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인생 최고의 행복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2024-11-06     김진혁
김진혁

“인생의 최고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빅토르 위고

누군가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갑자기 웬 뜬금없는 질문이냐고 할 것이다. 정작 ‘행복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행복한 사람은 타인이 설정해 놓은 행복의 조건에 관계없이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한다. 행복(幸福, happiness)은 희망을 품고 좋은 감정의 만족이거나 즐거운 상태를 의미한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 목표를 행복에 두었다. 서양의 가치관도 행복 그 자체를 추구하며 물질적 행복 및 명예 등은 타율성을 띠고 있기에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고 보았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행복은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해내야만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행복이란 권력이 성장하고 있다는 감정이면서 저항이 극복되었다는 감정이다.” 19세기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행복과 쾌락(즐거움)을 거의 동의어로 사용한다. 임마누엘 칸트는 행복을 윤리적 측면에서 바라보면서 “이성적이지만 유한한 존재자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행복은 존재자의 욕구 능력을 불가피하게 규정하는 근거다.”라고 주장한다.

반면 유교는 인간의 오복을 수(壽), 부(富), 강령(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으로 규정하고, 행복 추구보다는 자신을 갈고닦는 수신으로 규정한다. 고대 인도에서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네 가지로 kama(욕망), arta(재산), dharma(의무), moksa(해탈)을 꼽았다. 불교는‘인생은 고해’로 규정하고 자비와 평정심으로 극복해야 한다. 고난 없는 영광이 없다.

아일랜드 시인,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인생은 두 가지 비극으로 구분한다. 하나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것을 얻는 것이다. 곧 행복과 불행을 나타내는 말이다.

긍정심리학의 대가 탈벤 샤하르 교수의 행복 조건은 첫째, 긍정적이어야 한다. “왜 이것은 안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것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걸 생각한다. 둘째, 자신의 행복선을 끌어올린다. 행복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닌 자신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두려움은 그 자체일 뿐이다. 셋째, 먼 미래에 이룰 목표보다도 현재의 과정을 중요시하고 미래를 위한 현재 삶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넷째, 행복은 마음 상태에 달려있다. 어떤 사람은 많은 것을 소유해야 만족을 느끼며, 어떤 사람은 관계 속에서도 느낀다. 감정이 빈곤한 사람은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 욕망의 끝이 없어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만족하지 못한다. 다섯째, 행복은 지금(now)과 여기(hear)다. 때론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에 몰입되어서는 곤란하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자 미래의 복사판이다. 순간순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겁게 살자.

행복 연구의 권위자들은 행복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유전을 든다. 돈, 건강, 종교, 학력, 지능, 성별, 나이 등 환경적 변수들은 모두 합쳐도 개인 간의 행복의 차이를 15%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행복의 반은 유전적이며 나머지 50%는 사회적 관계의 빈도와 만족도, 즉 타인과의 인간관계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스스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명이나 목적을 위하여 즐기는 일이다.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과대평가하는 데 있다. 인생을 즐기는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이 행복하다. 행복은 멀리 있기보다는 환한 웃음, 작은 친절, 감사의 기도 가운데 꽃이 핀다.

본인의 삶을 성찰하고 베품의 덕을 베풀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높은 위치에 오를수록 삶의 형태는 노예의 모습으로 전락해 가기 쉽다. 소위 ‘성공 중독’에서 벗어나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중요성을 부여해야 한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

“진정한 기쁨은 편안함이나 부, 혹은 인간에 대한 찬양으로부터가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하는데서 나온다.”- 윌프레드 그렌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