리 뇌는 자극이나 변화에 금방 ‘적응’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커다란 기쁨 한 번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더 행복하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어 생각을 바꾸는 것이 최선이다. 독일의 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노벨문학상 받은 장편소설 『유리알 유희』에 이런 말이 있다. “신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 절망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내부에 새로운 생명을 각성시키기 위해 신은 우리에게 절망을 보내는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미래를 알 수 없다. 꿈을 버리지 말고 소명과 자긍심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기대하자. 누가 인정하든 인정해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서 갖다 주는 것이 아니다. 내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행복은 조건이 아닌 노력과 연습의 결과이다. 지금 이 순간 행복을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