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은의 의학이야기] 고통은 성숙과정의 관문
[김해은의 의학이야기] 고통은 성숙과정의 관문
  • 김해은
  • 승인 2020.08.11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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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도봉구 의사회 부회장)
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도봉구 의사회 부회장)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은 영국의 여왕이자 인도의 황제였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그녀의 제국에 해가지는 날이 없었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인들에게 ‘영국은 해가 져서는 안 된다. 밤이 되면 그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유머가 있다. 영국이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제치고 대서양의 시대에서 태평양의 시대를 열어 서구 열강의 패권을 잡을 때까지는 강했지만 착한 국가는 아니었다.

빅토리아는 작센지역의 고타 왕가의 앨버트 왕자와 결혼했다. 둘 사이는 원만했지만 가끔 주먹이 교환되는 난타전을 벌이기도 했다. 부부 사이에 아홉의 자녀를 두었으니 제국의 영광만큼 자손도 번창했다. 그런데 빅토리아 여왕은 고통스러운 분만을 몹시 두려워했고 성공적인 분만 후에도 극심한 산후 우울증으로 1년 가까이 국가의 경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이런 여왕의 분만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방법을 찾던 중 미국 보스턴에서 시작한 전신마취의 효과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보스턴의 치과 의사 윌리엄 모턴이 에테르를 이용하여 전신 마취를 시도했고 외과의사 존 워런이 목에 생긴 종양을 전신 마취하에 성공적으로 제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유럽의 외과 의사들은 미국을 한 수 아래의 국가로 여겼고 모턴의 마취를 신성한 외과의사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일이라고 마취를 도입하는 것을 일축했다. 당시 수술 방법은 여러 사람들이 환자의 팔 다리를 잡아 제압하고 최대한 신속하게 종양이나 창상을 제거하고 출혈 부위를 압박한 다음 지혈을 하고 수술을 마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다.

수술은 출혈과의 싸움이다. 아무리 수술을 잘 마쳐도 출혈을 잡지 못하면 환자는 허혈성 쇼크에 빠지고 환자의 생명은 경각에 달린다. 현재도 수술 후 출혈은 재수술의 가장 많은 원인이 된다. 당시에는 수술은 잘됐지만 수술 후 사망에 이르렀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큰 혈관은 실로 결찰하고 지혈하였지만 작은 혈관은 압박에 의한 자연 지혈효과를 기대하였기 때문에 수술 시간의 지연은 수술 후 엄청난 출혈을 초래하였다. 모자란 혈액의 수혈과 수액의 보충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혈장과 혈구를 보충해주지 못해 많은 생명이 위태로웠다.

영국 황실은 마취의사 존 스노를 호출했고 여왕의 출산을 도왔다. 존 스노는 15방울의 에테르를 여왕에게 흡입하게 하여 여왕을 산고의 고통으로부터 해방했다. 여왕은 대단히 만족했고 유럽의 외과 의사들은 더 이상 변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었다. 이제 수술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섬세한 술기가 우선시 되었다. 전신마취 도입 후에 수술은 급속하게 발전하였고 환자의 합병증은 현저히 줄었다. 파스퇴르는 감염의 원인이 세균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홀스테드는 수술용 고무장갑을 도입하였고, 리스터는 창상을 소독하여 감염을 막았고 이후 외과는 여러 분야에서 급속히 발전하였다.

외상으로부터 예전의 상태로 기능을 회복하는 과정이나 우리 몸에 있어서는 안 될 종양이나 새로 생산한 개체를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 신경계에 막대한 자극을 주고 생명을 위협하는 회복의 과정을 주어서 합격선을 넘지 못하면 생명을 더 누릴 자격을 주지 않았다. 건강하지 못한 개체가 생존하는 것을 막는 장치였다. 의학은 이 잠금 장치를 풀어 모든 개체가 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자하는 학문이다.

고통에 익숙한 근면한 시대의 사람들은 고통을 하나의 단계를 넘는 관문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고통에 많은 의미를 두고 그 의미가 퇴색되면 삶의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고통은 분명 성숙해져가는 과정에서 거쳐야하는 관문이다. 그래서 완고하고 보수적인 과거 외과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라고 고집을 부렸는지도 모르겠다.

현대의 고통은 자신에서 비롯되는 것보다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실패에 기인하는 것들이 많다. 이 관문을 재대로 통과하지 못하면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머물다 성장하지 못하고 난쟁이 어른이 된다.

고통은 온전히 자신이 해결해야할 문제이지만 통증은 의사들이 개입해야할 문제이다. 우리는 변화의 물결이 이미 발목을 적시고 급류가 될 때까지 감지하지 못하고 익숙한 옛 것에 머물다가 마침내 변화의 급류에 휘말려 시대에서 도태되는 집단을 보게 된다.

변화의 바람을 미풍일 때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태풍이 되어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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