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칼럼] 희망이란 이름의 아침 식사
[송년칼럼] 희망이란 이름의 아침 식사
  • 김종대
  • 승인 2020.12.31 0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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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마지막 날 새벽, 14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짙은 밤의 도시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한파주의보 탓인지 바람이 매서워 실눈으로 하늘을 보았다. 밤하늘에는 군데군데 흰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별 볼일 없는 하늘이었다. 

매년 이때쯤이면, ‘올드 랭 싸인’ 음악이 울려 퍼지고 흥청거리는 연말 분위기에 젖은 군상들이 삼삼오오 밤거리를 채우고 있었지만 오늘은 아무도 밤거리를 헤매고 있지 않았다.    

코로나 19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는 TV아나운서 멘트가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연말을 이렇게 맥없이 만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저만치 떨어진 길 건너 고층 아파트에는 나처럼 잠 못 드는 이들이 불을 켜 놓고 있었다. 별이 없는 대신에 불빛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난해, 그 지난해에도 지금과 같이 연말은 쓸쓸했다. 올해는 5인 이상 모이지 말라는 밀착 금지령 때문에 집콕에 열중(?)하려니 정말이지 진저리가 난다.  

경자년은 가정 경제에서부터 정치, 경제, 문화 등 어느 것 하나 어렵지 않은 곳이 없었다. 철강 산업도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

안에서는 내수 침체가, 밖에서는 무역장벽에 가로 막혀 국내 철강 기업들은 양보다는 이익 창출에 매달렸다. 

생존이 화두였던 시기에 주요 철강 기업들의 경영성적이 예상보다 좋았던 일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반면에 두 서너 철강기업은 주인을 바꾸었고, 몇몇 중소 철강사와 철 스크랩 종사자들은 한 숨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렇지만 대형 철강사들의 갑질에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우리가 감내할 몫이다”는 을의 절망적인 목소리는 언론의 펜을 곧추 세우게 한다.     

“이제 남은 게 없습니다. 정말 손바닥을 펴봐야 손금밖에 보이지 않아요”

코로나 19 여파로 업을 접어야 한다던 후배는 얼마 전,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처절하게 떨고 있었다.

건네는 술잔을 거푸 들이키더니 고개를 아래로 꺾었다. 그리고 흐르는 굵은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내게 작은 위로의 말이라도 얻어 보려다 그만 감정이 격해진 것이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다른 방도를 찾고 있으나 막막한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후배에게 아무런 도움이 못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온몸으로 안아 주어도 후배는 축 늘어졌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비대면의 시대는 점점 ‘나 혼자 사는 세상’으로 탈바꿈시키는 느낌이다.

이런 낯이 설은 환경 속에서 올해로 임기를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간 몇몇 철강사의 중역들도 안타까운 안부를 전해왔다.

“언젠가는 떠나야할 일인데 막상 닥치니 그냥 벙벙하다”고 했다. 이들은 올 겨울을 남보다 더 차디차게 보낼 것인데 더 이상 위로 할 말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해는 가슴 한 번 터놓고 큰 소리로 웃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내년에는 작은 일에도 웃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지만 “마스크 쓰고 웃어봤자, 웃는 것 같지도 않더라”는 아내의 조크에 슬며시 심통이 났다.
 
베란다 창문을 닫으면서 빨리 봄이 오기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새해가 되면 뭔가 잘 풀리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든 것이다.

봄이 오면 혹시라도 코로나 19를 물리쳐줄 낭보와 경제를 일으켜 줄 봄의 전령이 기다릴 것만 같았다.

철강인들의 마음이 따듯할 것이므로 봄은 일찍 오겠다는 생뚱맞은 기대도 해봤다.

따듯한 마음이 뭉쳐 '경제의 봄'도 오고, 가정에도 봄볕이 가득차서, 지난해 어려움을 겪은 후배들과 중소 철강사들이 활짝 웃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있기에 철강 언론도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2021년 한 해 동안 크고 넉넉한 태양이 중천에 떠올라 우리 모두에게 건강한 빛을 내리 쪼이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우리에게 봄은 그렇게 올 것으로 믿는다.

‘희망은 멋진 아침 식사’라고 했던 베이컨의 말처럼, 새해 첫날에는 아침 밥상에 희망이란 이름의 반찬을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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