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은의 의학이야기] 코로나19 대재앙…‘현대문명의 역습’ 이해해야
[김해은의 의학이야기] 코로나19 대재앙…‘현대문명의 역습’ 이해해야
  • 김해은
  • 승인 2021.01.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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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 최다 생명체 세균·바이러스…생존번식 위해 숙주 필요
미생물·숙주(인류) 간 전쟁은 종의 사활 걸려, 앞으로도 ‘지속’
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 (도봉구의사회 부회장)
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 (도봉구의사회 부회장)

베네치아의 관광기념품 가게에 가보면 특이한 가면이 있다. 새의 부리처럼 생긴 입모양을 한 가면이다. 가면무도회에서 눈길을 끌기위해 고안한 물건 같지만 처음 용도는 전염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의 안면을 보호하기 위한 마스크였다. 14세기 중반에 흑해연안에서 베네치아로 유입된 흑사병은 유럽 전역으로 번져가 결국 유럽 인구의 1/3을 희생시킨 다음에야 잠잠해졌다. 치료를 도운 의사와 장례를 치른 성직자들도 전염병 앞에 무사하지 못했다. 현미경이 없던 그 시절에는 병원체를 찾아낼 방법을 몰랐고 환자와 접촉하면 병이 옮는다는 경험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매개체가 있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전염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흑사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의상을 갖추었다. 린넨에 밀랍을 입히거나 가죽을 써서 외부와 차단된 밀폐된 옷과 장갑을 착용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스크이다. 밀폐를 위해 유리렌즈를 쓰고 식초에 적신 옷감, 향신료, 약초를 섞어 부리를 가득채운 필터를 장착한 마스크를 착용했다. 호흡할 때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이었다. 마스크는 호흡의 필터 역할과 긴 부리만큼의 환자와의 거리두기를 고려한 장치였다. 당시엔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지만 육감으로 호흡기를 보호하였다. 그리고 환자를 손대지 않고 진찰할 수 있도록 막대기를 들고 다녔다. 환자의 옷을 들춰보는 용도로 사용하였으며 치료하는 의사를 어느 정도 보호하였다.

14세기 흑사병 창궐시 의사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착용했던 마스크
14세기 흑사병 창궐시 의사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착용했던 마스크와 복장

보이지 않는 적을 대항하고 무찌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지구상에 가장 많은 종류의 생명체가 세균과 바이러스이다. 이들이 더 고등한 생명체로 진화하지 않고 원시 생명체의 형태로 살기로 작정한 것은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특유한 스텔스 기능이 있어 생존과 자손의 번영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고등한 생명체로 진화한 동식물의 체내로 침투하여 영양분을 공급받아 살기만하면 그만이었다.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고 싶으면 분비물이나 배설물에 실려 숙주를 옮겨가면 그만이다. 굳이 다리와 날개를 달 필요가 없었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되는 세포들 안으로 들어와야 활동한다. 바이러스가 숙주세포가 필요하다하여 모든 세포에 침입하지 못한다. 대게 숙주의 특정한 세포에만 침입이 가능한데 그것은 바이러스의 표면에 일종의 단백질 열쇠가 숙주의 세포에 있는 자물쇠 수용체와 맞을 때 문을 열고 들어가 감염시킬 수 있다. 바이러스가 통과할 수 있는 세포가 다 정해져 있다. 그래서 다른 동물은 멀쩡한데 인간의 폐포를 통과하여 폐렴을 유발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있다. 숙주의 세포 안에서 증식한 바이러스가 세포를 파괴하고 세포막을 뚫고 밖으로 탈출하게 하는 열쇠도 있다. 바이러스의 열쇠 역할을 하는 두 유전자는 감염과 전파를 담당하는 전염의 핵심 요소이다.

숙주의 생명을 위협하는 미생물은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죽기 때문에 그 개체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숙주의 생명이 위태롭지 않을 만큼 아프게 만들고 적당한 개체를 유지하는 미생물이 생존에 더 유리하지만 숙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숙주들이 진화하여 미생물에 대한 면역력을 획득하는 것을 미생물들이 대책 없이 보고 있지 않는다. 그들은 전파 경로를 다양화시켜서 숙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흔적 없이 직접 숙주의 체내로 침투하는 방법을 찾는다. 말라리아는 모기를 매체로 모기의 타액을 통해 다른 숙주로 갈아탄다. 인플루엔자, 코로나 바이러스, 백일해 등은 피해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도록 유도하여 숙주들을 향해 구름처럼 뿜어져 나간다. 콜레라는 심한 설사를 유도하여 물속으로 숨어들어 새로운 피해자를 찾는다. 한국출혈열 바이러스는 생쥐의 오줌을 통해 퍼진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개를 발광하게 만들어 사람을 물어 개의 침을 통해 새로운 숙주를 찾는다. 주혈흡충이나 사상충은 배설물에 실려 흙으로 숨어들었다 노출된 피부를 통해 숙주로 옮겨간다. 설사, 기침, 재채기는 질병의 증상이지만 미생물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영리한 전략이다. 때문에 우리를 병들게 만드는 것은 미생물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고 종종 숙주가 죽는 것은 뜻하지 않는 부작용일 뿐이다. 미생물과 숙주 두 생명체간의 전쟁은 이들 종의 사활이 달려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지구상에서 미생물을 모두 몰아내면 사람들이 더욱 건강해지고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스텔스 기능을 갖고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해서 이들을 지구상에서 몰아내면 맛있는 김치나 치즈 같은 발효식품을 즐길 수 없으며 술도 더 이상 마실 수 없을 것이다. 식물과 동물들이 죽은 후 사체가 분해가 되지 않아 온 세상은 사체들로 덥힐 것이다. 인류에게 치명적이라 해서 그들이 지구상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아니다. 그들도 지구 자연계의 선택을 받은 생명체이다. 코로나19는 곧 인류에게 무릎을 꿇고 소아마비나 천연두처럼 인류가 정복한 또 한 종의 미생물로 기록되겠지만 전 지구적 대재앙이 인류에게 시사하는 바를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고도의 도시화와 밀집된 사회가 인류를 더욱 고립시키는 현대문명의 역습을 되돌아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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