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MZ세대만 상처받는가? 희망의 불씨를 지펴요!

2024-10-17     김진혁
김진혁

당신은 외로운가요? 저도 외롭다. 본래 삶은 외로운 법, 살다 보면 다 살아진다.

옛날 못살았던 시대의 ‘세대차’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기억의 배반인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그토록 광활해 보였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어른이 된 다음 보니 너무 작아 보였다. 1953년 1인당 국민소득 66달러의 아날로그 시대에서 세계 경제 규모 10위, 30-50 클럽에 진입한 우리 모습은 그야말로 ‘신세계’다.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며, 사회 전반과 직장 내 세대 갈등도 역력해졌다. 기존 세대는 MZ세대의 쉬운 퇴사와 극도의 이기적 사고를 이해하기 어렵다. 약 10여 년 전 한국의 청년세대를 ‘N포세대’라는 자조 섞인 이름으로 불렀었다. 그 특징은 삼포 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로 한·일·중 모두 유사한 세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이고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MZ세대는 밀레니얼세대(1980 초반~1990년 초반)와 Z세대(1990년 중후반~2000년 초반)를 통틀어 지칭한다. 이들의 특징은 출산율이 감소하는 시기에 태어났으며 최초의 글로벌 세대이자 인터넷 시대에 성장한 세대이다. SNS와 인터넷, 모바일 장치 및 소셜 미디어의 사용에 친숙하다. 가상세계에 익숙하며 연예인, 돈, 레저 등이 자신의 목표다. 공감과 성찰이 다소 부족하지만 일에 대한 성과는 높고 가치관은 워라밸 추구다. 자기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미래에 대비하기보다는 SNS 인플루언서에 영향을 받는다. 배송문화와 구독경제에 익숙하다. 구독경제는 일시불로 제품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매달 일정한 사용료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개념이다. 재테크도 주식, 암호화폐 아트테크 등을 선호한다.

문제는 지금 젊은 세대가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가 된다는 예측이다. 기존 세대에는 높은 성장률과 좋은 일자리, 집 장만하기가 쉬웠지만, 지금 세대는 혼자만의 노력만으로는 뭔가를 이루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일본 청년들을 지칭할 때 사토리 세대라고 한다. 사토리란 ‘깨닫다’라는 뜻의 사토루에서 파생된 말로, 해탈의 의미이다. 이들은 1987년~2004년생 사이에 태어났고 2010년대에 주로 20~30대를 보낸 일본의 청년세대다. 이들은 연애·결혼·출산은 물론 돈과 명예·출세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득도한 것처럼 최소한의 욕망만으로 살아간다. 이들의 바로 윗세대인 ‘빙하기 세대(잃어버린 세대)’가 노력에 비해 낮은 보상을 받는 것을 보았기에 시간을 들여 명문대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고 적극적이지 않는다. 오히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책임이 덜한 비정규직을 선호하기도 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리스크 때문에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으며 내 집 마련, 해외여행, 자동차 등 소비를 포기하고 최소한의 경제생활로 살아간다. 이들의 극단적인 소비 거부와 책임 기피 현상으로 일본의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부정적이다.

중국에는 탕핑족이 있다. 탕핑은 ‘드러눕는다’라는 뜻으로, 중국의 20~30대 청년들이 중국 공산당을 향한 저항을 포기하고, 희망 없는 삶에 자포자기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중국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며 고속 압축 성장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부의 쏠림과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부는 공산당과 관련자들에게 집중되었다. 정치적 민주화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산당에 충성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노예로 전락해 버렸다. 결국 중국의 젊은이들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적극적인 저항이 봉쇄된 상황에서 조직을 만들지 않고, 사상 탄압에도 걸리지 않는 저항의 방법으로 탕핑을 선택했다. ‘불복종운동’인 탕핑은, 법적으로 처벌할 명분이나 기준도 없다.

이 밖에도 유럽권에서는 1,000유로 세대, 이케아 세대라는 단어도 있다. 이케아의 제품은 단기간 사용하고 버리는 가성비 제품인데, 유럽의 청년들도 인턴이나 비정규직으로 단기간 채용하는 것을 빗댄다.

70세가 되었지만 일에서 못 벗어나는 지인이 있다. 그 이유인즉 첫째 아들은 좋은 직장 다니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때려치우고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그만 망했다. 그 트라우마로 인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불평 속에서 헤맨다. 둘째 아들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10년 넘게 하고 있다. 노부부의 비극은 언제까지 자녀들을 봉양해야 할지 막막하다. 기성세대는 요즘의 청년세대가 나약하고 무책임하다고 질책하지만, 청년층은 기후 문제나 자기들의 성장 과실을 미리 빼앗아버렸다고 불평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 나는 홀로 소멸한다.” 서로를 비난하기보다는 시대의 그늘을 거둘 수 있게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 역경이 경력이 되고, 인연이 연인으로, ‘내 힘들다’에서 ‘다들 힘내’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대전환 속에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공감과 위로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