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칼럼] '탄소중립시대' 철스크랩 시장 지각 변동과 역할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에 관해 관심이 커지면서 철강업계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전 세계 철강업계의 대응 전략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하나는 탄소 대신 수소를 이용해서 쇳물을 생산한다는 기술적인 방향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전 세계 주요 철강사들이 투자에 들어간 상태다.
다른 하나는 스크랩 사용 비중을 늘리는 방향이다. 수소환원 제철법이 기술개발부터 상용화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점(탄소환원법은 발열반응이고, 수소환원법은 흡열반응으로 철을 얻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에서 단기적으로 스크랩을 활용한 탄소배출 절감 방안이 현실적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철강사가 전기로 투자를 늘리거나 고로에서 스크랩 사용 비중을 늘리는 방안을 선택하고 있다.
문제는 갑자기 늘어난 스크랩 수요로 인해 시장에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우선 국내만 하더라도 포스코 250만톤 전기로 신설 2기, 현대 A열연 재가동, 한국특수형강 가동 등을 합치면 700만톤이 넘는 전기로가 새롭게 가동된다. 여기에다 고로에서 사용되는 스크랩 투입량을 현재 13~18%에서 20%로 늘린다고 가정했을 때 4,000만톤에 육박한다. 중국은 정부가 나서 전기로 증설 및 고로에서 스크랩 투입비중을 늘릴 것을 장려하고 있다. 중국의 철 스크랩 수요는 2022년 2억3,000만톤에서 2025년 4억1,700만톤까지 급증할 전망이다.(페로타임즈 95호 특집 참조) 급격한 스크랩 수요를 해결하는 방법은 수입이다. 향후 국제 스크랩 수급과 가격은 철강 제품과 마찬가지로 중국으로 인해 널뛰기를 할 것이다. 수요가 입장에서는 재앙같은 얘기다
스크랩이 블루오션 시장이 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 말이 관련 업체 모두가 돈을 번다는 의미는 아니다. 스크랩이 산업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제도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수요가(제강사 및 고로사)와 공급자(납품상, 중상, 소상)가 모두 이익을 봐야 하는데, 현재 구조는 그렇지 못하다. 납품 구조상 물량 늘어날수록 납품상은 돈을 벌기보다 그렇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 가장 큰 이유는 서로 신뢰가 없다는 점이다. 메이커 임원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기 일쑤다, 또 가격이 오를 때는 물량을 맞춰야 하고, 하락할 때는 제강사가 물량을 줄이다 보니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고 평가손이나 금융 부담은 고스란히 납품상(구좌업체)의 몫이다.
결제구조는 더 문제다. 물량이 늘어나면 금융비용이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구매는 현금 지급을 하고 있는 반면 납품 대금은 1개월 어음 받고 있다. 가격이 오르는 시점에는 물량을 맞추기 위해 금융권에서 돈을 더 빌리던가, 어음 할인을 해야 한다. 어음 할인이 많아지면 장부상으로는 흑자를 내면서 실질적으로는 적자를 낼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금리까지 오르면서 물량이 아무리 늘어도 수익은 100% 마이너스라는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향후 스크랩 시장은 ▲ 전기로 엔지니어 부족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 ▲대형 업체 및 종합상사의 스크랩 시장 진출 ▲중국산 자본의 한국 시장 등장(10원 더 줄게) 가능성 ▲스크랩상품의 펀드화 ▲가공 및 검수(AI) 진일보 발전 ▲스크랩 수출 국가의 스크랩 무기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결국 자금력과 네트워크, 정보력을 가진 업체만 살아남을 것이다. 앞으로 스크랩은 금융상품화되고 브랜드화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위기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금 같은 구조로는 스크랩산업이 제자리를 잡기 어렵다. 틈새가 클수록 해외 자본(특히 중국자본)이 들어올 여지만 남긴다.
이러한 시대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스크랩 업계만 노력한다고 해결할 성질이 아니다. 우선 납품상(스크랩업계)이 해야 할 일은 감(感)이 아닌 경영(經營)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재 양성과 정보를 모아 분석하고, 스마트화를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 향후 스크랩은 자금력 싸움이 되는 만큼 규모의 경제 실현도 대비해야 한다.
전기로 제강사나 고로사가 해야 할 일은 납품상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아무리 Captive Market을 구축하더라도 역할이 다르다. 충성심은 신뢰에서 나온다.
정부가 할 일은 당장 스크랩을 폐기물이 아닌 재활용 산업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만드는 것이다. 또 이왕이면 산업 단지 조성시 10% 정도는 폐기물업체에 할당하고, 설비투자 지원 등을 통해 규모의 경제 실현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철을 대체할 확실한 소재가 없는 한 스크랩은 귀중한 도시 자원이다. 또 스크랩의 안정적 공급과 납품 시스템 구축이 장기적으로 철강 제품의 품질 향상은 물론 국민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