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A중공업의 뇌물사건 "한국 FCPA 무방비 노출"
[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A중공업의 뇌물사건 "한국 FCPA 무방비 노출"
  • 장대현
  • 승인 2020.01.21 0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작년 11월 22일 미국 법무부(DOJ)는 한국 A중공업이 해외 뇌물 사건 해결을 위해 7500만 달러(약 890억 원) 벌금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A 중공업은 벌금을 내는 조건으로 공소 제기를 유예받고 미국 정부와 합의서(DPA)를 체결했다. 합의한 벌금 반(50%)은 미국 정부에, 나머지 반(50%)은 브라질 정부에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같은 날 미국 검찰은 버지니아주 지방법원에서 열린 심리에서 A중공업 미국 직원들이 시추선(drill ship) 인도 계약을 따내기 위해 뇌물 공여를 공모했다고 밝혔다.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위반한 것이다.

해당 시추선은 브라질 국영 에너지 기업 페트로브라스(Petrobras)가 사용할 계획이었다.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 정부가 50.3%의 지분을 직접 소유하고, 브라질 개발은행과 브라질 국부펀드가 추가로 10% 지분을 소유한 회사이다.

미국 법무부 브라이언 A. 벤츠코프스키 차관보는 “A중공업이 브라질 중개업자에게 2,000만 달러(약 232억 원) 수수료를 지급한 것은 그 돈의 일부가 페트로브라스 고위 간부에게 뇌물로 지급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2015년 초 페트로브라스 전(前) 국제 운영본부장 데스토르 세르로는 A중공업으로부터 1,500만 달러(약 178억 원)에 이르는 뇌물을 나눠 받은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A중공업은 미국 연방양형지침 벌금 범위(fine range)의 하한금액에서 20%만 감경받을 수 있었다. 감경받은 금액만 해도 1,887만 달러(약 220억 원)가 된다.

과거에 미국기업의 한국 자회사가 FCPA를 위반한 사례는 있었지만, 한국 대기업이 미국 법무부에 뇌물 공여 혐의를 인정하고 거액의 벌금에 합의한 사례는 이번 A 중공업이 처음이다. 뇌물 공여에 연루된 직원들은 모두 퇴사하였으나, 다른 뇌물 사건도 그렇듯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거액의 뇌물을 제공했을 리는 만무하다.

미국 FCPA 전문 사이트 ‘FCPA Blog’가 최근 집계한 미국 FCPA 위반 고액벌금 순위 Top 10을 보면 미국회사는 ‘KBR 할리버튼’ 하나밖에 없다. 'Top 40'에도 미국 기업은 10곳이고, 나머지 30곳이 해외기업이다.

FCPA 위반으로 미국 정부에 고액 벌금을 내는 기업들은 대부분 해외 기업이다. 다행히 우리나라 기업은 10위권 안에는 없지만, A 중공업은 이번 벌금 합의로 39위에 랭크되었다. 한국 기업도 미국 정부의 감시대상이 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예전에는 FCPA 위반 사건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았다. 이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미국 FCPA의 적용대상은 △미국 증권발행회사(issuer)와 △미국 국내업체(domestic concern) 그리고 △비거주 외국인(foreign non-resident)이다. FCPA는 미국 증권발행회사나 미국 국내업체가 아닌 해외기업이라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외국인(자연인 및 법인 포함)이라도 “미국 영토에 있는 동안(while in the territory of the United States)” 부패행위를 한 경우에는 FCPA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미국 영토에 있는 동안”을 매우 폭넓게 해석하여 공격적으로 FCPA를 적용했다. 이 조항은 미국 영토에 실재(實在)할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외국인이나 외국 법인이 물리적으로 미국에 있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

미국의 주간 통상(interstate commerce) 수단인 미국 통신망, 이메일, 은행 계좌, 전산시스템 등을 이용하는 등 뇌물제공을 촉진하는 간접적 행위가 있기만 하면 “미국 영토에 있는 동안”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원론적으로는 범죄 과정에서 구글의 지메일(Gmail)이 사용됐다면 FCPA가 적용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국 상공회의소나 미국 언론조차도 FCPA를 미국 정부에 돈을 벌어다 주는 ‘캐시 카우(Cash Cow)’내지 ‘현금인출기(ATM)’라고 비꼬기도 했다. 미국 정부의 과도한 법 집행을 비판한 것이다. FCPA 집행이 증가한 이유에는 높은 수익성도 무시할 수 없다. FCPA 위반 벌금의 상당 부분이 해외기업에 부과된 것이어서 FCPA는 “해외기업 부패 사냥법”으로 불린 지 오래되었다.

미국의 또 다른 FCPA 전문 사이트인 ‘FCPA Tracker’에 따르면, 2020년에도 100개 이상의 회사가 여전히 FCPA 관련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조사 중인 회사에 한국 기업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FCPA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FCPA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방심하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 이제 더 한국은 FCPA 안전국이 아니다. A 중공업처럼 ‘미국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